신문로
소멸하는 것은 '지역'만이 아니다
지난해 10월 18일 행정안전부는 인구감소율 고령화율 청년순이동률 등의 인구지표와 재정자립도를 근거로 인구감소지역 89곳을 발표했다. 여기에 전라남·북도는 기초지자체의 70% 이상이, 강원도와 경상남·북도는 60% 이상이 포함됐다. 또 향후 10년간 매년 1조원의 '지방소멸대응기금'을 이 지역에 지원하기로 했다. 정부가 이제까지 쓰기 꺼리던 '소멸'이라는 단어까지 쓰며 대책을 마련하고 있는 건 지역의 쇠퇴가 그만큼 심각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지방소멸'은 2014년 발간된 일본의 '마스다보고서' 제목이다. 향후 20년 이내에 일본 지자체 절반이 소멸한다는 내용의 이 보고서는 일본 열도를 충격에 빠뜨렸는데 그 위기를 우리도 직면하게 된 셈이다.
'지방소멸'이라고 하지만 지방은 소멸하지 않는다. 지역이라는 공간이 없어질리 없고 누군가 살고 있다면 더더욱 그러하다. 없어지는 것은 지방 자체가 아니라 지방자치단체다.
'마스다보고서'도 인구의 과소화와 고령화는 지역의 생산성을 떨어뜨리고 공간과 주민의 삶의 질을 유지하기 위한 사회적 비용을 증가시켜 지방정부를 도산에 이르게 할 것이라 경고했다. 하지만 지방정부의 도산은 그 지역만의 문제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도시를 지탱하는 식량 에너지 물 등의 공급체계가 무너질 것이고 이에 따라 일본 전체가 위험에 빠진다는 충격적인 시나리오를 제시했다.
인구소멸 막기 위한 청년정책 실효성 의문
지방소멸에 대응하는 우리 지자체는 도시의 청년을 유입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인구를 증가시키는 동시에 고령화율을 낮출 수 있으니 가장 빠른 방법일 수 있다. 그래서 서둘러 청년정책을 마련하고 있다. 일자리를 제공할 기업을 유치하고 지역에서의 청년창업을 지원하며 청년들이 살만한 집을 짓는다. 더 나아가 청년들이 여가생활을 즐길 수 있도록 대도시에서나 볼 수 있던 세련된 공간을 조성하고 연예와 결혼, 육아지원도 고민하고 있다.
이러한 청년정책이 과연 지방소멸을 근본적으로 막을 수 있을까.
전라북도 인구감소지역인 남원시를 살펴보자. 1972년 18만명이 넘었던 인구는 계속 감소해 2004년 10만명 아래로 내려갔고 2022년 4월 현재 7만8967명이다. 65세 이상 인구는 29%에 달한다. 남원시는 5개 동, 1개 읍, 16개 면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도시지역 5개 동에 전체인구의 60%가 살고 있고 면 지역 인구는 대개 1000명에서 3000명 사이다. 남원시 남쪽의 수지면에는 600여가구 1200여명이 사는데 65세 이상 고령인구가 500명에 가깝다. 이러한 남원시의 현황은 지방소멸 현상이 일어나고 있는 곳이 시군 지역 전체가 아니라, 외곽의 면 지역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그러면 지방소멸을 막고자 하는 청년정책이 이러한 면 단위에도 효과를 미칠 수 있을까. 현재 지역에 남아 있거나 도시에서 들어온 청년들 대부분은 도심지역에 산다. 빈약하지만 교육 의료 문화 등의 기반시설이 모여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부분 청년정책은 도심지역을 그 대상으로 하고 있고 그 혜택도 도심지역 청년들에게 주어진다.
지방소멸과 관련된 지표를 시군 단위로 관리하고 비교할 것이기 때문에 지방정부는 빠른 성과를 위해 도심을 활성화하는 방식을 선택할 가능성도 높다. 그러면 면 지역의 쇠퇴는 막지 못할 것이고 오히려 더 악화시킬 수 있다. 이에 따라 과소화된 지역을 유지하기 위한 지자체 부담은 향후 더 늘어날지 모른다.
지방소멸이 일어나는 현상과 원인을 분석하고 그 대안을 신중히 검토해야 하는 상황에서 향후 수백억원을 활용하는 사업계획을 불과 몇달 안에 만들고 있으니 걱정이 앞선다.
수백억원 사업계획 몇달 안에 만들다니
수도권의 65세 이상 주민들은 지하철을 무료로 탈 수 있다. 농촌의 고령주민에게 이런 혜택은 없다. 급하게 병원이라도 가려면 몇만원씩 주고 택시를 불러야 한다. 농촌의 청년들은 인근 지역에 좋은 일자리가 있어도 그곳까지 접근할 수 있는 대중교통수단이 없다. 그래서 월급과 자동차 유지비용을 견주다 취업을 포기한다.
어디에 살든지 보편적으로 누려야 하는 것들을 당연히 누릴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지방소멸을 막는 일이 아닐까. 어쩌면 인구가 줄어들고 활력이 떨어져 소멸하고 있는 건 '지방' 자체가 아니라 '사회정의'일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