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험대 오른 '97세대 5인방', 민주당 '계파의 벽' 뚫을까
이재명 의원 등 불출마 전제로 부상했다가 출마 가닥에 '고민'
"새로운 시대엔 새로운 인물 절실 … 에너지 모으는 과정 필요"
'5인 5색' 개혁주도그룹 형성 어려워 … "몸 던질 각오 있어야"
대선·지방선거 패배 반성 과정에서 더불어민주당 내부에서는 '86세대(80년대 학번, 60년대생)' 퇴진론과 함께 '97세대(90년대 학번, 70년대생)' 역할론이 부상했다. 하지만 정작 '97세대'들은 머뭇거리고 있다. 전당대회 출마를 준비하지 않고 있다가 갑자기 집중 조명을 받자 '검토 중' '고민 중'이라며 한 발을 빼는 모습이다. 애초 '97세대 역할론'은 이재명 의원, 홍영표 의원, 전해철 의원 등 주요 계파의 수장들이 당대표 선거에 나서지 않는다는 전제로 이광재 의원이 제기했지만 이재명 의원 등이 사실상 출마 의지를 굳히면서 길을 잃은 느낌이다. 강병원 강훈식 박용진 박주민 전재수 등 97세대 5인방이 에너지를 하나로 결집해낼 만한 의제를 만들 수 있느냐와 에너지를 결집시킬 의욕과 명분, 역량을 갖고 있느냐는 등의 과제들이 쌓여 있다. 일각에서는 준비되지 않은 상황에서 나와 참패할 경우 오히려 부정적 이미지만 가중되는 게 아니냐는 얘기도 나온다.
21일 더불어민주당 전재수 의원은 내일신문과의 통화에서 "기왕에 나온 이 흐름을 돌이킬 수 없는 대세로 만들어 민주당 혁신의 길을 찾아야 된다"며 "(97세대 역할론이) 찻잔속 태풍이라고 하더라도 태풍도 에너지를 모으는 과정이 있다"고 했다. 그는 "70~80년대생들이 세게 나갈 필요가 있다"며 "에너지를 응축해야 한다"고도 했다. 강병원 의원은 이날 페이스북에 "새로운 시대엔 새로운 가치와 이를 상징할 인물이 절실하다"며 "민주당에게 필요한 것은 아름다웠던 옛 추억이 아니라 새로운 미래를 향한 가슴 떨리는 청사진"이라고 했다.
◆"준비정도 스스로 깊이 고민" = 하지만 자신이 직접 앞장서겠다는 목소리는 크지 않다. 과거에 개혁성향 의원모임이 보여줬던 정풍운동이나 새천년민주당과 한나라당의 개혁을 주장해온 천신정(천정배, 신기남, 정동영)이나 남원정(남경필, 원희룡, 정병국) 바람은 느껴지지 않는다. '5인 5색'이다. 박용진 의원은 "전당대회와 관련해서 많은 분들이 문의를 하시고 또 출마를 권유하고 계시다"며 "그런 목소리 귀담아 듣고 또 당의 변화와 혁신을 대표할 수 있다고 한다면 제 역할을 깊게 고민하고 움직여야 될 것"이라고 했다. 상대적으로 적극적인 편이다.
전 의원은 당대표 선거 출마 여부와 관련해 "이달 말까지는 의견을 쭉 들을 예정"이라며 "제가 출마하고 안 하고가 중요한 것은 아니다"고 했다. 전략통인 강훈식 의원은 "많이 고민이 되는 것은 모든 걸 걸고 도전해야 되는 일"이라며 "얼마만큼 스스로가 답할 수 있느냐 준비정도에 대해서 되묻고 있고 또 깊이 스스로 고민하고 있다"고 했다.
◆비켜주지 않아서? 전대 룰 때문에? 패배할까 봐? = 97세력이 스스로 개혁과 혁신의 깃발을 들고 나가기엔 준비가 덜 된 게 아니냐는 얘기도 나온다. 97세대 5인방이 단단한 계파 수장들의 힘을 뚫어 낼 수 있겠느냐는 우려이기도 하다. 이재명 의원과 함께 친문계의 홍영표, 전해철 의원, 민평련의 설훈, 우원식 의원 등 계파의 수장들이 사실상 당대표 출사표를 밝혔거나 밝힐 예정이다. 86그룹의 핵심인사인 전대협 의장 출신의 이인영 의원 역시 출마 예정자로 꼽힌다. 이들이 출마 쪽으로 가닥을 잡으면서 97세력들의 목소리가 다소 작아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당원과 국민 참여비율을 높여 당선가능성을 높여야 한다는 얘기도 있다. 박주민 의원은 "권리당원과 대의원의 표의 비중의 구조라든지 중앙위원회 컷오프 제도라든지 당내 선거의 룰이 젊은 의원들이나 젊은 사람들이 도전하기는 좀 어려운 부분이 있다"며 "객관적으로 룰이 바뀌지 않으면 어려운 것 아니냐라는 이야기도 나오고 그래서 선뜻 한번 해보겠다라고 치고 나오지도 못하는 상황인 것으로 보여진다"고 했다.
모 중진의원은 "대의원, 권리당원 투표는 계파 투표라고 할 수 있다"면서 "여기에서 97세대가 승부를 걸어 이길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했다. 70·80년대생 모 의원은 "애초 이재명, 홍영표, 전해철 의원 등의 불출마를 전제로 97세력의 등장이 요구됐는데 이들이 자리를 비키지 않으면서 97세력 역할론이 이번에는 다소 사그라지는 분위기"라며 "질 게 뻔한데 지려고 나가는 것은 아니지 않느냐"고 했다. 97세대 의원실 관계자는 "도전도 중요하지만 계속 패하기만 하면 이미지가 패배전문으로 고정될 수도 있다"고 했다.
강병원 의원은 KBS 라디오 인터뷰에서 14일 "역사적인 사명이 맡겨진다면 또 피할 수는 없을 것 같다"며 당대표선거 출마를 시사했다. 하지만 20일 내일신문과의 통화에서는 "검토하고 있다"고만 했다. 지난 지방선거에서 서울시장 출마를 오랜 고민 끝에 접은 박주민 의원은 20일 YTN라디오에서 "이재명 의원님이 출마하신다고 하더라도 젊은 세대들이 해야 될 역할들이 있는 것"이라며 출마여부에 대해서는 "지금은 말씀을 듣는 단계 정도로만 생각해 달라"고 했다.
이현우 서강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젊은 개혁세대가 뭉쳐서 주도적으로 변화를 유도하고 스스로 아젠다를 만들어야 하는데 민주당 97세대에서 리더격의 의원이 보이지 않는데다 하나로 힘과 의제를 모아서 치고 나갈 역량과 의지가 있는지 모르겠다"며 "모든 것을 불사하고 당을 위해서 몸은 던질 각오가 있어야 하는 것인데 눈치를 보거나 자신의 피해정도를 챙긴다면 아무 것도 못하는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