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수찬 칼럼

초대형 국부펀드 바람직한가

2025-12-30 13:00:01 게재

최근 정부는 내년 상반기 중 초대형 국부펀드 설립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정부가 미래지향적 산업에 전략적으로 투자해 그 수익은 국민에게 배분하자는 취지다. 아직 명확한 내용이 나오지 않아 이에 대해 언급하는 게 성급하게 보일 수 있지만 경제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구상이기 때문에 내용이 확정되기 전에 핵심 이슈를 짚어볼 필요가 있다.

1300조원에 이르는 국유재산의 가치를 극대화하겠다는 표현이 있는 것으로 보면 기존 한국투자공사(KIC)나 금융위원회가 추진하고 있는 국민성장펀드 보다 훨씬 큰 규모의 펀드가 구상되고 있는 것 같다. 민간에서 세금으로 물납한 주식 등 초기 재원에 대한 언급이 있기는 해도 펀드조성 재원에 대한 전체적 그림을 볼 수 없어 실제로 조성할 수 있는 펀드의 규모는 아직 미지수다.

핵심적인 이슈는 정부가 투자를 잘 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정부와 민간의 역할에 대한 고전적 경제이론을 들먹이며 설교하려는 것은 아니다. 현재 세계에서 일어나고 있는 산업의 변화 그리고 정책 패러다임의 변화를 생각해보면 이러한 설교는 진지한 접근이 아니다.

산업의 변화에 대해서는 인공지능 발전과 그에 따른 반도체 산업의 변화, 생명과학과 바이오텍의 발전, 그리고 게임 영상 등 오락산업의 성장 등 독자들이 익히 들은 바 있을 테니 더 이상 설명이 필요 없다.

정부가 과연 투자 잘 할 수 있을지 의문

정책 패러다임의 변화라고 얘기한 것에는 우선 예전에는 금기시하던 정책들을 이제는 쓰는 경우를 들 수 있다. 이를테면 중앙은행은 시중은행에 돈을 풀고 시중은행은 기업에 돈을 푸는 게 통상적이지만,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발생해 시중은행이 제 역할을 못하자 중앙은행이 직접 기업채권을 매입함으로써 자금을 공급했다. 물론 이는 위기상황에서 생긴 일이다.

또한 정부가 특정산업을 육성하는 산업정책은 예전에는 동아시아 국가들이나 하는 것으로 생각되었으나 요즘은 서구국가들도 하고 있다.

더 나아가 최근 미국에서는 정부가 특정 산업에서 기업의 지분을 보유하며 전략적 투자를 하겠다고 공언하고 있다. 이를테면 관세정책으로 한국과 일본을 윽박질러 받아낸 돈으로 미국정부가 원하는 곳에 투자하겠다고 한다. 물론 이는 트럼프행정부의 돌출행위로 보는 게 맞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이런 정책이 실행되면 트럼프행정부가 부패에 연루되어 다음 정부에서 청문회 대상이 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어쨌든 세상이 바뀌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 와중에 바뀌지 않는 경제학을 들고 나와 이러쿵저러쿵 하는 것은 설득력이 약하다. 그래서 경제학자인 필자가 정부의 투자에 대해 언급하는 게 조심스럽다. 이런 전제 하에서 정부가 구상하고 있는 이른바 한국형 국부펀드에 대한 필자의 견해를 얘기하고자 한다.

우선 큰 그림부터 보자. 미국이 1980년대, 1990년대 일본의 추격을 따돌리고 선두국가로서 앞서 나간 것은 정부의 산업정책 덕분이 아니었다. 실리콘밸리의 벤처기업들이 일궈낸 기술혁신 때문이다. 지금 중국이 미국을 추격하고 있지만 역시 따라잡기 힘들 것이다.

민간기업의 생사여탈권을 가진 정부가 최상위 투자결정자가 되면 한두번 전략적 투자에 성공할 수는 있겠지만 운이 지속되기는 힘들다. 급변하는 기술과 투자 환경에 대응하는 유연하고 합리적인 의사결정이 이루어지지 않고, 정치적 목적 달성을 위한 의사결정이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중국까지 갈 것 없이 한국에서 정부실패의 대표적 예가 벤처정책이다. 정부가 지나치게 앞장서는 바람에 민간 벤처생태계가 제대로 구축되지 못했다.

모태펀드 TIPS 등이 만들어지고 원래 보통명사인 ‘액셀러레이터’가 정부가 인증하는 규격에 맞춘 기관이 되는 등 의욕적인 정책을 펼친 결과 투자위험을 감내하는 민간 벤처자본이 성장하지 못하고, 벤처투자자 명함을 가진 사람들 대부분은 실패를 회피하는 정부펀드 매니저가 되었다. 그나마 한국에서 굵직한 벤처기업들을 성공적으로 키워낸 소수의 벤처투자자들은 실리콘밸리에서 투자경험이 있어 그 모델을 그대로 갖다 쓴 사람들이었다.

정부실패작 '벤처정책'을 되돌아보라

정부가 초대형 펀드를 조성해 투자의 주체가 되면 위에서 얘기한 부작용들을 피할 수 없다. 첫째는 정치적 의사결정의 부작용이고, 둘째는 투자생태계의 왜곡이다. 한국은 고도성장기에 정부주도의 산업발전에 성공했는데 그 한가지 수단은 재벌 시스템이었다. 민간의 역동성을 활용한 것이다. 재벌은 초기에는 특정 기업을 운영했지만 갈수록 장기적 투자를 결정하는 자산운용사와 같은 기능을 수행했다.

사족을 덧붙이자면 새 정부조직에서 재정경제부는 예산권 없이 경제정책을 조율해야 되는 쉽지 않은 과제를 안게 되었다. 그렇다고 해서 초대형 국부펀드가 그 출구가 될 수는 없다.

카이스트 교수 경제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