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린학습자 읽기쉬운책

공공도서관에서 '읽기쉬운책' 만나요

2023-02-23 11:12:44 게재

발달장애인 등 느린 학습자를 위한 책 … 국립장애인도서관 제작해 각 기관에 기증

22일 방문한 은평구립도서관의 시끄러운 도서관. 통상 '조용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도서관에 마련된, 떠들어도 되는 공간이다. 이곳에서는 발달장애인 등 느린 학습자들과 비장애인이 함께 어울려 책을 읽는다.

이날 시끄러운 도서관에서는 국립장애인도서관이 제작해 기증한 느린 학습자들을 위한 '읽기쉬운책'(easy-to-read book)을 만날 수 있었다.
은평구립도서관은 국립장애인도서관이 지난달 출간한 느린 학습자를 위한 '읽기쉬운책'을 기증받아 다양하게 활용할 예정이다. 사진은 22일 은평구립도서관 시끄러운 도서관에 비치된 '읽기쉬운책'. 사진 이의종


◆"느린 학습자, 책 읽는 범위 넓어져" = 독자들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아온 '하늘로 날아간 집오리'(이상권, 웅진주니어) '가방 들어주는 아이'(고정욱, 사계절) 등이 느린 학습자들을 위한 책으로 거듭났다.

최나영 은평구립도서관 팀장은 "시끄러운 도서관이라는 공간과 함께 도서관 내에서는 물론 찾아가는 정보소외계층 프로그램들을 지속적으로 운영하고 있다"면서 "느린 학습자들을 위한 책들이 한정돼있어 선택의 폭이 좁은데 이번 출간으로 책 읽는 범위가 넓어졌다"고 말했다.

은평구립도서관은 읽기쉬운책들을 도서관 로비에 전시할 계획을 갖고 있다. 원본 책과 읽기쉬운책을 비교·전시해 비장애인들의 관심을 불러일으키고자 한다. 또 발달장애인은 물론, 다문화 가정이나 문해력에 어려움을 겪는 고령층이 활용할 수 있도록 홍보하려는 의도다.

아울러 4월 장애인 독서프로그램 '시끄러운 도서관 책 읽기 시간' 등 다양한 프로그램에서 읽기쉬운책들을 활용할 계획이다. 중증장애인 거주 시설 시립평화로운집에 월 1회 대출할 때, 치매지원센터로 찾아가는 독서 프로그램 등에서도 활용한다. 이외 독서동아리에서도 읽기쉬운책들을 활용할 계획이다.

제작 과정에서 발달장애인들이 직접 '읽기쉬운책'을 검증하는 모습. 사진 국립장애인도서관 제공


◆최신 인기도서를 이해하기 쉽게 = 국립장애인도서관은 지난달 12종의 책(15책, 총 1500부)을 발달장애인들을 위한 읽기쉬운책으로 제작해 2월 기준 80여곳에 기증했다. 읽기쉬운책을 읽고자 하는 독자들은 누구나 집 근처 공공도서관과 복지관을 방문하면 된다.

읽기쉬운책은 우리나라 창작도서와 고전 등을 발달장애인을 포함해 문해력에 어려움이 있는 느린 학습자들을 위해 쉽게 이해할 수 있게 제작한 책이다. 이해하기 쉬운 단어를 사용하고 문장 구조와 길이를 간결하게 바꾸며 내용 이해에 도움이 되는 그림을 추가하는 등의 방식으로 제작된다.

이번에 출간된 책의 경우, 원본 책에 있는 "그새 아주머니와 선생님은 복도로 나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습니다"라는 문장은 "아주머니와 선생님은 복도에서 대화를 했습니다"라는 문장으로 바꿨다. "쟤"라는 인칭대명사는 "영택이"라고 명확하게 표시했다. "그러고는"과 같은 접속어는 이해하는 데 어려울 수도 있어 삭제했다. 또 따옴표 안에 든 문장만 있으면 누가 말을 했는지 이해하기 어렵기 때문에 말한 사람의 이름을 쓰고 그 옆에 그 사람이 한 말을 적었다.

국립장애인도서관은 느린 학습자들이 읽고 싶어하는 인기도서들을 확보하는 데 가장 역점을 뒀다. 이를 위해 작가들에게 동의를 구한 이후, 해당 도서의 판권을 가진 출판사와 저작권 이용 계약을 했다.

지금까지 느린 학습자를 위한 책과 자료는 100여권이 있지만 최신 인기도서들을 읽기쉬운책으로 개발한 경우는 많지 않았다. 저작권법상 저작권자의 동의 없이 대체자료로 제작할 수 있는 자료는 시각장애인을 위한 점자 등으로 한정돼있기 때문이다. 주로 고전 등 저작권이 만료된 책이 느린 학습자를 위한 책으로 개발돼왔다.

◆발달장애인 참여해 검증 = 국립장애인도서관은 국가문해교육센터에서 정한 문해력 수준에 따라 여러 수준의 문해력을 가진 느린 학습자들을 고려했다. 이에 '하늘로 날아간 집오리' '선생님이 들려주는 장영실'(고정욱, 도서출판 산하) '사람을 구하는 개 천둥이'(김현주, 아르볼)는 문해력 수준 레벨 2와 레벨 3으로 나눠 제작됐다.

레벨 2의 경우 쉬운 읽기는 가능하나 일상생활에서 활용이 어려운 초등 저학년 수준의 독자들에 맞췄다. 레벨 3의 경우 보통 읽기 수준은 가능하나 복잡한 문장이나 어휘 등에서 어려움을 느끼는 중학생 수준의 독자들에게 맞췄다.

제작 과정에 전문가들과 함께 발달장애인들이 직접 참여한 것도 장점이다. 언어재활사, 특수교육 전문 연구진, 작가가 개발에 참여해 읽기쉬운책으로 제작할 책을 선정했다.

또 쉽게 작성된 원고를 발달장애인들이 직접 검증했다. 지난달 31일 열린 출판기념회에서 김경양 서울시 장애인의사소통권리증진센터장은 "발달장애 당사자가 검증에 참여해 책이 읽기 쉽게 바뀌어가는 것은 당사자들에게도 큰 즐거움이 됐다"면서 "이에 따라 당사자들이 직접 참여했다는 의미가 더해졌다"고 말했다.

한편 국립장애인도서관은 2013년 발달장애인용 읽기쉬운책 개발 연구를 통해 국내 처음으로 발달장애인을 위한 읽기쉬운책 제작지침을 마련했다. 이후 국내 기관들은 해당 지침을 바탕으로 읽기쉬운책을 제작하고 있다.

원종필 국립장애인도서관 관장은 "국립장애인도서관은 발달장애인을 위한 읽기쉬운책 제작을 꾸준히 해나갈 것"이라면서 "향후 공공도서관이 발달장애인용 읽기쉬운책으로 독서 프로그램을 운영할 수 있도록 독서지도 프로그램을 개발해 보급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송현경 기자 funnyso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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