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저임금 '업종별 구분 적용' 노사 설전

2023-06-14 12:02:20 게재

사 "폐업 고민", 노 "낙인효과" … 구속된 김준영 금속노련 사무처장 대리투표 결론 못내

내년도 최저임금 수준을 결정하는 최저임금위원회(최저임금위) 회의에서 노동계와 경영계는 '업종별 구분 적용'을 두고 팽팽하게 맞섰다. 경영계는 폐업을 고민할 만큼 자영업자의 상황이 좋지 않음을 강조했고 노동계는 이같은 결정으로 일부 업종에 낙인효과가 찍힐 수 있다고 우려했다.

노동계와 경영계, 팽팽한 줄다리기 | 13일 오후 세종시 정부세종청사 최저임금위원회 회의실에서 열린 제4차 전원회의에서 사용자위원인 류기정 한국경영자총협회 전무(왼쪽)가 근로자위원인 박희은 민주노총 부위원장의 발언을 듣고 있다. 가운데 자리인 류기섭 한국노총 사무총장은 국제노동기구(ILO) 총회 참석으로 불참했다. 세종=연합뉴스 김주형 기자


최저임금위는 13일 정부세종청사에서 내년도 최저임금을 업종별로 구분 적용할지 여부를 논의하기 위해 제4차 전원회의를 열었다.

업종별 구분 적용은 최저임금을 일괄적으로 정하는 현행과 달리 산업별로 다르게 정하는 방식이다. 최저임금을 업종별로 다르게 적용한 것은 제도 도입 첫해인 1988년뿐이다. 당시 최저임금위는 임금격차를 고려해 음료품·가구·인쇄출판 등 16개 고임금 업종에는 시급 487.5원, 식료품·섬유의복·전자기기 등 12개 저임금 업종에는 시급 462.5원을 적용했다.

사용자위원들은 숙박음식업, 미·이용업, 주유소 운영업 등에 대한 최저임금 감액 적용을 주장하고 있다.

류기정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 전무는 "2021년 기준 자영업자가 가져가는 연평균 수익은 1952만원이다. 월로 환산하면 163만원"이라면서 "같은 해 최저임금은 182만원이었다. 최저임금보다 못한 수익을 받는 것이 자영업자 현실"이라고 말했다.

이명로 중소기업중앙회 인력정책본부장도 "자영업자 연평균 소득은 2017년 2170만원에서 2021년 1952만원으로 매년 줄고 있다"며 "소상공인 연평균 영업이익은 2800만원으로 근로자 평균 급여 4024만원보다 적다"고 설명했다. 이어 "자영업자가 많은 음식점과 편의점 등 일부 업종에서 폐업을 고민할 정도로 (최저임금은) 큰 부담"이라면서 "매출액 영업이익 등 지불능력과 (최저임금) 미만율 등 경영지표가 다른데 단일하게 적용하는 것은 비합리적"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고용노동부가 지난해 연구용역을 의뢰한 업종별 차등적용에 관한 보고서를 작성한 전문가를 초청해 직접 설명을 듣자고 제안했다.

반면 근로자위원측은 "업종별 차등적용은 최저임금제도를 무력화하는 것"이라며 "최저임금을 업종별로 다르게 적용하면 구직자를 줄이고 근로의욕을 떨어트리는 '낙인효과'를 유발할 수 있다"고 반박했다.

정문주 한국노총 사무처장은 "2017년 최저임금위 제도개선위원회에서 업종별 구분 적용과 관련해 저임금 업종에 대한 낙인효과와 의욕상실 등을 이유로 바람직하지 않다는 결론을 내린 바 있다"고 말했다.

박희은 민주노총 부위원장은 "자영업자·소상공인이 어려운 것은 대기업·재벌 중심 구조와 정부 정책 부재에 기인한다"며 "업종별 구분 적용을 주장하는 진짜 이유는 이런 구조의 폐해를 저임금 노동자에게 전가해 최저임금 인상을 막기 위함"이라고 말했다.

특히 그는 호텔신라와 신세계 계열사인 스타벅스를 예로 들었다. 두 사업장은 업종상 음식숙박업과 비알콜음료점업으로 구분된다. 최저임금을 구분 적용하게 되면 대기업 계열사임에도 다른 업종보다 낮은 임금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박 부위원장은 "업종별 구분 적용이 아니라 플랫폼 노동자의 생활 안정을 위한 최저임금 적용방안이 더 적극적으로 논의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날 회의에서는 지난 2일 포스코 광양제철소 앞에서 망루 시위를 벌이다 구속된 한국노총 김준영 금속노련 사무처장에 대한 대리 표결 문제도 논의됐다. 김준영 사무처장은 근로자위원 9명 가운데 1명이다.

정문주 사무처장은 "질베르 웅보 국제노동기구(ILO) 사무총장은 이번 사안을 매우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다"면서 "최저임금위에서 현재 상황을 해결하기 위한 특단의 배려 조치가 있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최저임금위는 이날 '최저임금위원회 운영규칙'을 개정해 김준영 사무처장에 대한 대리투표를 허용할지 여부를 논의했으나 마무리를 짓지 못했다. 이 논의는 이르면 다음 회의 때 결론 날 전망이다.

운영규칙에 따르면 공익위원을 제외한 근로자위원과 사용자위원의 경우 '상해 또는 질병으로 인한 입원 시' 또는 '직계 존·비속의 결혼 또는 사망 시' 대리투표를 할 수 있다. 제5차 전원회의는 15일 오후 3시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다.

한남진 기자 njhan@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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