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장 후보자 지명, 사법부 변화 주목

이균용 "중용은 미덕이 아니다"

2023-08-23 11:23:17 게재

"자유 수호 극단은 미덕" 윤석열 '코드' 맞추기 논란일 듯

"소신있고 유능한 판사" vs "사법 정치화 비판이 더 정치적"

"법리에 밝고 재판을 잘 하는 엘리트 판사" "사법 정치화를 비판하면서도 자기 목소리를 높이다 보니 오히려 정치적이다."

이균용(61·사법연수원 16기) 대법원장 후보자에 대한 법조계 안팎의 평가가 엇갈린다.

신임 대법원장 후보자인 이균용 서울고법 부장판사가 김명수 대법원장을 만나기 위해 23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으로 들어서며 기자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최재구 기자

◆ '뼛 속까지 판사' = 이 후보자 지인들에 따르면, 그는 사석에서 "재판에 처음 임할 때 공소장을 보지 않는다. 피고인 얼굴도 보지 않으려고 눈을 감는다. 선입견 없이 재판에 임하기 위해서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래서인지 보수성향으로 알려진 이 후보자가 의외의 판결을 내린 경우도 많다.

이 후보자는 서울고법 재직 시 고 백남기 농민 사망 당시 집회에서 지휘·감독을 소홀히 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구은수 전 서울지방경찰청장에 대해 무죄를 선고한 1심을 뒤집고 유죄로 판단, 벌금 1000만원을 선고했다.

또 이른 바 '이태원 살인사건'에서 아서 존 패터슨을 진범으로 보고 징역 20년을 선고했다. 1997년 이태원의 한 햄버거 가게 화장실에서 벌어진 이 사건은 패터슨과 함께 애드워드 건 리가 고 조중필씨의 살인 용의자로 지목됐다. 애드워드 건 리는 살인 혐의로 기소됐으나 대법원이 무죄를 선고한 파기환송심에서 진범을 바꾼 판결을 한 것이다. 사건 발생 19년만인 지난 2016년 진실을 가릴 수 있게 됐다.

2013년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 대법원이 '판결문 간소화'를 추진하자 강하게 반대하기도 했다. 그는 "판결문은 주로 패소한 측에서 보는데 이들이 충분히 수긍히 가도록 작성해야지 간단히 쓰면 안된다"는 소신을 피력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사법의 정치화 비판하면서도 '정치 성향' 드러내 논란 = 이 후보자가 주관이 뚜렷한 만큼 소신발언도 많이 해 오히려 '정치적'이란 비판도 제기된다.

이 후보자는 대전고등법원장으로 재임하던 지난해 12월 대전지방변호사회지에 '인문학의 광장에서 법관의 길을 묻는다'는 제목의 글을 기고했다. 이 글에서 그는 "(법관은) 적어도 자유의 수호에 있어서 극단주의는 결코 악이 아니며, 정의의 추구에 있어서 중용은 미덕이 아니다"고 적었다.

이를 두고 정치권에서는 윤석열 대통령의 '자유'에 코드를 맞춘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그는 또 "정치가 경제를 넘어 법치를 집어삼키는 사법의 정치화가 논란이 되는 시점"이라고 진단하며 "법관은 특정한 정치적 입장에 지나치게 강하게 관련되지 않도록 의식적으로 피해야 한다"고 했다.

김명수 대법원장을 겨냥한 것이지만 정작 이 후보자는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의 사법농단에 대해서는 함구했다. 그는 '사법농단 의혹'에 연루돼 공무상비밀누설 혐의로 기소된 판사들에 대해서 항소심에서 1심과 같이 무죄를 선고했다.

◆진보 성향 대법관 내년 잇따라 퇴임 = 이 후보자가 대법원장에 취임하면 김명수 대법원장 재임 동안 '좌'로 갔던 사법부 분위기가 '우'로 갈 게 분명해 보인다.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보수 성향 대법관이 숫적 우위를 점할 것으로 관측된다. 대법원장을 포함한 대법관 14명 중 법원행정처장을 제외한 전원합의체는 총 13명이다.

지난 2017년 9월 김명수 대법원장 취임 후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우리법연구회와 인권법연구회,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출신 등 진보 성향 대법관이 과반을 이루며 줄곧 진보 우위였다. 윤석열 대통령이 처음 임명한 오석준(61·19기) 대법관을 비롯해 지난달 서경환(57·21기)·권영준(52·25기) 대법관이 취임하면서 이 구도가 '중도·보수' 7로, '진보' 6으로 바뀌었다. 이 후보자가 다음달 25일부터 임기를 시작하면 8대 5가 된다.

윤석열정부에서 이런 대법원 구성 변화는 가속도가 붙을 전망이다. 윤 대통령은 자신의 임기 내 대법원장을 포함해 대법관 13명을 교체한다. 진보 성향의 오경미 대법관을 제외한 나머지 대법관이 모두 바뀐다. 당장 내년 1월 임기가 끝나는 안철상·민유숙 대법관을 시작으로 같은해 8월 김선수·이동원·노정희 대법관이, 12월에는 김상환 대법관이 퇴임한다.

서초동 한 변호사는 "민사판례연구회 출신인 이 후보자가 대법원장이 된다는 건 정통 엘리트주의의 복귀를 의미한다"며 "김명수 대법원장 취임 이후 인사가 발탁시스템으로 바뀌면서 엘리트 중심의 인사문화가 바뀌었는데 다시 과거로 돌아갈 가능성이 커 보인다"고 말했다. 이어 "윤석열정부에서 대법원장 뿐 아니라 헌법재판소장, 다수의 대법관과 헌법재판관의 교체가 예정돼 있는데 '보수엘리트화'를 알리는 신호가 아닌가 싶다"고 덧붙였다.

◆만만찮은 국회 동의 = 이 후보자의 이런 행보나 소신발언이 국회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다수당인 더불어민주당 등 야당의 동의를 얻는데 걸림돌이 될 가능성이 높다. 대법원장은 국회 인사청문회를 거친 후 본회의에서 재적 의원 과반 출석에 출석 의원 과반의 동의를 얻어야 임명된다.

민주당은 일단 신중한 입장을 취했다. 김한규 민주당 원내대변인은 22일 오후 브리핑을 갖고 "김명수 대법원장에게 이념 문제를 지적하던 윤석열 대통령이 보수 성향이 강한 인물을 지명한 것은 아쉽다"며 "'사법농단'에 관여한 판사에 대해 무죄를 선고하고, '천공 의혹'을 제기한 부승찬 전 국방부 대변인의 책에 대한 출판·판매금지 가처분을 일부 인용하는 등 보수적인 정치 성향에 대해 우려할 만한 판결들이 있다"고 했다. 그는 또 '부적격은 아닌가'란 질문에 "저희는 인사청문회 하기 전에 적격, 부적격이라고 얘기하는 것 자체가 적절치 않아 청문회를 지켜봐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고 신중한 태도를 취했다.

이 후보자는 서울대 법대 1년 선배인 윤 대통령과도 개인적 친분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청문회 과정에서 논란이 예상된다. 이 후보자는 2021년 10월 국정감사 때 대통령과 친분을 묻는 더불어민주당 박범계 의원 질의에 "제 연수원 동기생하고 아주 친한 분"이라며 "친하다고 볼 수도 있다"고 말했다.

김선일 구본홍 기자 sikim@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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