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프랑스, 에너지정책 놓고 갈등

2023-09-19 11:16:54 게재

프 "노후원전 보조금 지급할 것"

독 "값싼 전기로 기업들 빼가나"

유럽 최대 경제국인 독일과 프랑스가 에너지정책을 놓고 갈등하고 있다. 프랑스가 노후 원전에 막대한 보조금을 지급해 값싼 전기를 생산하겠다고 나서자 높은 에너지가격에 시달리는 독일은 자국기업의 이탈을 우려해 강력 반발하고 있다.


18일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프랑스정부는 국영 '프랑스전력공사'(EDF SA)에 거액의 보조금을 지급할 방침이다.

보조금 용도는 △1980년대와 90년대 지어진 56개 노후 원자로를 연장 운영하고 △새로운 원자로를 건설하고 △풍력·태양열 용량을 추가하고 △전력망을 업그레이드는 등이다. EDF의 현재 부채는 650억유로에 달한다. 프랑스정부는 연간 250억유로(270억달러)를 지원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원자력을 퇴출한 데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높은 에너지 가격에 신음하고 있는 독일은 강력 반발하고 있다. 프랑스가 거액의 보조금을 기반으로 비경제적으로 값싼 전기를 생산하게 되면 독일기업들이 대거 프랑스로 생산시설을 이전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브뤼셀 소재 유럽정책연구소(CEPS) 선임연구원 크리스티안 에겐호퍼는 "프랑스와 독일정부에게 전력수급 문제는 거의 정치적 생존의 수준"이라고 말했다.

블룸버그는 "양국의 갈등은 원자력 보조금에 대한 것이지만, 궁극적으로는 유럽 산업중심지가 어디냐에 관한 것"이라고 전했다.

양국의 에너지 갈등은 여러차례 불거졌다. 올해 3월 '2035년까지 내연기관차를 시장에서 퇴출한다'는 유럽연합(EU) 계획에 대해 독일은 '합성연료를 쓰는 내연기관차는 예외를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해 관철시켰다. 그러자 프랑스도 신재생에너지 관련법에 원자력을 포함하는 예외조항을 밀어붙였다.

독일 경제장관 로버트 하벡은 최근 "프랑스 원자력발전소가 시장가치보다 저렴한 가격을 제시할 수 있게 된다면, 에너지집약적 기업이 많은 독일은 산업기반을 잃게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독일의 우려는 나름 근거가 있다. 독일이 높은 에너지 비용, 탈석탄에 따른 공급안정성 불안 등에 시달리면서 프랑스는 지난 2년 동안 독일보다 약 50% 더 많은 외국인직접투자(FDI) 프로젝트를 유치했다.

게다가 수소경제 등 친환경으로 전환하려는 독일정부의 에너지정책에 대해 독일기업들의 신뢰도는 낮은 편이다. 최근 독일상공회의소 설문조사에 따르면 제조업체 약 3분의 1이 해외로의 생산시설 이전을 고려중이거나 진행중이다.

프랑스는 이 틈을 노리고 있다. 독일 최대 알루미늄 제조업체 '트리메트'는 지난해 에너지위기로 생산량을 줄였다. 그러자 올해 6월 프랑스 EDF가 트리메의 프랑스 공장에 향후 10년 동안 시장가격보다 저렴하게 전력을 공급하겠다고 나서면서 상황이 바뀌었다. 트리메트 CEO 필립 슐뤼터는 "프랑스의 저렴한 원자력발전 덕분에 '친환경 생산 전환'을 추진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유럽전기사업자협회(Eurele-ctric) 사무총장 크리스티안 루비는 "독일과 프랑스 간 갈등의 핵심은 산업경쟁력"이라며 "프랑스가 원자력을 통해 향후 수년 동안 기업들에 저렴한 전기를 공급할 수 있다는 점에서 독일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독일은 산업용전력 가격에 일시적으로 보조금을 지급하는 방안을 고민하고 있지만 연립정부 내 이견이 큰 상황이다. 베를린 소재 '독일경제연구소'의 에너지전문가 클라우디아 켐퍼트는 "비효율적인 생산기업에 국가지원을 지속한다면 시급한 청정에너지 전환을 늦출 위험이 크다"고 지적했다.

그는 "독일이 산업용 전기요금을 보조한다면, 원전에 보조금을 지급하는 프랑스와 마찬가지로 잘못을 저지르는 셈"이라며 "양국은 신재생에너지를 신속하고 대규모로 확대하는 데 매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컨설팅기업 언스트앤영(EY)의 독일법인 대표인 헨릭 아울러스는 "양국 분쟁은 유럽 전체의 이익에 좋지 않다"며 "미중경쟁이 치열해지는 상황에서 유럽은 오히려 통합돼야 한다"고 말했다.

김은광 기자 powerttp@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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