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부의 대이동…임금에서 자본으로
세금이냐 성과급이냐 공적 펀드냐 … 생산성 과실 나눌 해법 찾기
AI를 둘러싼 논쟁이 증폭되는 이유는 부가 줄어들어서가 아니다. 새로 생긴 이익이 일부 기업과 주주에게 집중될 수 있기 때문이다. AI 모델을 가진 기업, 반도체와 데이터센터 인프라를 장악한 기업, 이들 기업의 주식을 보유한 투자자는 큰 이익을 얻을 수 있다. 반면 자동화로 업무가 줄거나 협상력이 약해진 노동자는 같은 속도로 혜택을 받기 어렵다. 생산성은 오르는데 임금은 정체되고 기업 이익만 커진다면, AI는 성장의 도구이면서 동시에 불평등을 키우는 장치가 될 수 있다.
이코노미스트는 경제학자 니컬러스 칼도어가 1960년대 지적한 노동과 자본의 소득 비율에 주목했다. 현대 경제에서 노동과 자본의 몫은 대체로 안정적으로 유지돼 왔지만, AI가 이 균형을 깨뜨릴 수 있다는 것이다.
선진국 정부가 노동소득세와 소비세에 크게 기대고 있다는 점도 문제다. 노동의 몫이 줄어들면 정부는 실업자 지원, 재교육, 현금 지급에 더 많은 돈을 써야 하는데 정작 세금을 걷을 기반은 약해질 수 있다.
이 때문에 AI 시대의 분배 논쟁은 단순한 복지 확대 문제가 아니다. 기존 세금 체계가 AI 시대에도 작동할 수 있느냐는 질문이다. 사람이 일해서 임금을 받고, 정부가 그 임금에 세금을 매겨 복지를 제공하는 구조가 약해진다면 새로운 재원 조달 방식이 필요해진다. AI가 만든 이익이 기업의 영업이익, 배당, 주가 상승, 자본소득으로 흘러간다면 세금도 그 흐름을 따라가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는 이유다.
그렇다고 해법이 단순히 ‘AI세’를 걷는 것만은 아니다. 로봇세나 AI 사용량에 대한 과세는 자동화 투자와 기술 사용을 위축시킬 수 있다. AI 기업을 벌주는 방식은 성장 자체를 약화시킬 위험이 있다. 이코노미스트는 자본소득 과세, 초과이익 과세, 소비세 조정, 국부펀드나 연기금을 통한 주식 보유 확대 등이 논의될 수 있다고 봤다. AI가 만든 이익을 일부 기업과 주주에게만 맡겨둘 것이 아니라, 국민 전체가 나눌 통로를 설계해야 한다는 문제 제기다.
특히 공적펀드와 연금은 AI 횡재를 나누는 우회로가 될 수 있다. 정부가 특정 기업의 이익을 직접 가져가는 대신 국민연금이나 국부펀드가 AI 수혜 기업의 주식을 보유해 국민이 자본소득을 간접적으로 나누는 방식이다. 노동자가 임금만으로 성장의 과실을 받기 어렵다면, 국민 전체가 주주로서 기업 이익을 공유하는 구조를 강화해야 한다는 논리다. 이는 세금을 더 걷는 방식보다 시장 친화적일 수 있지만, 주가 변동에 따른 위험을 어떻게 관리할지도 함께 따져야 한다.
일자리 불안도 이 논쟁을 키우는 배경이다. 이코노미스트에 따르면 미국인들은 장기 고용 전망에 대해 여론조사 역사상 가장 비관적이다. 한 조사에서 평균 응답자는 앞으로 5년 안에 일자리를 잃을 가능성을 22%로 봤고, 미국 노동자 5명 중 거의 1명은 AI나 자동화가 자신을 대체할 가능성이 있다고 답했다. 과거 기술혁신 때도 일자리 공포가 반복됐지만, 새 산업과 서비스가 고용을 다시 만들어낸 역사도 있다고 짚었다.
한국에서도 이 문제는 낯설지 않다. AI 반도체 호황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같은 반도체 기업의 실적 기대를 키우고 있다. 동시에 이익이 커질수록 노동자에게 어느 정도 몫이 돌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논쟁도 커질 수밖에 없다. 삼성전자 노동조합 공동투쟁본부는 쟁의행위 찬반투표에서 93.1% 찬성률로 쟁의권을 확보하고 5월 총파업을 예고했다. 쟁점은 성과급 제도와 임금 인상률이다.
다만 삼성전자 파업 자체보다 중요한 것은 반도체 호황의 이익을 주주, 경영진, 노동자, 국민이 어떤 방식으로 나눌 것인가라는 더 큰 질문이다. 주가는 미래 이익을 먼저 반영하지만 임금과 성과급은 뒤늦게 협상 테이블에 오른다. 이 시간차가 커질수록 노동자는 AI 호황에서 소외됐다고 느낄 수 있다.
결국 AI 시대의 분배 문제는 세 가지 질문으로 좁혀진다. 기업 이익이 커졌을 때 세금으로 나눌 것인가, 임금과 성과급으로 나눌 것인가, 아니면 연금과 공적펀드를 통해 국민이 기업 이익을 함께 보유하게 할 것인가. AI가 생산성을 높이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생산성의 몫을 누가 가져가느냐가 다음 사회 갈등의 중심이 되고 있다.
양현승 기자 hsyang@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