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시평

ESG공시 의무화 연기의 문제점

2023-11-29 10:47:41 게재
김범준 가톨릭대학교 회계학과 교수

금융위원회는 10월 16일 국내 상장기업의 ESG 공시 의무화 시점을 2025년에서 2026년 이후로 연기했다. 정부는 2025년 자산규모 2조원 이상 상장기업을 시작으로 2030년까지 유가증권 상장기업에 단계적으로 ESG 의무공시제도를 도입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재계는 지속가능성공시기준인 국제회계기준(IFRS) S1과 S2가 6월 확정되어 공시준비 시간이 부족하고, 세부적인 기준과 가이드라인이 준비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공시 의무화 시기 연기를 요청했다.

기업들이 연결기준으로 ESG 정보를 산출해 공시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특히 해외 자회사가 많은 경우 ESG 정보시스템 구축에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또한 온실가스 배출량은 공급망을 포함하는 Scope 3 기준이 적용되므로 협력사의 온실가스 배출량도 함께 집계해야 한다. 따라서 투자 여력이 없고 공시인력이 부족한 기업은 부담이 클 수밖에 없다.

투자자에게 유용한 회계정보와 ESG정보의 통합

ESG 의무공시는 우리나라만의 문제는 아니다. 유럽은 지속가능성보고표준(ESRS)과 지속가능성공시지침(CSRD)을 확정하고 2025년 ESG 의무공시를 시작할 계획이다. 미국 증권거래위원회도 2022년 3월 기후 관련 위험을 사업보고서에 공시하는 초안을 발표했고 올 4분기에 최종안과 공시 일정을 결정할 것으로 예상된다. ESG 정보공시 의무화는 세계적인 흐름이다.

국제지속가능성기준위원회(ISSB)는 지난 6월 지속가능성공시표준인 IFRS S1과 S2를 확정 발표했다. S1은 지속가능성 보고를 위한 일반기준 및 원칙을 담고 있다. S2는 기후변화 관련 재무정보 공시에 초점을 맞추어 온실가스배출량, 기후 위험관리 방안 및 기후변화 시나리오 분석에 대한 공시를 요구하고 있다. 이 기준은 2024년 1월 이후 최초로 시작되는 회계연도부터 적용하지만 각 국가는 개별적으로 채택여부를 결정할 수 있다. 국제회계기준을 채택하고 있는 우리나라는 향후 ESG 공시기준으로 S1과 S2를 채택할 가능성이 높다. IFRS S1과 S2는 기업활동이 환경이나 사회에 미치는 영향보다는 기후 등 환경변화가 기업의 재무제표에 미치는 재무적 영향을 측정하고 보고하도록 요구한다. 아울러 기후 등 환경변화가 현재뿐만 아니라 단기 중기 장기적으로 기업에 미치는 재무적 영향도 공시하도록 요구한다.

또한 IFRS S1에서는 지속가능정보를 사업보고서와 같은 일반목적 재무보고에 재무제표와 함께 공시하도록 요구하고 있다. 기존 회계정보와 환경정보를 통합하면 투자자에게 더 유용한 정보를 제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속가능정보가 회계정보와 동등한 수준의 지위를 보유함으로써 정보의 신뢰성도 높일 수 있다. 현재와 같이 기업들이 자율적으로 공시하는 지속가능보고서만 가지고는 기업 간 비교가능성을 높이는데 한계가 있고, 자신에게 유리한 정보만 선택적으로 공시할 수 있어 신뢰성을 담보하기 어렵다.

계속 미루기보다 국제적인 기준 및 일정과 발맞춰야

IFRS S1과 S2는 기후변화 등 환경요인이 기업에 미치는 재무적 영향을 공시하도록 함으로써 투자자가 기업의 당면한 기후위험을 정확히 평가할 수 있는 기반이 된다. 일관된 기준에 따라 신뢰성 있고 비교가능한 ESG 정보가 제공되면 자본시장의 효율성이 높아진다. 유럽은 탄소국경세 등을 비관세 무역장벽으로 활용하려는 움직임도 보인다. 수출 중심의 개방형 경제체제인 우리나라의 ESG 정보공시는 국제적 기준과 일정에 맞출 필요가 있다. 현실적 어려움을 고려해 초기에는 공시범위를 축소해 꼭 필요한 정보만 공시한 후 점차 범위를 확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아울러 초기에는 ESG 공시에 대한 법적 책임을 최소화해 기업들의 부담을 덜어주는 것도 필요하다.

ESG 공시의무화 일정 논의가 시작된 지 이미 3년이 지나 상당한 ESG 공시 역량을 갖추고 있는 기업들도 적지 않다. 계속 미루기보다는 국제적인 일정에 맞추어 가면서 부족한 부분은 보완해 가는 것이 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