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산책

어디서든 에너지 시스템 만날 수 있는 '탈탄소 미래'

2024-01-09 00:00:01 게재
김선교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 전기공학

새해가 되면 과거를 생각하고 미래를 바라보게 된다. 우리가 누리고 있는 모든 것에 감사하며, 그 밑에는 숨겨진 시스템과 조용히 자기 역할을 하고 있는 사람들을 떠올리게 된다.

오랫동안 구축되었으며, 복잡하게 짜여져 있지만 자주 간과되는 것이 바로 전력망 수도 통신과 같은 기반시설(Infrastructure)이다. 필수적이지만 조용히 어디에나 존재하는 이 숨겨진 시스템은 일상에서 보이지 않은 곳에서 조용히 작동하며 우리의 삶과 문화를 풍성하게 만드는 근원 혹은 기반이 되고 있다.

현대적 삶에 빛을 밝혀준 전기를 예로 들어보자. 에디슨이 펄 스트리트에 1882년 최초의 발전기를 시연한 이래 빠르게 확산된 전기시스템은 1900년대 문명의 진보를 이끈 혁명적인 이정표가 되었다. 전기는 단지 어둠을 밝히기 위한 조명으로 활용하기 위해 만들어졌지만 전기가 광범위하게 보급되면서 수많은 전자기기의 생명을 불어넣은 에너지원이 되었다.

지난 140년 동안 전기는 전세계로 선진사회를 상징하는 광범위하게 연결된 거대 네트워크로 확장됐다. 새로운 도시를 건설하고, 국가가 현대적인 국가로 발전하는 과정에서 전기는 매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해 존재감을 드러냈다. 선진국에 당당히 편입된 우리는 이런 놀라운 시스템을 당연시 여길 만큼 충분한 발전을 이뤄냈을 뿐이다. '숨겨져 있다'는 말은 우리가 충분히 발전했다는 사실을 확인시켜주는 의미일지도 모르겠다.

숨겨진 시스템의 혁명적 변화 필요한 시기

그러나 대다수 사람들에게 주목받지 못했던 이 시스템은 더 이상 숨겨져 있지 않은 '보이는 것으로의 전환'이라는 중대한 변화의 과정에 서 있다. 에너지를 '탈탄소화'해야 하는 시대적 과제는 80%를 넘게 의존하고 있는 화석연료에서 벗어나 무탄소 에너지로 전환해야 한다는 전환의 방향을 선명하게 제시한다.


역사적으로 에너지 및 전력시스템은 그 효용에만 주목했을 뿐 지구를 가열하는 문제의 원인인 온실가스 배출은 신경쓰지 못한 채 발전해왔다. 선진국에서는 대부분 화석연료를 기반으로 값싼 에너지원의 공급을 통해 높은 생활수준에 걸맞는 에너지 다소비 문화를 즐겨왔다. 에너지를 탈탄소화해야 한다는 것은 단순한 수단의 교체를 의미하지 않으며 우리의 생활과 문화가 완전히 바뀌어야 한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변화의 최전선에는 자연환경의 변덕에 좌우되는 재생에너지원인 태양광과 풍력이 있다. 안정적 전기공급이라는 기본적인 에너지 요구조건과 배치되는 간헐성과 불확실성이라는 특성을 가졌기 때문에 재생에너지의 증가는 전체 시스템의 비효율성을 키울 수 있다.

그러나 기후변화 대응이라는 목표가 가장 높은 우선순위를 차지하는 경우에는 이야기가 달라진다. 탄소를 배출하지 않는 자원이 빠르게 보급되어야 하기 때문에 전체 시스템이 비효율을 감당할 수 있는 보완적 수단을 갖춰야 한다. 즉 우리는 에너지 시스템의 특성을 새롭게 정의해야 하며, 이는 전체 물리적 시스템 변화뿐만 아니라 사용하는 사람들의 생각의 변화가 필요하다.

에너지 시스템의 탈탄소화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태양광과 풍력이 '어디선가 보이는 것'에서 '어디에든 보이는'으로 바뀌어야 한다. 햇빛이 비치는 거의 모든 공간에는 태양광이 설치되어 있고, 바람이 거센 바다 위에는 거대한 풍력발전이 있는 미래가 현실로 바뀌어야 한다. 더이상 보이지 않는 외부 시스템에서 에너지를 끌어오는 형태가 아니라 우리 주변에 쉽게 보이는 에너지원이 우리의 지속가능성을 확인시켜주는 동력이 될 것이다.

모든 곳에서 새로운 전기문명 만나는 시대

탈탄소화 미래의 토대는 상상력과 이를 실현하기 위한 전세계적인 공동 움직임에 달려 있다. 우리는 이러한 변혁의 시기를 헤쳐나가면서 새로운 문화를 형성하게 될 것이다. 이런 변화는 단순한 에너지공학 및 엔지니어링 프로젝트가 아니라 회복력 지속가능성을 중심으로 하는 사회를 향한 문화적 도약이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서는 새로운 정책과 규제, 비즈니스 모델, 교육체계 등의 변화가 함께 수반되어야 한다. 또 미래세대가 새로운 에너지 미래를 지속적으로 개척할 수 있도록 기반을 형성해야 한다. 요컨대 지금 우리가 내리는 결정이 새로운 에너지 체계와 새로운 문화의 윤곽을 만들 것이다. 이제 숨겨진 시스템은 밖으로 형태를 드러내 그 존재감을 어디서든 확인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모든 곳에서 새로운 전기문명을 만나는 보이는 시스템이 당연하게 되는 미래를 생각해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