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시간을 선물한 발명들
‘트렌드 코리아 2024’가 선정한 올해의 주요 키워드인 ‘분초(分秒)사회’가 화제다. 분초사회란 주어진 시간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활용하여 1분 1초 매 순간을 의미 있게 쓰는 사회를 뜻한다. 드라마 정주행 보다는 유튜브 요약 콘텐츠를 즐겨보고, 웨이팅 앱을 활용해 맛집의 대기 시간을 줄이는 것은 일상 속 분초사회의 대표적인 모습이다.
집에서도 비슷하다. 보관된 식재료로 메뉴를 추천하는 스마트 냉장고나 그릇을 씻어주는 식기세척기는 집안일로 소비되는 우리의 시간을 절약해준다. 심지어 이 물건들은 휴대폰과 무선 통신망으로 연결되어 언제 어디서든 작동이 가능해 우리의 생활을 더 효율적으로 만들어주고 있다.
그런데 여기에는 흥미로운 사실이 있다. 냉장고와 식기세척기는 평범한 여성들의 아이디어였다는 것이다. 현대식 전기냉장고는 미국의 주부였던 플로렌스 파파트(Florence Parpart)가, 식기세척기는 조세핀 코크레인(Josephine Cochrane)이 설거지할 때 접시가 깨지는 것을 막고자 발명하였다. 지금 이 순간에도 쓰고 있는 블루투스와 와이파이는 또 어떠한가. 할리우드 여배우로 잘 알려진 헤디 라머(Hedy Lamarr)가 무선조종 어뢰 개발을 위해 ‘주파수 도약’ 기술을 탄생시켰다. 이는 오늘날의 블루투스와 와이파이의 근간이 되었다.
이처럼 혁신을 가져온 여성들의 발명을 전 세계가 주목하고 있다. 매년 3월 8일 세계여성의 날을 맞아 세계 각국 지식재산청은 공동으로 여성발명을 위한 행사를 개최해왔다. 작년에는 ‘디지털: 양성평등을 위한 혁신과 기술’이라는 주제로 공동성명을 발표하였고, 혁신에 있어 여성의 역할과 참여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다. 올해 6월 한국 특허청에서 개최하는 ‘여성발명왕 EXPO’에서는 선진 5개국(IP5) 지식재산 청장들이 여성발명을 위한 논의를 이어나갈 예정이다.
우리나라도 여성의 창의성 향상과 경제활동 참여 확대를 위한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이 중 ‘여성발명왕 EXPO’는 2001년 국내 여성발명인만을 위한 작은 행사로 시작했으나, 이제는 20개 국가, 400여점의 세계 여성발명품이 전시되는 세계 최대·유일의 여성발명박람회로 성장했다. 또한 생활 속 아이디어를 창업까지 연결해주는 ‘생활발명 코리아’를 통해 2014년부터 총 138명의 여성들이 발명가 겸 기업가로 성장하여 일상 속 불편함을 해소해주고 있다.
시간이 돈보다 귀한 분초사회에서 일상 속 작은 발명이 전 세계인의 삶을 바꿀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우리나라가 전 세계 여성발명인들에게 기회의 땅이 되고, 나아가 우리나라의 여성발명품이 전 세계인의 일상을 바꾸게 될 날이 머지않았다고 믿는다.
김시형 특허청장 직무대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