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에너지
석탄과 구공탄 이야기
연탄의 기원은 19세기 말 일본 규슈 지방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장작과 목탄의 대용품으로 석탄에 구멍을 뚫어 사용한 것이 시초였으며, 20세기 초 수동식 제조기가 발명되면서 본격적으로 양산되었다.
우리나라에는 1920년대 일제 강점기 시절 도입되었으나, 주로 산업용이나 일본인 거주지 위주로 사용되었다. 연탄이 서민의 삶으로 들어와 난방과 취사를 책임지는 국민 연료가 된 것은 해방과 전쟁을 거치며 극심한 연료 부족을 겪으면서부터였다. 연탄은 우리나라에 풍부했던 무연탄을 가루로 만들어 점토와 섞어 원통형으로 가공된 고형 연료이다. 연소 효율을 높이기 위해 뚫은 구멍의 개수에 따라 9공탄, 16공탄, 22공탄, 25공탄으로 나뉘었는데, 초기 대중화된 모델이 구멍이 9개짜리였기에 ‘구공탄’이 대명사처럼 굳어졌다.
1961년 정부가 규격을 19공탄으로 표준화하며 연탄이라는 명칭이 공식적으로 정착되었다. 1970년대 이후 화력을 높이기 위해 22공탄이 등장했음에도 대중은 여전히 구공탄으로 불렀다.
해방과 전쟁 거치며 국민연료로 등극
해방 직후 남한의 에너지원은 수력, 목재, 그리고 석탄인 무연탄이었다. 국가 경제 여건상 외국으로부터의 자원 수입이 버거웠을 것이니 자급자족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보니 전기는 수력과 무연탄, 난방은 목재에 의존했다. 당시 전력의 90% 이상을 수자원이 상대적으로 풍부했던 북한에 크게 의존했는데, 북한이 1948년 5월 14일 갑자기 송전을 중단하자 극심한 전력난을 겪기도 했다.
이때 구원투수 역할을 한 것이 1930년에 준공된 당인리 발전소였다. 당인리 발전소(현 서울복합화력)는 국내산 무연탄을 연료로 사용하며 1980년대까지도 수도권 전력공급의 최후 보루 역할을 담당했다. 우리나라 주택 난방은 수천 년 동안 이어져 온 온돌이 대세였다.
온돌이란 아궁이에 장작으로 불을 지피면 불길이 고래를 통과하여 돌로 된 구들장을 데우고 굴뚝으로 연기가 빠져나가는 방식이다. 그러나 전쟁 후 황폐해진 산림자원을 온돌용 장작으로 사용하는 것은 사회적으로 큰 부담이었다. 이에 정부는 장작 대신 연탄 사용을 장려하며 ‘주탄종유(主炭從油)’ 정책을 펼쳤다.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1950년 11월 대한석탄공사를 설립하고 강원도 태백, 삼척, 영월, 정선 등지의 탄광 개발에 총력을 기울였다.
그 결과, 국내 무연탄 생산은 1965년 1000만톤 생산을 돌파했으며, 1988년 2400만톤이라는 정점에 도달했다. 그 후 우리나라 무연탄 생산량은 계속 줄어들어 2025년 6월 30일 마지막 탄광이었던 도계광업소가 폐광되면서 대한석탄공사의 석탄 생산 기능은 공식적으로 종료되었다. 우리가 오늘날 푸른 산을 볼 수 있는 것은 깊은 탄광 속의 무연탄을 캐내기 위해 땀 흘린 광부들과 연탄으로 연료를 전환한 국민들의 협조 덕분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무연탄은 탄소 함량이 85~95%로 높아 발열량이 좋고 연기가 적지만, 착화온도가 높아 연소 초기나 저온 상태에서 불완전 연소가 일어난다. 이때 발생하는 일산화탄소가 바로 연탄가스다. 균열이 있는 온돌바닥을 타고 스며든 연탄가스는 수많은 인명을 앗아가는 비극을 낳기도 했다. 그러나, 1980년대 연탄아궁이가 연탄보일러로 대체되면서 상황은 반전되었다.
연탄의 연소 열로 직접 온돌바닥을 데우는 대신, 그 열로 물을 끓여 순환시키는 간접 난방 방식은 연탄가스 중독 위험을 획기적으로 낮추었다. 연탄아궁이에도 혁신 기술이 접목되니 사람을 살렸다. 하지만, 서울 올림픽을 기점으로 주거 형태가 아파트로 급변하고, 정부 정책이 편리하고 깨끗한 석유 중심으로 전환되는 ‘주유종탄(主油從炭)’ 시대로 접어들며 연탄의 시대는 저물어 갔다. 연탄 사용 비중은 1988년 78%에서 1993년 33%, 2001년 2%로 급락했다. 이제 연탄은 추억의 소품이 되었지만, 여전히 에너지 취약 계층에게는 생존을 위한 따뜻한 등불이다. 일부 저소득 가구와 농업용 시설에는 여전히 연탄불을 지핀다.
구공탄 한국 에너지 전환의 첫 번째 성공사례
구공탄의 역사는 단순히 땔감이 바뀐 과정이 아니다. 산림을 살리고, 전력난을 버티며, 산업화를 이끌어낸 대한민국 에너지 전환의 첫 번째 성공 사례였다. 이제 우리는 또 다른 거대한 에너지 전환의 문턱에 서 있다. 과거 연탄이 장작을 대신해 숲을 살렸듯이 이제는 새로운 에너지가 그 자리를 대신하며 인류의 미래를 살려야 할 시점이다.
기후 위기라는 시대적 파고 속에서 이제 연탄은 역사의 뒤안길로 물러나고 있지만, 우리는 그 온기가 만들어낸 오늘의 풍요를 기억해야 한다.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안도현 시인의 너에게 묻는다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