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율 15년 만에 최고…외환보유액은 줄지 않아
2년전 1359원 당시 외환시장서 460억달러 순매도
지난해 순매도 급감…“민간 차원 방파제 역할 강화”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이 15년 만에 최고 수준으로 급등했는데도 외환보유액은 크게 줄지 않고 있어 주목된다. 2년 전 환율이 급등할 때 당국이 보유하고 있던 달러를 대거 매도해 시장을 진정시켰던 때와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은행 경제통계시스템(ECOS)에 따르면, 지난해 4분기 원달러 평균 환율은 달러당 1396.84원으로 2009년 1분기(1415.22원) 이후 15년 만에 최고치를 보였다. 직전 최고 수준이던 2022년 4분기(1359.26원)보다도 40원 가까이 높은 수준이다. 특히 지난해 12월 월간 평균 원달러 환율은 달러당 1434.42원으로 2009년 3월(1461.98원) 이후 15년 9개월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이다. 직전 가장 높았던 2022년 10월(1426.66원)보다도 8원 가량 높다. 일간 기준으로는 지난해 12월 30일 달러당 1474.10원까지 치솟기도 했다.

이처럼 외환시장에서 환율이 급등하면 당국은 보유하고 있는 달러를 내다팔아 변동성을 완화시키는 정책을 취한다. 대표적으로 2022년 환율이 급등할 때 외환당국은 보유한 외환을 대거 처분해 시장을 안정화시키는 조치를 취했다. 한은이 분기별로 발표하는 ‘시장안정화를 위한 외환시장 순거래액 추이’를 살펴보면, 당국은 2022년 한해 동안 약 459억달러를 순매도했다. 당시 연간 평균 환율은 1291.95원으로 지난해 연평균 환율(1363.98원)에 비해 낮은 수준이었다.
따라서 환율 수준만 보면 지난해 외환당국의 시장개입 규모는 더 컸을 것으로 예상되지만 실제 달러 순매도 규모는 3분기까지 74억달러 수준에 그쳤다. 특히 지난해 3분기는 오히려 1억9000만달러 가량 달러를 사들였다. 한은 관계자는 “작년 4분기는 강달러 지속과 국내 정치상황 등을 고려할 때 다시 달러를 순매도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다만 지난해 연간 달러 순매도 규모는 100억달러 수준을 크게 넘어서지 않을 것이라는 추산이다. 실제로 외환보유액 추이를 보면, 지난해 4분기 평균 외환보유 규모는 4156억달러 수준으로 3분기(4200억달러)에 비해 감소폭이 크지는 않다.

연간 외환보유액 규모도 지난해 4156억달러 수준으로 2023년(4201억달러)보다 크게 줄지 않았다. 2022년 연평균 외화보유액이 4232억달러로 2021년(4631억달러)에 비해 400억달러 가량 감소한 것과 대비된다.
환율이 2022년에 비해 더 상승했는 데도 당국의 외환시장 개입 규모가 줄어든 데는 다양한 분석이 뒤따른다. 우선 당국이 외환시장 개입에 있어 단순히 환율 수준이 아닌 변동성에 주목하고 있다는 점이다. 한은 관계자는 “환율 수준보다 얼마나 변동성이 심한지, 원화만의 요인인지 아니면 다른 나라 통화도 함께 움직이는지 등을 종합적으로 본다”며 “최근 외환시장 변동성은 트럼프 당선이후 강달러 흐름이 주된 요인으로 여기에 국내 정치상황이 더해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실제 환율 수준이 아닌 변동성 측면에서 보면 2022년(1291.95원)은 2021년(1144.42원)에 비해 달러당 150원 가량 급등하는 등 상당기간 안정화됐던 환율이 크게 출렁였다. 이에 비해 지난해 연평균 환율(1363.98원)은 2023년(1305.41원)에 비해 60원 가량 높은 수준이다. 특히 지난해는 3분기까지 비교적 환율이 안정되는 모습을 보이다 4분기 이후 트럼프 당선과 국내 정치요인이 겹치면서 환율이 급등했다.
민간의 달러 유동성이 확장된 점도 외환시장 방어막 역할을 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미국 주식시장의 호조 등으로 이른바 ‘서학개미’의 달러 투자규모가 급증했다.
이 과정에서 원달러 환전이 보다 빈번하고 큰 규모로 이뤄지면서 외환시장 변동에 따라 시장의 자정기능이 형성되고 있다는 풀이도 있다. 한은 관계자는 “최근 환율이 급등하면서 시장에서 환차익을 노린 달러 매도 물량도 상당하다”면서 “국민연금과 스와프 체결 등 당국의 방어기제도 당시에 비해 강화된 점도 작용한 것으로 보고 있다”고 했다.
한편 지난해 12월 국내 외환보유액은 4156억달러로 11월 말(4153억9000만달러)에 비해 2억1000만달러 늘어난 것으로 집계됐다. 다만 연말 기준으로는 2019년 12월 말(4088억달러)이후 5년 만에 가장 낮은 수준을 보였다.
백만호 기자 hopebaik@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