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시론

국민의힘에게 존재 이유를 묻는다

2025-01-14 13:00:01 게재

새해벽두부터 난데없이 독재정권의 망령이 소환됐다. 김민전 국민의힘 의원이 이름도 섬뜩한 ‘백골단’의 국회 기자회견을 주선한 것이다. 이승만시절 정치깡패집단 이름이자 5공시절 민주화를 요구하던 시민들에게 무자비하게 곤봉을 휘두르던 사복경찰 이름의 백골단이 윤석열을 지키겠다며 부활한 것도 어이없는데, 이들이 무슨 애국자인 양 국회로 불러 입에 발린 소리를 한 ‘백골공주’를 보면 숨이 탁 막힌다.

앞서 한남동 탄핵저지 집회에서 윤상현 국민의힘 의원은 선동꾼 전광훈 목사에게 “너무도 존귀하신…” 어쩌구 하면서 90도 인사를 해 보는 이들을 뜨악하게 만들었다. 지난해 말에도 그는 “탄핵을 막지 못해 죄송하다”며 광화문 집회에 참석한 아스팔트 우파 시민들에게 큰 절을 올려 손가락질을 받았다.

이것은 2025년 연초 국민의힘 의원들이 보여준 단면들이다. 둘만 그런 게 아니다. 소수를 제외한 국민의힘 전체가 집단최면이라도 걸린 듯 시대를 거스르지 못해 안간힘이다.

주권자에게 버림받는 역사 되풀이되는 이유는

12.3 내란사태가 발발한지 40여일, 지금 국민의힘은 길을 잃었다. 보수가 지향하는 가치인 국가와 민족, 공동체 이익 따위는 내팽개친지 오래다. ‘내란옹호당’이라는 오명도 ‘국민의짐’이라는 조롱도 안중에 없다. 그냥 ‘이재명은 안된다’는 신념화된 진영논리에 목매고 있을 뿐이다.

그러다 보니 명분도 논리도 없다. 대법원 헌법재판소 법무부 공수처 등 모든 사법·수사기관이 체포영장이 적법하다는데도 불법이라고 우긴다. “윤석열이 대한민국”이라며 왕조시대 논리까지 끌어댄다. 보수가치를 바로 세우자는 의원은 당을 나가라고 하고, 백골단을 국회로 끌어들인 의원은 에둘러 비호한다. 대한민국 보수의 적통을 잇는다는 국민의힘이 어쩌다 이런 몰상식한 정당이 됐을까.

국민의힘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박정희의 공화당, 전두환의 민정당에 닿는다. 그 지점을 보면 국민의힘이 왜 저러는지 얼핏 이해가 된다. 리처드 도킨스가 ‘이기적 유전자’에서 쓴 개념을 빌리면 쿠데타와 비상계엄, 내란의 ‘밈(meme, 문화적 유전자)’이 복제되고 전승돼 지금 국민의힘에서 발현되고 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여기에 아직도 청산되지 못한 ‘왕=국가’라는 봉건적 DNA까지 뒤섞였다.

87체제 이후만 보더라도 국민의힘 계열의 흑역사는 두드러진다. 탄핵당했거나 심판중인 박근혜와 윤석열, 외환위기 후 식물상태가 됐던 YS까지 합치면 세명의 대통령이 재임 중 국민으로부터 버림받았다. 이명박 박근혜는 철창신세를 졌고, 윤석열도 지금 감옥 문 앞에서 버티고 있다. 이처럼 주권자로부터 버림받는 역사가 되풀이 되는 이유는 지난날의 잘못에서 제대로 된 교훈을 얻지 못했기 때문일 게다.

국민의힘의 퇴행적 모습은 특권귀족 정당으로 출발해 300년 넘게 건재한 영국 보수당과 대비된다. 비록 지난해 총선에서 정권을 잃었지만 보수당은 20세기 100년 간 68년이나 집권하면서 ‘보수주의의 세기(Conservative century)’를 열 정도로 국민의 지지를 받았다. 그 비결은 다름 아닌 시대와 불화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강원택 서울대 교수는 책 ‘보수는 어떻게 살아남았나’에서 “영국 보수당은 수구적이거나 반동적 정당이 아니다”라고 단언한다. 그들은 현재 이익을 그대로 지키려 하기보다 양보할 것은 양보하면서 자신들의 뿌리가 위협받지 않도록 변화하고 혁신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 국민의힘은 어떤가. 눈앞의 이익을 위해 오히려 더 수구·반동의 길을 가고 있지 않은가. 그러면서도 자신들의 행태가 자기 뿌리를 썩게 하는 줄도 모르고 있다.

시대와 불화하면 도태되는 게 역사의 법칙

지금 국민의힘은 내란사태 이전으로 돌아간 정당지지도에 상당히 고무된 것 같다. 마치 내란옹호의 정당성을 인정받기라도 한 양 헌재와 법원 공조수사본부를 향해 총질 중이다. 그런데 같은 여론조사에서 범여권 차세대 주자로 수구보수의 전범격인 김문수가 1위를 차지했다는 지표는 눈에 들어오지 않는 모양이다. 아직 갈피를 못 잡는 보수 여론이 민심이라며 표정관리까지 주문한 국민의힘을 보면 조금 딱하다는 생각도 든다.

사실 국민의힘에게 진짜 궁금한 게 하나 있다. 지금처럼 헌재의 시간을 늦추고, 윤석열 체포를 막고, 아스팔트 우파에게 허리를 숙이면 정말 다시 집권기회가 온다고 보는가. ‘천만에요’다. 이재명에 대한 거부감을 내란을 옹호해야 하는 이유로 둘러대는 한 집권은커녕 다음 총선에서 전멸할 가능성이 크다.

이대로 가면 국민의힘은 머지않아 역사 속으로 사라질 것이다.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면 도태되는 게 자연의 법칙이다. 마찬가지로 시대에 적응하지 못하면 소멸되는 게 사회와 역사의 법칙이다.

남봉우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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