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 넘은 정당현수막…시민들 ‘눈살’
탄핵 정국 틈타 상호비방 현수막 난립
행안부·지자체 “설연휴 전후 집중단속”
한동안 잠잠했던 정당현수막 논란이 다시 불거졌다. 혼란한 정국을 틈타 극단적 진영논리와 상호비방 일색인 현수막들이 무분별하게 내걸리면서 벌어진 일이다. 이를 단속해야 할 지방자치단체들도 극한 대립 상황에 눈치를 보느라 제대로 손을 쓰지 못하는 모양새다.
14일 내일신문 취재를 종합하면 12.3내란사태 이후 빚어진 정치권의 극한 대립으로 무분별한 현수막 정치가 되살아났다. 지난해 1월 옥외광고물법이 개정되면서 줄어들었던 정당현수막이 지난해 말부터 급속하게 늘어났다. 사전 신고 절차가 필요 없어 정확한 숫자는 알 수 없지만 보행자가 많거나 차량 통행이 잦은 주요 거리에는 어김없이 정당현수막이 걸려있다.
무엇보다 시민들이 인내할 수 있는 임계점을 넘어서는 수준에 이르자 시민들의 불만이 쏟아져 나왔다. 시민 배 모(충북 청주시)씨는 “정당현수막은 국민의 삶을 더 나아지게 하는데 유용하게 활용하라는 취지일 텐데 국민의 삶을 짓밟은 비상계엄을 옹호하고 타당을 비방하는 현수막을 보면 화가 난다”고 말했다. 정 모(서울 서대문)씨는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 앞에까지 낯부끄러운 현수막이 걸려있어 눈살을 찌푸리게 된다”며 “좀 더 적극적으로 단속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지자체들이 단속을 부담스러워하는 것도 정당현수막이 난립하는 이유 중 하나다. 12.3비상계엄 이후 정치권이 극한 대립 양상을 띠고 있어 지자체가 강제 철거하는데 부담을 느끼고 있다는 얘기다. 실제 지자체들의 단속도 늘지 않고 있다. 정당현수막 정비에 가장 적극적이었던 인천시를 예로 들면 지난해 단속건수는 총 4830건으로, 월평균 402건 정도다. 집중 계도기간(1~2월) 직후인 3월 1147건을 정비한 걸 제외하면 평균치를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탄핵정국에 들어선 지난해 12월 게시된 정당현수막은 급격히 늘었지만 실제 단속은 평균치에 가까운 560건이었다. 한 지자체 관계자는 “12월 불법 정당현수막이 극성을 부렸지만 워낙 국가적으로 엄청난 사태가 벌어져 지자체가 게시된 정당현수막을 철거하는데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문제가 심각해지자 행정안전부와 지자체들도 대책을 고심하고 있다. 우선 행안부는 이번주 중 지자체에 단속을 독려하는 공문을 보낼 계획이다. 설 연휴까지 2주일 정도를 일제단속기간으로 정하고 대대적인 정비에 나서겠다는 것이다. 지자체들도 행안부 공문이 내려오면 이를 기회로 집중 단속에 나설 계획이다. 한 지자체 관계자는 “설 연휴를 전후해 불법 정당현수막이 극성을 부릴 것으로 보고 사전에 이에 대한 방침을 정하고 대대적인 정비·단속에 나설 계획”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조속히 탄핵이 결정되고 대통령선거가 시작되어야 어느 정도 정비가 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불확실한 정치상황이 정리되면 정당현수막도 줄어든다는 의미다. 또한 선거 시기에는 공직선거법 적용을 받기 때문에 현수막 내용도 순화될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 선거 기간에는 정당 명의의 현수막도 선거법 위반 여부를 확인해 걸어야 한다. 당장 4월 재보궐선거가 예정돼 있는 지역의 경우 지금도 선거법 적용을 받는다. 한 정당 관계자는 “선거 기간에는 현수막 문구 하나까지도 선관위 의견을 들어 정하기 때문에 이전처럼 낯부끄러운 문구는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한편 지난해 1월 12일 시행된 개정 옥외광고물법에 따르면 정당현수막은 △읍면동별 2개 이하로만 설치(면적이 100㎢ 이상이면 3개) △어린이보호구역·소방시설 주변 설치 금지 △가로등·전봇대 등에 3개 이상 설치 금지 △교차로·횡단보도·버스정류장 인근은 현수막 아랫부분 높이가 2.5m 이상(끈 높이는 2m 이상) 되도록 설치해야 한다.
김신일 기자 ddhn21@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