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합위기에 탄핵국면, 노사관계 전환기 준비·대응 시급”

2025-01-17 13:00:14 게재

2025년

노사관계 전망

저출산·고령화, 기후위기·AI 대응과 격차해소 산적 … 정부 주도 사회적 대화를 노사 주도, 국회 차원 등으로 다각화해야

한국공인노무사회는 14일 서울 영등포구 이룸센터에서 노·사·정·학계 관계자들이 참여한 가운데 ‘2025년 노사관계 전망과 과제’를 주제로 세미나를 열었다.

박기현 한국공인노무사회 회장은 “올해 노동시장의 변동성은 더욱 커질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노사관계의 발전적 변화와 사회적 대화의 강화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날 세미나에서 권오성 연세대 법학전문대학 교수는 ‘2025년 노사관계 전망과 과제’ 발제를 통해 “우리나라 노사관계는 노사 간의 집단적 자치만큼이나 정부의 후견적 개입이 큰 역할을 해왔다”면서 “하지만 지난해 12월 계엄사태와 윤석열 대통령 탄핵 국면으로 노사관계를 조정 및 규제하는 정부의 역할을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권오성 교수는 노사관계 과제로 노동시장 이중구조, 장시간 노동 등 ‘오래된 과제’와 새롭게 등장한 과제로 저출생·고령화에 따른 인구구조 변화, 기후위기와 인공지능(AI) 등 기술발전에 따른 산업전환을 꼽았다. 특히 그는 새로운 과제에 대한 신속한 대응에 천착했다. 권오성 교수는 “이러한 변화로 인해 ‘일의 세계’가 바뀌면서 불가피하게 혜택을 보는 사람과 위험을 부담하는 사람이 발생한다”며 “이러한 혜택과 위험을 적정하게 조정하는 것이 국가와 정치의 역할”이라고 했다.

권오성 교수는 노동시장 이중구조 심화와 기술발전·기후위기에 따른 산업대전환, 저출산·고령화, 미국 트럼프 행정부 출범에 따른 통상환경 불확실성 등 복합위기의 시대에 한국의 극심한 정치적 혼란과 행정의 부재까지 더해진 상황에서 노사의 역할을 강조했다. 그는 “이러한 전환과정에서 발생하는 불이익을 공정하게 분담하는데 필요한 논의에 노사가 적극적인 역할을 감당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공인노무사회는 14일 서울 영등포구 이룸센터에서 노·사·정·학계 관계자들이 참여한 가운데 ‘2025년 노사관계 전망과 과제’를 주제로 세미나를 열었다. 사진 한국공인노무사회 제공

권혁 부산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노동환경과 법제도 변화에 대한 대응’ 발제에서 “노동법체계 구축의 지향점은 ‘좋은 노동’ 구현”이라며 “AI 시대 ‘좋은 노동’은 인간의 노동력에 대한 창의성과 자율성이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노동시장이 ‘탈근로’ 경향을 보이고 있다”고 진단했다.

◆전통적 노동법 체계의 한계와 새로운 과제 = 자율성을 지향하는 노동자들이 늘면서 종속성이 강했던 기존의 근로계약 형태 대신 도급계약 위임계약 등으로 기존 근로기준법 체계에서 노동자로 인정받기 어려운 노동자들이 늘고 있고 대표적인 것이 ‘플랫폼 노동’이라는 것이다.

권혁 교수는 “전통적인 노동법 체계 밖에 놓여 있다는 이유로 사회적 보호 필요성을 아예 부정하는 것은 잘못이지만 그렇다고 기존 노동법 체계에 포섭시키는 것도 근본적인 해결방안이 아니다”며 “미래 노동법의 과제는 노동시장의 구조적 변화를 수용하면서 자율적이고 개별적이며 창의적인 노동을 지향하고 이로부터 파생되는 새로운 사회적 보호 필요성을 세밀하게 입법화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이는 새로운 패러다임에 토대를 둔 노동법 체계 구축을 의미하는 것이므로 정부만이 아니라 사회 구성원 모두의 공감과 합의를 바탕으로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권혁 교수는 ‘좋은 노동’을 위한 미래 노동법 구축 방향성으로 △근로자 및 사용자 개념의 다원성 수용 △개별적인 선호와 필요를 수용하는 맞춤형 보호체계 지향 △근로방식·시간·장소의 자율성 존중 △노동의 개별화에 대비한 소통과 자치질서 구축을 위한 시스템 제도화 △노동의 위험과 난이도 고용불안 등 부담에 비례하는 사회안전망 제공 △평생현역으로서의 일자리 기회제공 등을 제시했다.

◆지난달 통상임금 판결, 파급효과와 기업 대응 = 배동희 한국공인노무사회 정책연구센터장(노무법인 하이랩 대표 노무사)은 발제에서 “통상임금 법리는 2013년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을 통해 정립됐으나 지난해 12월 대법원 판결로 11년 만에 기존 판례를 변경했다”면서 “통상임금 문제는 기업과 노동계 모두에게 중대한 이슈로 부각될 것”이라고 말했다.

2013년 대법원 판결에서는 통상임금이 소정근로의 대가성 정기성 일률성 고정성 요건을 갖춰야 한다고 정의했다. 근무일수 조건부 수당, 재직자 조건부 수당 등 고정성을 갖추지 못한 수당은 고정성이 결여됐다고 판단해 통상임금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봤다.

하지만 지난해 12월 19일 대법원 판결에서는 통상임금의 요건 중 ‘고정성’은 합당한 기준이 되지 않는다고 판결했다. 다만 대법원은 법적 안정성과 신뢰 보호를 위해 이날 이후 통상임금 산정부터 적용한다.

배 센터장은 “이번 통상임금 판결은 기업의 인건비 부담 증가와 노조의 추가적인 요구로 인한 갈등 가능성을 크게 높이고 있다”면서 “기업은 신속하게 통상임금 재산정 작업에 착수하고 노사 협의체를 통해 합리적인 해결방안을 모색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밖에 배 센터장은 현재 대법원에 계류 중인 주요사건을 주목할 것을 주문했다.

먼저 ‘현대해상 경영성과급 사건’으로 사기업에서 지급하는 ‘경영성과급’이 평균임금에 해당하는지가 쟁점이다.

또한 ‘현대중공업 하청노조 교섭요구 사건’은 하청노조가 하청업체뿐만 아니라 원청업체를 상대로도 교섭을 요구할 수 있는지 여부다. 대법원 최종 판결에 따라 산업계에 큰 파장이 예상된다.

배 센터장은 “정부 정책의 공백과 법적 불확실성이 지속될 가능성이 크다”면서 “기업들은 이러한 변화에 대비해 노사협력 방안을 마련하고 정책 변화에 민감하게 대응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노동계, 노동기본권 요구 강화 = 이어진 종합토론에서는 이광택 전 한국노동법학회 회장(국민대 명예교수)이 좌장을 맡아 진행했다.

유정엽 한국노총 정책본부장은 “권한대행 체제에서 정부는 현상유지형 국정운영을 할 수밖에 없고 새로운 정책의 추진이나 법 개정은 사실상 어렵다”며 “올해 상반기 헌법재판소의 탄핵 심판 결정과 이어진 대선 국면에서 윤석열 퇴진운동을 우리 사회변화를 촉구하는 사회개혁 운동으로 이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유 정책본부장은 “노동계는 윤 정권의 친기업·반노조 정책폐기, 특수고용직·플랫폼 종사자의 노동자성 인정, 5인 미만 사업장 근로기준법 적용,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 조정법’(노조법) 제2·3조 개정(노란봉투법) 등 노동기본권 확대 요구를 강하게 주장할 것”이라면서 “반면 대기업이 올해 긴축경영을 예고했듯이 암울한 경제상황은 구조조정 문제를 촉발할 가능성이 높고 이로 인한 고용시장 위축과 노사갈등이 유발될 가능성이 높다”고 진단했다.

한국노총은 12.3 내란사태 이후 경제사회노동위원회(경사노위) 참여 중단을 선언하면서 정년연장 등 시급한 노동의제에 대해서는 토론회나 간담회 등만 참여하고 경사노위 공식 회의체에는 불참한다는 방침이다.

유 정책본부장은 “노동시장 이중구조 심화와 우리사회가 직면한 복합위기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사회적 대화가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며 “사회적 대화도 정부 주도에서 노사주도로, 산업·업종별로, 국회 차원의 사회적 대화 등 중층적이고 다각적인 체계로 발전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불평등 해소, 초기업 노사관계 활성화해야 = 이정희 민주노총 정책실장은 “한국 노사괸계는 개별 기업차원에서는 존재하지만 산업적·전국적 차원의 노사관계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 현실”이라며 “결국 정부 노동·경제정책의 하위 범주화됐으며 노·정, 사·정관계의 연장선상에서 존재한다”고 진단했다.

이어 “올해 예상되는 대선과 정부 교체는 기존의 노정관계와 노사관계, 노사정관계의 전환을 예고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정책실장은 “자산과 소득은 물론 교육과 주거·복지 불평등이 공동체 유지를 위협하는 수준에 이르렀다”면서 “불평등의 출발인 일자리의 불평등을 완화하고 해결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정책실장은 불평등 해소 영역으로 △대·중소기업 △정규직·비정규직 △여성·남성 △지역-수도권 일자리와 소득을 꼽았다. 불평등 완화를 위한 재정경제정책의 전환으로 △보편적 증세 △여력 있는 부자·불로소득에 대한 증세를 제시했다.

아울러 초기업 노사관계로 전환을 위해 △단체협약 효력 확장제도 적용 확대 △노조법 2·3조 개정을 통한 초기업교섭 활성화를 들었다.

◆경영계, 긴축경영과 노동시장 유연화 추진 = 황용연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 노동정책본부장은 “올해 우리사회는 정치적 혼란과 경제위기가 복합된 거대한 위기의 파고에 직면해 있다”면서 “특히 지난해 연말 비상계엄과 탄핵정국으로 불거진 정치적 혼란은 내수침체와 경제의 불확실성을 고조시키고 있다”고 진단했다.

지난해 12일 발표한 경총의 ‘2025년 기업 경영전망 조사’에 따르면 기업들 절반(49.7%)은 올해 경영계획 기조로 ‘긴축경영’을 꼽았다. 이들 기업들은 구체적인 시행계획으로 ‘전사적 원가절감’ ‘인력운영 합리화’ 순으로 꼽았다.

황 노동정책본부장은 “급변하는 경제사회환경에 대응하고 노동시장 선진화를 이루기 위해서는 노동시장의 잘못된 관행을 바로잡고 비정상을 정상화시키는 것이 첫걸음”이라며 “노사정 사회적 대화를 통해 노사 간의 소모적인 갈등과 분쟁을 벗어나 대화와 협력의 선진적인 노사관계를 구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황 노동정책본부장은 올해 노사가 추진해야 할 과제로 △근로시간제도 유연성 확대 △고용경직성 완화△임금체계 개편 △고령자 고용 △노사관계 안정화를 위한 법제도 개선 △플랫폼 종사자 보호 △사회적 대화 활성화 등을 제시했다.

한국공인노무사회(회장 박기현)는 14일 ‘2025년 노사관계 전망과 과제’를 주제로 세미나를 열었다. 박기현 회장(왼쪽부터 네번째) 등 세미나 참석자들이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사진 한국공인노무사회 제공

◆지역·시민 참여 노사민정 협력체계 강화 = 박현호 경기비정규직센터 소장은 “최근 정치적 사태로 정부의 노동정책 추진 동력과 노사갈등을 조정할 정부의 중재 능력 약화로 노동시장의 혼란 가능성이 높아질 것”이라며 “이러한 갈등을 조정을 위한 사회적 대화 복원이 시급하다”고 진단했다.

이어 “특히 노사가 자율성을 발휘해 논의를 주도해야 한다”면서 “나아가 노·사·정뿐 아니라 지역사회나 시민이 참여하는 노·사·민·정 협력 체계를 강화해 이해관계자의 갈등을 줄이고 지속가능한 노동시장구조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 소장은 “기술변화와 일하는 방식의 변화로 다양한 프리랜서 플랫폼노동자가 확산되고 있는 상황에서 미조직노동자를 대변할 통로를 강화해야 한다”면서 “노동조합 외에 노동자공제회 설립을 법제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노동위원회에서 체불임금 등 미조직노동자와 작은 사업장 노사분쟁을 다루는 것은 비현실적”이라며 “변호사처럼 공인노무사에게 조정합의 권한 부여하고 정부의 근로감독관제 한계와 노동단체의 중간지원조직센터 한계 해소, 프리랜서 미지급금 구제 역할을 담당하는 노동법률구조공단을 설치할 필요성이 있다”고 강조했다.

김재훈 고용노동부 노사관계지원과장은 5인 미만 사업장 근로기준법 적용에 대해 “고용부도 방향에 있어선 5인 미만 사업장에 근로기준법을 적용해야 한다는 당위성을 가지고 있다”면서 “현재 상황과 현장 실태를 고려해 점진적으로 추진해야 한다는 입장”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그 방안은 노사정 사회적 대화를 통해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밖에 김 과장은 고용부의 기후위기에 따른 산업전환과 관련해 석탄화력발전소 노동자들에 대한 이·전직 지원과 전환배치 훈련, 정년 이후 계속고용을 원하는 중장년을 위한 직업훈련 제공 등을 소개했다.

한남진 기자 njhan@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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