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란사태 길어질 조짐 … 한국경제 불확실성 다시 커졌다
내수 부진한데 트럼프 취임 … 통상 불확실성까지 확대
박근혜 때는 여당도 동참 … 지금은 건건이 ‘반대·저항’
최상목 대행체제 ‘선택적 권한 행사’ 사실상 버티기 협력
IMF 등 성장률 하향조정 … 신용평가사 “불확실성 확대”
내란사태가 장기화될 조짐이다. 20일 12.3 계엄발령 이후 46일이 지났지만 시국은 아직 혼란하다. 급기야 탄핵반대세력이 법원을 공격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대한민국 헌정사상 처음 있는 일이다. 계엄을 옹호하고 내란을 정당화하는 목소리가 다시 커지고 있다. 집권당은 “폭력은 반대”한다고 했지만 ‘사법부 난입세력’을 사실상 두둔하고 있다.
한시적 내각수반인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도 책임론에서 벗어나기 힘들다. 최 대행은 법원난입 8시간 만에야 한 장짜리 입장문을 내놨다. 윤석열 대통령이 임명한 최 대행이 ‘의리와 법치’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그는 윤 대통령 체포과정에서 사실상 이를 막아온 경호처 강경파 입장에 서왔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경제부총리 출신의 최 대행이 경제 불확실성 확대에 일조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는 대목이다.
비상계엄 발령 2시간 만에 국회가 이를 해제결의하고, 일주일 뒤 탄핵안을 가결할 때만 해도 ‘순조로운 절차이행’이 예상됐다. 이때마다 급등하던 환율이 진정세를 보였고 주식시장도 잠시 활기를 되찾았다. 하지만 기득권층과 탄핵엄호세력이 발호하면서 다시 한국경제에 ‘경고등’이 켜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한국 성장률 전망치 낮춘 IMF = 실제 내란사태 추이를 주목하고 있는 국내외 기관들의 평가도 다시 나빠지고 있다. 한국의 정치 불안정이 길어지면서 경제 불확실성도 커지고 있다고 판단하고 있는 것이다.
20일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IMF(국제통화기금)는 1월 정기 세계경제전망에서 올해 한국 성장률 전망치를 2.0%로 제시했다. 지난해 10월 전망치인 2.2%에서 0.2%p 하향조정한 수치다. 최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전망치인 2.1%보다도 낮다. 국내 직전 전망 중에선 한국개발연구원(KDI)의 2.0%와 같고, 기획재정부의 1.8% 한국은행의 1.9%보다는 높다. 한은과 KDI, OECD의 전망치는 내란사태를 고려하지 않은 것이어서 앞으로 하향조정될 가능성이 크다.
IMF의 이번 전망은 비상계엄 후인 12월 중순 평가가 바탕이 됐다. 하지만 정국 불안정 변수를 반영하기에 데이터가 충분치 않았다. 따라서 오는 4월 정기 전망에서 더 낮아질 가능성이 있다. IMF가 내란사태에 따른 정치 불확실성 확대를 한국 경제 성장률을 끌어내리는 핵심 요소로 보기 때문이다. 기재부 관계자는 “IMF는 앞으로 약 3개월간 국내 정치 상황 등 추이를 모니터링 후 4월에 재평가하겠다는 입장”이라고 설명했다.
◆국가신용등급 변화도 배제 못해 = 국가신용등급을 결정하는 국제 신용평가사 입장에도 변화가 감지된다.
무디스의 경우 지난 15일 ‘2025년 아시아·태평양 지역 경제전망’ 보고서에서 “경제활동 교란 장기화나 소비자와 기업 심리 약화는 신용도에 부정적일 수 있다”고 진단했다. 지난해 12월11일 최상목 대행과 화담면담에서 한국 국가신용등급을 ‘안정적’으로 평가했던 것과 비교하면 우려가 커진 셈이다. 무디스는 올해 한국 성장률 전망치를 지난해(2.3%)보다 낮은 2.1%로 낮췄다.
정치 위기가 길어지면 한국 경제의 1%대 저성장 기조가 고착화할 수 있다는 경고도 나왔다. ‘트럼프 2기’ 출범과 글로벌 경제·통상 기조의 대전환을 고려하면, 정치 불확실성에 골든타임을 놓치고 있다는 것이다.
현대경제연구원은 ‘2025년 국내외 트렌드-격동의 글로벌 정세 속 혼돈의 국내 여건’ 보고서에서 “(혼란스러운) 정치 이벤트가 장기화하면 1% 성장이 고착할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했다. 내수 부진과 수출 둔화로 이미 국내 경기 하방 압력이 높고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에 따른 리스크도 상당한데 국내 정치마저 경제의 발목을 잡고 있다는 지적이다. 연구원은 “조속한 정치 정상화가 필요하다”며 “적극적인 경기 대응을 통해 대외 위험 관리 여건을 만들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통상 불확실성도 커진다 = 한국 경제에 내우에 외환까지 겹친 꼴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은 이날 취임식을 갖고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GA)’ 구호와 함께 행정부를 이끌게 됐다. 트럼프는 취임 첫날부터 약 100개의 행정명령을 준비 중이며, 상·하원을 장악한 공화당은 입법을 통해 ‘트럼프 정책’(트럼피즘)을 뒷받침할 계획이다.
트럼프 1기 행정부는 2017년 ‘국가안보전략’을 통해 중국을 ‘수정주의 세력’으로 규정하고 무역, 안보 등 포괄적 제재를 가했다. 2018년에는 첨단 산업 주도권을 둘러싼 경쟁 속에서 대중국 관세를 평균 3%에서 12~19%까지 인상했다.
트럼프 2기 행정부에서는 미중 무역분쟁이 더욱 격화될 전망이다. 트럼프는 행정부 출범 전부터 △미국 수입품에 10~20%의 보편적 기본 관세 부과 △트럼프 상호무역법(TRTA) 제정 △항구적 정상 무역관계(PNTR) 종료를 통한 평균 60%의 대중국 고율 관세 부과 등 보호무역주의 강화 조치를 예고했다.
현재 한국의 수출 증가율은 이미 1%대에 그치며 둔화세가 뚜렷하다. 한국은행 통계에 따르면 작년 11월 수출은 571억 달러로 전년 동기 대비 1.2% 증가에 머물렀다. 미국과 중국으로의 수출은 각각 5.2%, 0.7% 감소했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은 미국이 보편 관세 10%를 부과하고 대중국 관세를 25%까지만 올려도 한국의 대미 수출이 13%가량 감소할 것으로 예측했다. 미중 수출 의존도가 40% 이상인 한국 경제의 타격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박근혜 탄핵 때는 세계경제 상승기” = 이런 기류 탓에 향후 한국경제가 2017년 박근혜 탄핵 때와는 다른 차원의 격렬한 도전에 직면할 것이란 전망이 많아지고 있다.
워싱턴의 싱크탱크인 피터슨경제연구소(PIIE) 선임위원인 여한구 전 통상교섭본부장은 “2017년 당시와 비교해 현재 한국경제 상황이 더 심각하다”고 평가했다.
그는 최근 올린 글에서 “돌이켜보면 2017년 탄핵 당시에는 세계 경제의 상승세와 맞물리면서 정치와 경제가 대부분 분리됐다”면서 “이와는 대조적으로 오늘날 경제는 여러 전선에서 역풍에 직면해 있다”고 분석했다. 그는 윤석열 대통령 탄핵 정국에 대해 “정치 환경은 양극화되어 있으며, 탄핵 과정은 2017년보다 더 불확실하고 장기화될 것으로 예상돼 소비자와 기업 신뢰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는 또 미국의 무역정책과 중국 등을 외부 요인을 주 위험요소로 꼽았다. 특히 그는 한국의 무역, 투자, 공급망 등이 중국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기 위해 미국에 집중하는 방향으로 변화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한국의 대중국 수출이 전체 수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약 25%에서 2024년 19.5%로 감소한 반면 한국의 대미 수출은 과거 12~13%에서 2024년 18.7%로 급증했다. 2023년 한국의 대미 투자는 중국에 대한 투자 대비 15배 수준이라는 점도 강조했다.
성홍식 기자 king@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