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의 눈
과학적 정책, 친절한 설명이 필요하다
‘과학적 근거에 기초한 정책.’
최근 2~3년 새 자주 등장하는 말이다. 다양한 사회문제에 효율적으로 대응하기 위해서는 과학적 근거에 기반을 둔 합리적인 정책 의사결정이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하는 말일 것이다. 분명 반길 일이다. 정치적 셈법에 좌우되지 않고 민생을 최우선으로 여기는 정책은 우리가 지속적으로 추구해온 이상향이다.
사실 ‘증거 기반 정책’이 새롭게 등장한 화두는 아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의학 분야에서 발전한 ‘증거 기반 의학(무작위 통제 실험(RCT)을 통해 확보된 증거를 통해 치료 효과가 있는지 판명)’의 개념이 점차 다른 영역으로 확대되면서 1990년대 후반 전환점을 맞이했다.
1990년대 후반 영국 토니 블레어정부는 ‘중요한 것은 작동하는 것(What matters what works)’이라는 말과 함께 증거에 기반을 둔 정책을 강조했으며 다른 국가들에서도 정부개혁 핵심 요소로 여기는 분위기가 확산됐다. 더욱이 빅데이터 인공지능 등 기술 발달 속도가 빨라지면서 증거 기반 정책 확장성은 더 커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 시점에서 우리는 한가지 짚어볼 문제가 있다. 과학적 근거에 기초한 혹은 과학적 증거에 기반한 수식어 안에 어떤 논의 과정이 진행되었는지 상세한 설명이 이뤄지고 있는지 말이다. ‘과학적 근거에 기초를 했으니 혹은 전문가들이 논의한 결과이니 믿으라’는 식의 1차원적인 발표는 신뢰를 얻기가 어렵다.
과학은 기본적으로 연구대상의 시간적 공간적 범위를 한정한 뒤 가설을 입증한다. 임의적으로 설정한 틀에서 이뤄지는 한계성을 연구자들은 누구보다도 잘 알기 때문에 연구 한계점 등을 반드시 기록한다. 이 연구가 어느 위치에 서 있으며, 이를 통해 우리가 파악해야 할 점은 무엇인지를 명확하게 알리기 위해서다.
그렇다면 과학 기반 정책 역시 이 한계를 인정하고 그에 따른 문제들을 면밀히 검토한 뒤 현시대에 적합한 최상의 방법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 때문에 이 논의과정에 대한 설명은 생략한 채 과학이라는 표제만 앞세우면 실제 정책이 집행될 때 고민해야 할 지점들을 놓칠 수 있다.
이번에 새롭게 발표한 정책은 이러한 과학적 근거에 기반을 뒀고 이런 한계가 있지만 그럼에도 현시점에서는 이 정책을 결정하는 게 편의 크기를 최소화할 수 있다는 설명이 필요하다. 편의 크기는 0에 가까울수록 추정이 정확하다는 뜻이다.
그래야만 정권이 바뀌어도 해당 정책이 정치적 셈법에 휩쓸리지 않고 지속될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높아질 수 있다. 손바닥 뒤집듯이 바뀌는 정책을 우리는 숱하게 봐왔다.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과학을 내세웠으면 그에 합당한 설명도 함께 이뤄지는 것은 기본이다. 바닥으로 떨어진 정책 신뢰도를 높일 수 있는 방법은 기본부터 제대로 하는 수밖에 없을 것이다.
김아영 정책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