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촌

중동 재편의 기회, 한국 외교의 새 방향

2025-01-24 13:00:02 게재

마침내 가자지구에서 총성이 멈췄다. 그런데 지난 15개월간 전쟁으로 인해 중동의 판세가 완전히 변했다. 하마스와 헤즈볼라의 세력이 크게 위축됐다. 이들의 뒤를 봐주던 이란도 이스라엘과의 몇차례 공방에서 취약점을 노출했다. ‘저항의 축’이 휘청거리는 틈을 타 시리아 반군세력인 하야트 타흐리르 알샴(HTS)이 53년간 군림해 온 아사드정권을 무너뜨렸다. 이로써 과거 이스라엘, 아랍, 그리고 이란 이렇게 3자간에 유지되어 왔던 중동지역 내 세력균형이 깨져버렸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우리의 중동외교도 변해야 한다.

첫째, 시리아와의 수교 가능성을 진지하게 검토하자. 유엔 회원국 193개국 중 우리가 외교관계를 맺지 않고 있는 나라는 시리아가 유일하다. 또한 시리아도 웬만한 국가와는 이미 수교했지만 북한과 특수관계 때문에 한국과 수교는 예외로 남겨놓았다. 양국 모두 이러한 비정상을 정상화시켜야 할 시점이다. 시리아 과도정부가 온건화와 포용정책으로 변신을 꾀하고 있으며 서방국가들도 이의 이행 여부를 조심스레 지켜보면서 시리아에 대한 정책 변화를 모색하고 있다.

한-시리아 수교의 시점이 중요하다. 우리는 시리아 과도정부의 변화를 면밀히 관찰하면서 때가 되었다고 판단되면 신속하게 그리고 조용하게 수교에 나서야 한다. 시리아의 장래를 확신할 수 없음으로 수교에 신중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설령 그렇게 되는 경우라도 우리보다 훨씬 오랫동안 깊이 시리아와 관계를 맺고 있는 국가들이 먼저 고민해야 할 사안이다.

이-팔 분쟁에 적극적 외교로 임해야

둘째,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에 대해서는 보다 적극적인 외교로 임해야 한다. 작년 유엔개발계획(UNDP)에 따르면 가자지구 재건에 400억~500억달러가 소요된다고 한다. 곧 거대한 건설시장이 열리며 이를 위한 국제펀드가 조성될 것이다. 불황에 시달리는 우리 건설업계에게는 놓칠 수 없는 기회이므로 이를 지원하기 위한 외교적 노력이 필요하다.

이와 더불어 팔레스타인에 대한 공적원조도 대폭 증액시켜야 한다. 그간 팔레스타인에 대한 우리의 원조 규모는 다른 OECD 공여국에 비해 보잘 것이 없었다. 가자지구 복구사업에서 우리 기업들이 경제적 기회를 확보하기 위해서라도 정부 차원에서는 원조 증액에 적극성을 보여야 한다. 최근 우리 정부가 대외개발원조(ODA) 증액을 위해 많이 노력하고 있어 다행인데 이제는 원조대상국의 우선순위에 대한 조정이 필요하다.

또한 종전 후 미래의 가자지구 내 통치주체와 안보주체에 대해 아직 확실한 방향이 잡힌 건 아니지만 이와 관련한 우리의 역할에 대해서는 미리 검토해 놓아야 한다. 미국의 싱크탱크인 윌슨센터가 지난해 5월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가자지구의 전후 구상과 관련해 다자통치체제가 제시되면서 한국의 참여 가능성도 언급됐다.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우리의 역할에 대한 국제사회의 기대가 높아진 만큼 이 문제에 대해 우리 정부가 시급히 그리고 적극적으로 검토해야 한다.

이 보고서는 상당기간 국제경찰군이 구성돼 가자지구의 안보를 총괄하는 방안도 제시했다. 그간 우리나라는 레바논 남부를 포함 세계 여러 지역에 유엔평화유지군을 파견했는데 만약 가자지구에도 파견하게 된다면 가시성(visibility) 효과가 클 것이다.

이스라엘, 팔레스타인 지역에 대한 정상외교를 활성화시켜야 한다. 우리 대통령이 이 지역을 방문한 사례는 전무하다. 그러나 일본 총리의 경우 최소 4차례 걸쳐 이 지역을 방문했다. 이제 우리도 간간히 성명을 발표하는 정도의 소극적 외교를 넘어 우리의 국제적 지위에 상응하는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만약 우리 대통령의 방문을 추진하는 경우에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동시방문의 형식이 되어야 마땅하다.

한-이스라엘-아랍 삼각협력의 시대

셋째, 이스라엘-아랍-한국이 참여하는 3각협력체제를 구축하자. 2020 아브라함 협정으로 UAE 등 아랍 4개국이 이스라엘과 수교한 후 텔아비브-두바이 간 정기항공편이 운항되고 있으며 이스라엘과 아랍국가 간 공동 경제프로젝트 가능성도 거론되고 있다. 공동 프로젝트의 경우 이스라엘의 기술력, 아랍국가의 자본, 실력과 경험을 갖춘 이행파트너가 필요하다. 그 이행파트너로는 한국 기업이 최적이다. 우리가 경쟁국보다 한발 빠르게 움직여 삼각협력체제를 주도해나가야 할 것이다.

이제 우리 외교는 한류의 전세계적 확산효과를 바탕으로 선진국 위상에 걸맞는 영향력을 발휘해야 한다. 특히 대 중동외교를 추진함에 있어 경제적 자원외교를 넘어서서 이 지역의 새로운 질서와 안정을 만들어가는 국제적 노력에 동참하면서 우리 몫을 당당히 수행해야 한다.

마영삼 고려대 아연 연구위원 전 주이스라엘 대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