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시론
이재용 결국 무죄, 책임은 누가 지나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삼성물산-제일모직 부당합병·회계부정 혐의에 대해 1심에 이어 2심에서도 모두 무죄를 선고 받았다. 2020년 9월 기소된 지 4년 5개월 만이다. 검찰은 1심에서 19개 혐의를, 2심에선 23개 혐의를 적용했지만 하나도 유죄를 받아내지 못했다. 검찰의 완패다. 검찰의 무리한 수사와 기소가 입방아에 오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번 사건은 2018년 금융위원회 산하 증권선물위원회 고발로 시작됐다. 서울중앙지검 수사팀은 제일모직 자회사 삼성바이오로직스의 분식회계 정황을 확인한 후 300여명을 860회 상당 조사하고 53곳이 넘는 장소를 압수수색하는 등 강도 높은 수사를 벌였다. 삼성측 서버와 PC에서 압수해 분석한 디지털 자료만 2270만건(약 24TB)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수사중단과 불기소 의견이 검찰 외부에서 강했지만 이를 무시하고 검찰은 수사와 기소를 강행했다. 이 회장은 수사 과정에서 수사심의위원회 소집을 요청했고, 2020년 6월 수심위는 ‘10대 3’의 압도적인 표차로 ‘수사 중단과 불기소’를 의결했다. 하지만 서울중앙지검 수사팀은 같은 해 9월 이 회장을 기소했다. 2018년 1월 제도 시행 이후 수심위 권고를 무시한 첫 사례였다. 당시 이 회장은 이미 ‘국정농단’ 사건으로 2017년 2월 구속기소돼 수사·재판을 받고 있었다.
‘윤석열 라인’ 이복현 금감원장이 수사·기소 주도
검찰의 수사책임 문제가 불거질 수밖에 없다. 특히 이번 사건은 이른바 ‘윤석열 라인’으로 불렸던 친윤(친 윤석열) 검사들이 수사책임자들이었다. 이 회장 승계 작업에 관한 사건 수사를 이끈 건 당시 서울중앙지검 3차장 검사였던 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다. 이 시기 서울중앙지검장은 윤석열 대통령이었다. 2020년 9월 수사를 마무리 짓고 재판에 넘긴 사람은 당시 서울중앙지검 경제범죄형사부 부장검사였던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다.
항소심 재판부인 서울고법 형사13부는 3일 회계부정 혐의와 관련해 2심에서 추가된 부분을 포함해 이 회장에 대한 23개 공소사실 모두를 무죄로 판단했다. 이와 함께 최지성 김종중 장충기 등 삼성그룹 전현직 임직원 12명과 삼정회계법인과 소속 회계사 모두 무죄를 선고받았다. 재판부는 “회계처리 관련 일부 피고인들이 특정한 의도 내지 방향성을 드러내거나 문서를 조작하는 등의 부적절한 행위가 있었다”고 인정하면서도 “그 처리 결과는 검사의 주장과 달리 전체적으로 판단의 근거와 과정에 최소한의 합리성이 있었다”고 판단했다.
검찰의 무리한 수사와 기소로 이 회장은 2017년부터 이번 2심 선고까지 8년이라는 기간 동안 사법리스크를 떠안은 것이다. 이 회장의 사법리스크는 삼성전자가 고전하는 이유 중 하나라는 점을 배제하기 어렵다. 당시 수사와 기소를 주도했던 이복현 부장검사는 현재 금융감독의 수장이 됐다.
재판부, 검찰의 무리한 수사방식에 제동
특히 1,2심 재판부가 무죄를 선고하면서 사실상 검찰의 수사방식을 문제삼은 점을 눈여겨봐야 한다. 검찰이 제출한 주요 증거 상당수가 위법수집증거로 증거능력이 인정되지 않은 것이다.
재판부는 “(증거의) 선별 절차를 수사기관의 광범위한 재량 아래 둘 수 없다”고 전제하며 “피압수자의 참여권을 보장하고 무관한 정보를 삭제·폐기·반환하려는 노력은 엄격한 기준이 있고, 그에 따라 적법성·절차적 정당성 확보가 당연히 선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삼성바이오로직스와 삼성바이오에피스 서버 등 주요 증거들에 대해 “압수수색 과정에서 탐색·선별 등 절차의 존재 및 실질적 참여권 보장이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며 “범죄 혐의와 관련성 없는 정보의 삭제·폐기 의무도 이행되지 않았고, 그로 인한 2차적 증거 역시 적법 절차의 실질적 내용을 침해해 수집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아울러 “형사사법의 정의 실현을 위해 예외적으로 증거능력이 인정돼야 할 사정이 있다고 하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이런 법원의 판단에도 불구하고 검찰은 수사방식의 재검토보다는 이 회장에 대해 대법원 상고 여부를 우선 검토하고 있다. 무리한 수사방식으로 초래한 1,2심 무죄라는 성적표를 받아든 검찰이 책임지는 모습은 상고일까. 수사와 1,2심 재판이 진행되는 동안 삼성전자는 초격차경쟁에서 서서히 밀려났다. 한국경제도 덩달아 힘을 잃어가고 있다. 검찰의 상고로 이 회장이 또 사법리스크에 얽매일 경우 삼성은 더욱 힘들어질 수도 있다.
이선우 기획특집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