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이스라엘의 인종청소 사실상지지

2025-02-05 13:00:03 게재

네타냐후와 회담, 팔 주민 제3국 재정착 … 미국이 가자지구장악 주장도

활동가들이 4일 워싱턴 DC 백악관 근처에서 열린 ‘네타냐후 체포 백악관 집회’에서 팔레스타인을 지지하는 집회를 하고 있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4일 백악관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만났다. AFP=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이스라엘과 하마스 간의 전쟁으로 파괴된 가자지구에서 팔레스타인 주민들이 이주해야 한다며 이스라엘의 인종 청소를 사실상 지지하는 발언을 내놨다.

또 미국이 가자지구를 장악해 관리하겠다는 주장까지 제기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4일(현지시간) 취임 이후 처음으로 외국 정상과의 회담에서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와 만나 가자지구의 미래에 대한 구상과 중동 문제에 대한 논의를 이어갔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백악관에서 진행된 정상회담 전 기자들과 만나 팔레스타인 주민들을 가자지구가 아닌 제3국에 재정착시켜야 한다는 입장을 재확인했다.

트럼프는 “그들이 왜 가자지구로 돌아가고 싶어 하겠느냐? 그곳은 지옥이었다”면서 “사람들이 가자로 돌아가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가자로 돌아가면 결국 죽음을 맞이하게 될 것이라 장담한다. 똑같은 일이 반복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트럼프는 또 “다른 사람들, 매우 부유한 국가들”이 자금을 지원해 요르단, 이집트 등 주변 국가에 팔레스타인 주민들의 재정착지를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만약 그들에게 대안이 있다면 그들은 가자로 돌아가지 않고 아름답고 안전한 곳에서 살기를 원할 것”이라며 팔레스타인 주민들에게 새로운 삶의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 발언은 팔레스타인 주민들이 가자지구 밖으로 임시로 이주하는 것이 아니라 영구적으로 재정착해야 한다는 트럼프의 입장을 시사한다.

이 같은 발언에 대해 요르단과 이집트는 이미 가자지구 주민의 이주를 반대하는 입장을 밝혔을 뿐 아니라 이들 국가들이 팔레스타인 주민들을 수용할 가능성 역시 의문이다.

영국 ‘가디언’지는 트럼프의 이번 발언은 사실상 팔레스타인인들을 강제로 다른 지역으로 이주시키는 ‘인종청소’에 가까운 주장이라고 비판했다. 이 매체는 트럼프가 팔레스타인인들에게 돌아갈 땅이 없다고 선언하며, 가자지구를 “순수한 파괴 장소”로 묘사했다고 전했다.

이 신문은 트럼프가 팔레스타인인들을 “다른 아름답고 안전한 곳”으로 이주시키는 것만이 가자지구로 돌아가는 것보다 낫다고 주장하는 방안을 사실상 인종 청소에 비유했다.

실제로 팔레스타인인들에게 자신들의 고향을 떠나라는 압박은 그들의 민족적 정체성을 훼손하는 행위로 간주될 수 있으며, 강력한 반발이 예상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트럼프는 “나는 요르단과 이집트가 받아들일 것이라 생각한다”고 거듭 주장했다.

이날 트럼프와 네타냐후는 지난달 이스라엘과 하마스 간에 합의한 휴전 협정의 진전을 논의했다.

두 정상은 휴전 2단계 협상 타결을 위해 미국과 이스라엘이 협력할 필요성에 대해 언급하며, 앞으로의 중동 상황에 대한 구체적인 논의를 이어갔다. 네타냐후 총리는 “이스라엘과 미국이 함께 노력하면 휴전 2단계 협상이 타결될 가능성이 매우 커진다”고 자신감을 보였다.

트럼프 역시 회담을 통해 자신이 중동 평화 협상에서 강력한 리더십을 발휘하고 있다고 강조하며 “우리는 이스라엘에 맞는 리더를 갖고 있다. 네타냐후 총리는 아주 잘 해냈다”고 말했다. 또 “우리는 오랫동안 친구로 지내왔고, 앞으로도 함께 협력할 것”이라고 확인했다.

뿐만 아니라 기자들이 트럼프에게 “휴전 협상 타결로 모든 인질을 데려오는 사람이 노벨평화상을 받을 자격이 있다”고 언급하자 트럼프는 “나는 받을 자격이 있다. 하지만 그들은 절대 나에게 노벨평화상을 주지 않을 것”이라고 응수했다.

이는 트럼프가 자신이 중동 평화 협상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한편, 국제 사회가 그의 공로를 인정하지 않을 것이라는 현실을 언급한 것으로 해석된다.

정상회담이 끝난 뒤 가진 기자회견에서는 가자지구를 미국이 관리하는 구상까지 밝혔다. 트럼프는 기자회견에서 가자지구의 팔레스타인 주민을 다른 지역에 재정착시켜야 한다면서 “미국이 가자지구를 장악할 것(take over)”이라고 밝혔다.

그는 “우리는 가자지구를 소유할 것이며 현장의 모든 위험한 불발탄과 다른 무기의 해체를 책임지고, 부지를 평탄하게 하고, 파괴된 건물을 철거하고, 지역 주민에게 일자리와 주거를 무한정으로 공급하는 경제 발전을 일으킬 것”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하자마자 국제적 합의사항인 ‘두 국가 해법’ 대신 팔레스타인 주민들의 이주와 재정착을 주장한 것은 일방적으로 이스라엘 편을 들어준 것으로 향후 아랍 국가들과 팔레스타인 측의 강한 반발은 물론이고 국제사회에서도 적잖은 논란을 일으킬 것으로 예상된다.

정재철 기자 jcju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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