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시평

‘딥시크 쇼크’의 네가지 교훈

2025-02-05 13:00:07 게재

중국 발 ‘딥시크(DeepSeek) 쇼크’가 전세계를 강타했다. 설립(2023년 7월)한 지 1년이 갓 지난 중국 스타트업이 미국 실리콘밸리를 뺨치는 인공지능(AI) 모델을 선보여서다. 자본금 100만위안(약 19억9000만원)으로 설립된 딥시크사가 139명뿐인 연구개발(R&D) 인력에 미국 기업들의 1/20 비용(약 80억원)만으로 미국 오픈AI의 대규모 언어모델(LLM) 챗GPT와 맞먹는 성능의 AI 모델을 개발해냈다.

미국의 ‘빅테크’ 기업과 투자자들이 받은 충격이 얼마나 컸는지는 증권시장에서부터 드러났다. 딥시크 뉴스가 공개된 뒤 열린 첫날 뉴욕증시에서 엔비디아 등 관련 기업들의 주식 시가총액이 하룻새 1조달러(약 1458조원)나 증발했다. 실리콘밸리에서는 ‘AI분야의 스푸트니크 쇼크’라는 말까지 나왔다. 1957년 옛 소련이 세계 최초로 유인우주선 스푸트니크호 발사에 성공하면서 미국에 우주기술에서 한 수 위임을 만천하에 과시했던 ‘악몽’이 재현됐다는 것이다.

중국발 딥시크 충격 ‘AI분야의 스푸트니크 쇼크’급

중국의 신생기업이 ‘세계 AI의 유일 초강대국’임을 자부해 온 미국에 일격을 가한 것이어서 파장이 더욱 컸다. 게다가 미국정부가 중국에 가한 제재조치를 뚫고 이뤄낸 일이다. 딥시크는 미국의 제재로 엔비디아의 고사양 AI 반도체를 쓸 수 없게 되자 저가형을 사용하고도 혁신적 AI 모델을 만드는 데 성공했다. 각국 전문가들은 ‘딥시크 쇼크’의 의미와 향후 전개방향을 분석하느라 분주해졌다. 이들의 진단은 크게 네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AI 등 첨단산업 분야에서 중국의 저력이 만만치 않으며 상당 부분 세계 최고수준에 도달했다는 관측이다. 딥시크의 성공은 미국 등 서방이 아무리 AI 반도체와 제조장비 수출을 틀어막더라도 중국이 야심차게 추진해 온 ‘기술굴기’를 막기 어려움을 보여줬다. 더구나 딥시크 AI 모델을 개발한 주역들은 중국 안에서 공부하고 훈련받은 ‘국내파’들이다. “미국은 혁신하고, 중국은 베끼고, 유럽은 규제한다”며 중국을 얕잡아봐 온 서방전문가들이 무색해졌다.

둘째, 중국 기업들은 실리콘밸리 못지않은 혁신 역량에 일본 기업들의 전매특허였던 ‘카이젠(改善)’ 기법까지 장착했다. 1970년대와 1980년대에 도요타 소니 등 일본 제조업체들이 미국과 유럽 기업들을 제치고 세계 최고의 실적을 냈던 비결로 꼽힌 게 ‘카이젠’이었다. 지속적으로 낭비요소를 제거하고 업무절차를 간소화해 끊임없는 효율 향상을 이뤄낸 일본 기업들의 ‘카이젠’은 전 세계 경영학자들의 연구대상으로까지 떠올랐다.

일본기업들이 1990년대 이후 ‘잃어버린 30년’의 장기침체를 겪으면서도 버텨올 수 있었던 ‘비기(祕技)’로 꼽히는 것도 ‘카이젠’이다. 중국 기업들은 미국 등 서방의 여러 제재조치로 첨단장비와 부품 수입에 어려움을 겪자 ‘카이젠’으로 눈을 돌렸다. 일본기업에서 정년퇴직한 카이젠 관련 전문가들을 높은 급여를 제시하며 대거 영입해 ‘본고장’ 일본을 능가하는 수준의 ‘중국식 카이젠’으로 진화시켰다(파이낸셜타임즈 1월31일자)는 것이다.

규제 천국인 대한민국 ‘딥시크 쇼크’ 가장 무겁게 받아들여야

셋째, 중국의 탄탄한 첨단산업기술 생태계다. 지방대학을 나온 비주류 청년이 정부와 대기업 지원 없이 미국 빅테크를 능가하는 AI모델을 개발해낸 것은 중국의 소프트웨어 생태계 곳곳에 만만치 않은 ‘혁신’의 뿌리가 내려져 있음을 보여줬다.

넷째, 한국 정부와 기업들에 뼈아픈 경고음을 울렸다. 중국은 시진핑정부 들어 공산주의 통제체제를 강화하면서도 신기술사업에 관한 한 기업과 개인들이 마음껏 창의를 발휘할 수 있는 공간을 열어놓고 있음이 확인됐다. 반도체산업 R&D 인력에 한정해서조차 획일적인 주52시간 근무 제한조치를 푸는 문제로 호들갑을 떨고 있는 ‘규제 천국’ 한국과 비교하지 않을 수 없다. ‘딥시크 쇼크’를 가장 무겁게 받아들여야 할 나라가 대한민국이다.

이학영 경제사회연구원 고문 전 한국경제신문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