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불안에 튀르키예 금융시장 ‘패닉’
리라화 방어 120억달러 날려
야당 대권주자 구금 연장
지난 19일 검찰은 이마모을루 시장을 쿠르드노동자당(PKK) 및 관련 조직에 대한 지원 혐의와 부패 혐의 등으로 체포했다. 그는 에르도안 현 대통령의 유력한 정치적 라이벌이자 야권 공화인민당(CHP)의 차기 대선후보로 거론되는 인물로 튀르키예 제1 도시 이스탄불 시장을 역임 중이었다. 야권은 그의 체포를 “대통령 선거에 대한 쿠데타 시도”라며 강력히 반발했고, 튀르키예 전역에서는 수일간 대규모 항의 시위가 벌어졌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이를 “거리의 테러”라고 규정하며 강경 대응 방침을 밝혔다.
정치적 격변은 금융시장에 즉각 충격파를 던졌다. 체포 소식이 전해진 당일, 리라화 가치는 미국 달러 대비 최대 11% 폭락해 사상 최저치를 경신했다. 투자자들은 대거 자금을 회수하며 시장에서 이탈했다. 이스탄불 증시의 BIST 100 지수는 21일 하루에만 8% 급락하며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최악의 한 주를 기록했다.
시장을 진정시키기 위해 튀르키예 중앙은행은 19일부터 21일까지 총 120억달러를 외환시장에 투입해 리라화를 방어했다. 뷰륌제크치 리서치와 관계자들에 따르면 20일 하루 동안에만 약 115억달러가 투입됐으며 이는 기존 중앙은행 개입 기록의 네 배에 해당하는 규모다. JP모건은 “막대한 자금 유출로 리라 유동성이 크게 훼손됐다”고 지적했다.
중앙은행은 20일 긴급 통화정책 회의를 열어 콜금리를 인상하는 추가 조치도 단행했다. 리라화 예금에서 달러화로의 이동을 막기 위한 응급 조치로 리라화의 급락세를 다소 진정시키는 데 성공했다. 이를 통해 지난주 리라화는 총 3% 하락에 그쳤지만, 시장의 전반적인 신뢰 회복에는 여전히 한계라는 평가가 나온다.
에르도안 대통령이 2023년 재선 이후 추진해 온 경제개혁 프로그램에도 심각한 타격을 줄 가능성이 크다. 메릴린치 출신의 메흐메트 심섹 재무장관이 주도하는 개혁프로그램은 고물가·저금리라는 에르도안식 정책에서 벗어나 기준금리 인상과 세금 인상 등 정통적 긴축 정책을 통해 외국인 투자자 신뢰 회복과 인플레이션 억제를 목표로 하고 있다. 그 결과 2022년 말 85%를 넘었던 인플레이션은 현재 39% 수준까지 하락했고, 외환보유액도 2023년 중반 570억달러에서 최근 1000억달러 가까이 회복되며 긍정적 지표를 나타냈다.
그러나 이번 외환시장 개입으로 외환보유액이 다시 줄어들 가능성이 높아졌고, 정치 리스크까지 겹치면서 시장의 불안감은 더욱 커졌다.
특히 해외 장기 투자자들은 에르도안 대통령이 언제든 비정통적인 정책으로 회귀할 수 있다는 점에서 튀르키예 자산에 대한 신중한 접근을 유지하고 있다.
반면, 연 40%를 넘는 고금리를 노린 헤지펀드 등 단기 투자자들은 약 350억달러 규모의 ‘캐리 트레이드’ 전략으로 튀르키예 시장을 노리고 있다. 에르도안 정부가 정치위기와 금융시장 불안을 동시에 해결해야 하는 중대한 시험대에 오른 셈이다.
한편 튀르키예 법원은 23일 이마모을루 시장의 구금을 연장하기로 했다고 TRT하베르 등이 보도했다. 정치 불안은 더욱 커지고 항의 시위도 계속될 전망이다.
정재철 기자 jcjung@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