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 동묘앞역 “숭인역으로 바꿔주세요”
종로구 주민들 개명 요청 나서
전문가 초빙, 지역 정체성 찾기
“동묘 동관왕묘는 삼국지에 나오는 관우 사당입니다. 관우의 고향인 중국 산서성 상인들이 장사가 잘 되게 해달라고 건립하기 시작했어요. 전국에서 대부분 사라졌는데 서울 복판에는 남아 있어요.” “우리가 하면 되지.” “주민들이 힘을 모아야죠.”
서울 종로구 숭인2동주민센터 강당. 복기대(인하대 대학원 융합고고학과 교수) 종로구 문화재위원이 동네 앞 동묘(東廟)에 대한 설명을 시작하자 주민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한다. 어렴풋이 인식하고 있었던 사실을 역사학자가 확인해 줬기 때문이다.
11일 종로구에 따르면 구는 동묘 일대 주민과 상인들이 오랫동안 숙원해 온 지하철역 개명에 나선다. 지하철 1·6호선 동묘앞역과 인근에서 일상적으로 펼쳐지는 동묘벼룩시장으로 잘 알려진 동묘라는 명칭이 지역 정체성과 맞지 않다는 판단이다. 동묘는 국내에서도 잘 알려진 소설 ‘삼국지’에 나오는 장수인 관우 즉 관왕의 위패가 있는 사당이다. ‘동관왕묘’라고도 불린다.
최근 숭인2동주민센터에서 열린 ‘동묘앞역 개명 필요성에 대한 역사적 고찰’ 강연은 그 일환이다. 복기대 위원이 그간 연구해온 결과를 공유했다. 그는 “중국에서는 일찌감치 재신(財神)으로 추앙됐고 국내에는 임진왜란 때 명나라 장수들이 조선에 주둔하며 처음 추진했다”며 “한일병탄 후 전국 관우 사당을 통폐합해 동묘로 옮겼고 이후 일본 신도(神道) 세력들이 대수선해 신사처럼 바꿨다”고 설명했다. 복 위원은 “광복 이후 관우를 신으로 모시는 종교 세력이 유지관리를 해왔는데 1960년대 보물로 지정됐다”며 “중국에서 시작된 무속신앙이 우리가 보존해야 할 문화유산인지 되짚어봐야 한다”고 덧붙였다.
주민들은 이번 기회에 동묘앞역이라는 지하철역 이름도 바꿔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숭인동이라는 지명은 조선시대 한성부 내 ‘숭신방’과 ‘인창방’에서 유래했기 때문이다. 실제 노원구 당고개역이 무속과 연관된 이름이라는 이유로 꺼려진다는 주민들 의견을 반영해 불암산역으로 바뀐 사례도 있다.
주민 강동섭(69)씨는 “동묘는 우리 문화재가 아닌데도 서울 복판에 떡하니 자리잡고 있다”며 “숭인동에서 시작해 인근 창신동 나아가 종로구 주민들이 동묘 이전이나 폐지에 앞장서고 이후 지하철역 이름도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이웃 창신동 주민 윤효민(68)씨와 신영숙(70)씨도 “무심코 지나쳤는데 개선해야 할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종로구 역시 동묘를 보물로 보전해야 하는 이유와 문화재적 가치에 대해 재고할 필요가 있다는 입장이다. 정문헌 구청장은 “이번 강연이 주민 자긍심을 높이고 종로의 미래를 다시한번 생각하는 시간이 됐을 것”이라면 “주민과 상인들의 오랜 바람이 이뤄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종로구는 동묘와 함께 탑골공원의 역사적 의미를 되찾는데도 주력하고 있다. 3.1운동 당시 독립선언서를 낭독했던 민족사의 현장인데 방치되다시피 해왔기 때문이다. 지난 2023년 중장기 개선방안을 마련했고 7대 종단과 함께 ‘성역화 범국민 추진위원회 발기인대회’도 열었다.
특히 지난해에는 1980년대에 설치된 담장 일부 해체를 시작으로 폐쇄됐던 북문과 동문을 개방할 수 있었다. 올해 서문 복원에 이어 장기적으로는 공원구역을 확대하고 3.1만세운동 기념관을 건립한다는 구상이다.
정문헌 종로구청장은 “종로는 단순한 행정구역이 아니라 우리 민족의 정체성이 담긴 곳”이라며 “그 가치를 제대로 살리고 미래세대까지 이어가는 것은 중요한 책무이자 종로만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김진명 기자 jmkim@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