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자재마트 온갖 갑질로 납품업체 울려”
법 허점 이용해 불법행위 납품미끼로 원가이하 강요 … “법 개정해 강력 규제 해야”
“식자재마트가 지역사회의 자본을 빨아들이는 거대한 블랙홀이 됐다.”(송치영 소상공인연합회장)
“납품을 미끼로 차량, 쇼케이스, 냉장고까지 온갖 물품을 공급업자에게 떠넘긴다.”(손수호 한국콩나물숙주농업인협회장)
소상공인들이 식자매마트의 갑질에 목소리를 높였다. 이들은 강력한 규제를 주문했다.
식자재마트는 1000㎡ 이상 3000㎡ 미만의 식료품매장을 지칭한다. 원래는 식당에 저렴한 가격으로 식자재를 공급하기 위한 유통매장이었다. 대형마트와 슈퍼수퍼마켓(SSM)이 규제로 확장에 제동이 걸리자 골목상권에서 몸집을 키웠다. 일부 식자재마트는 자본력 매장면적 주차장 등 모든 측면에서 사실상 대형마트에 가깝다.
14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국내 3대 식자재마트인 식자재왕마트 세계로마트 장보고식자재마트의 매출합계는 2014년 3251억원에서 2023년 1조680억원으로 3.2배 급증했다.
이들의 성장은 현행법을 교묘히 파고 든 결과다. 유통산업발전법 규제는 매장 면적이 3000㎡가 넘는 곳에 적용된다. 일부 식자재마트는 ‘매장 쪼개기'를 한다.
수원의 식자재마트는 총면적 4580㎡를 운영하면서 건물을 3개 동으로 나눠 1000㎡ 이하 소매점으로 등록했다. 건물 사이를 통로로 만들어 사실상 하나로 운영하면서 법망을 피하는 것이다. 어떤 곳은 비교적 건축규제가 덜한 제1종 근린생활시설(매장 면적 1000㎡ 미만)로 건축허가를 받고 판매시설 규모를 확장하기도 한다.
특히 △표준계약서 작성 의무 규정 △월 2일 의무휴업일 지정 규제 △영업시간 제한 등도 적용받지 않는다.
매출액 1000억원을 초과할 경우에만 적용되는 대규모유통업법 규제 밖에 있기 때문이다.
차남수 소상공인연합회 정책홍보본부장은 “식자재마트가 규제로부터 자유롭다 보니 각종 갑질행위외 시장교란을 일삼고 있다”고 지적했다.
9일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식자재마트 규제 사각지대의 문제점과 개선방안’ 토론회에서도 식자재마트의 횡포가 쏟아졌다.
강종성 한국계란산업협회장은 “식자재마트가 계란을 미끼상품으로 상시적인 세일에 나서며 원가 이하의 납품을 강요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계란은 오래 보관할 수도 없고 납품처를 찾지 못하면 손해가 더 크기 때문에 터무니없이 낮은 가격에도 납품에 응할 수밖에 없다.
강 회장은 “수억원 상당의 입점비 강요, 배타적 납품 강요, 매장관계자들의 금품 요구 등 온갖 갑질로 납품업자를 울리고 있다”고 비난했다.
손수호 한국콩나물숙주농업인협회장은 “식자재마트는 행사 시 원가의 30% 수준까지의 가격으로 납품을 요구한다”고 폭로했다. 그는 “공급업체들은 손실을 감수하고 납품할 수밖에 없는 불공정관행이 굳어지고 있다”고 호소했다.
소상공인들은 식자재마트의 규제 필요성을 강조했다.
송유경 한국슈퍼마켓협동조합연합회장은 “식자재마트가 유통산업발전법의 규제를 받지 않고 있어 동네 가게들이 직격탄을 맞고 있다”며 관련법 개정을 촉구했다. 이충환 전국상인연합회장도 “식자재마트로 인해 주변 소규모 가게와 전통시장은 상권 자체가 폐업 위기로 내몰렸다”고 말했다.
송치영 소상공인연합회장은 “건강한 유통생태계 복원을 위해 식자재마트에 대한 규제가 필수적”이라며 관련법의 개정을 정치권에 강력하게 촉구했다.
이에 성시내 산업통상자원부 유통물류과장은 “법 개정이 필요하다면 충분히 검토에 나서야 할 것이라고 본다”며 “식자재마트의 쪼개기 등 불법·편법 운영은 지자체와 협력해 반드시 엄정하게 대처하겠다”고 말했다.
김태균 공정거래위원회 유통대리점정책과장은 “대규모 유통법에 미달하는 업체라 하더라도 납품업자들에 대한 식자재마트의 불공정거래에 대해서는 규제를 가할 수 있는 만큼 제도 개선을 위한 인식공유에 나서겠다”라고 밝혔다.
토론회에 참석한 오세희 의원(더불어민주당·비례대표)은 “식자재마트의 성장에는 규제의 사각지대와 납품업자들 눈물이 있었다”면서 “규정과 제도가 미비해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잡기 위해 공정한 유통질서를 깊게 들여다보겠다”고 했다.
현재 22대 국회에 식자재마트 규제 내용을 담은 15건의 법안이 발의돼 있다. 김형수 기자 hskim@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