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시평

한국의 경제기적과 ‘세계질서 3기’

2025-04-17 13:00:05 게재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한국의 경제성장은 경이적인 것이었다. 세계경제사를 통틀어서 5.5% 이상의 고성장을 30년 이상 달성한 나라는 매우 예외적이다. 한국개발연구원(KDI) 분석에 의하면 11개 나라가 해당한다. 이들은 다시 두 덩어리로 구분할 수 있다.

하나는 자원 부국이다. 괄호의 수치는 30년 평균 성장률이다. 적도 기니(8.9%), 오만(7.1%), 리비아(7.1%), 보츠와나(7.0%), 사우디아라비아(5.9%)가 해당한다. 다른 하나는 동아시아 발전국가들이다. 대한민국(7.0%), 타이완(6.8%), 중국(6.5%), 싱가포르(6.5%) 일본(6.5%), 홍콩(5.8%)이 해당한다.

‘기적의 경제성장’ 진짜 비결은 ‘세계질서와 지정학적 단층선’

동아시아 발전국가들은 도대체 어떻게 경이적인 경제성장을 할 수 있었을까? 도시국가에 해당하는 싱가포르와 홍콩을 논외로 하면, 한국 타이완 중국 일본은 다섯 가지 공통점이 있다. 첫째, 토지개혁을 했다. 둘째, 수출-제조업 중심 국가였다. 셋째, 친미 국가였다. 넷째, 지정학적으로 소련 혹은 공산주의 국가와 국경을 접하는 최전선에 있었다. 다섯째, 바다를 끼고 있는 국가였다.

참고로 중국의 경우 1972년 이전에는 ‘반미’ 노선을 걸었지만 그 이후에는 ‘친미’ 노선을 걸었다. 1960년대 후반 소련과의 국경분쟁과 1972년 닉슨의 중국 방문을 기점으로 중국은 친미-반소 외교노선을 걸었다.

흥미로운 것은 △토지개혁 △수출-제조업 △친미국가 △지정학적으로 공산주의와 접경 국가 △바다를 끼고 있는 지리적 특징은 서로 연결되어 작동했다. 예컨대 일본과 한국, 대만은 모두 ‘공산화를 막기 위해’ 토지개혁을 실시했다. 농지개혁을 안 하고 공산화되는 것보다 농지개혁을 하고 공산화를 막는게 낫다는 정치적 합의가 형성됐다. 토지개혁으로 인해 열심히 일할 인센티브가 생기고 교육 투자가 급증하게 된다.

수출중심 제조업을 성공할 수 있었던 것도 미국의 배려(?)가 큰 도움이 됐다. 미국은 시장을 개방하고, 원조와 차관을 제공하고, 기술을 지원했다. 미국은 이들 나라들이 ‘소련과의 접경지대’에 있었기에 세력균형 관점에서 힘을 실어줬다.

이렇듯 한국의 경제기적은 국내적 요인도 있었지만 국제적 요인 역시 결정적이었다. 공산주의와 국경을 마주하는 최전선, 지정학적 단층선, 친미 국가였기 때문에 가능했다. 분단과 한국전쟁이 ‘지정학적 비극’이었다면, 농지개혁과 기적의 경제성장은 ‘지정학적 축복’이었다.

세계질서 3기는 냉전, 탈냉전 모두와 다르다

세계질서가 다시 한번 급변하고 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1990년대까지를 냉전기, 1990년대 이후부터 최근까지를 탈냉전기로 표현할 수 있다. 지금은 ‘세계질서 3기’가 시작되고 있다.

가장 조심할 것은 세계질서 3기를 ‘신냉전’으로 이해하는 것이다. 정세오판은 한국의 국익에 해롭다. 냉전시대 미국은 자유무역을 지지했고, 소련은 폐쇄적 계획경제를 실시했다. 지금은 다르다. 미국과 선진국은 자유무역을 반대하고, 중국 등 신흥공업국이 자유무역을 찬성한다. 한국은 세계에서 제조업, 수출, 글로벌 대기업 비중이 가장 큰 나라다. 한국은 GDP대비 수출비중이 약 42%이고, 무역의존도는 약 90%다. ‘자유무역’은 한국의 국익에 부합한다.

외교안보 관점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세력균형론’이다. 인근 강대국을 견제하기 위해 원거리의 강대국과 협력하는 원교근공(遠交近攻)은 외교의 근간이다. 중국견제를 위해 한미동맹과 한미일 군사협력이 중요한 이유다. 세계질서 3기는 냉전, 탈냉전 모두와 다르다. 경제성장과 외교안보를 아우르는 실용주의 전략이 더욱 중요해졌다.

최병천 신성장경제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