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현장 리포트
‘살 수도, 지킬 수도 없는 집’…주거 안정성 붕괴된 미국
누구에게나 ‘내집 마련’의 꿈은 있기 마련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가장 높은 인구밀도를 자랑하는 한국에서나, 세계에서 세번째 광활한 토지를 가진 미국에서나 별반 다르지 않다.
그런데 문제는 미국에서의 내집 마련이 갈수록 어려운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는 점이다. 이 문제는 약 400만~700만채에 달하는 주택 부족 현상에서 비롯된다. 이는 단순히 주택가격이 높은 지역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중산층과 저소득층이 거주 가능한 중간 가격대의 주택이 현저히 부족한 것이 더 큰 문제다. 그래서 집을 구매하고 싶은 미국인들은 어느 때보다 훨씬 더 많은 월급을 지출해야만 하는 상황에 직면해 있다.
약 400만~700만채 주택부족 사태
사실 정확하게는 내집 마련에 앞서 현재 거주할 수 있는 공간을 찾는 과정부터가 고역이다. 이미 미국의 주택 임대료는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하버드대 주택연구센터의 2024년 보고서에 따르면 2022년 기준 임차인의 절반 정도는 소득의 30% 이상을, 4분의 1은 50% 이상을 임대료로 지출하고 있다. 연 소득 3만달러 이하 임차인의 83%가 비용 부담에 시달리고 있으며, 이 중 67%는 심각한 비용 부담 상태에 처해 있다고 한다. 이는 저소득층이 주거 비용으로 인해 다른 필수 지출을 줄이거나 포기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해 있음을 시사한다.
이런 상황에 놓이면서 미국의 젊은층은 내집 마련을 꿈꾸기는커녕 독립 자체가 어려워졌다. 기존 주택 보유자들조차도 치솟는 주택 유지 비용에 조금 더 저렴한 주택이 있는 지역으로 이사를 고려하거나 비슷한 가격의 더 작은 규모의 집으로 옮겨야 하는 선택의 갈림길에 섰다.
대체 왜 미국은 넓은 영토를 가지고도 주택 문제를 제대로 해결하지 못하고 있는 걸까? 펜실베이니아대 경제학자 벤 키스는 이 위기의 뿌리가 2008년 금융위기에서 시작되었다고 분석한다.
당시 미국은 주택시장의 붕괴를 경험하면서 대규모 건설 계획이 중단되었고 필요한 자금을 조달할 방법을 제대로 찾지 못하고 있다. 수년간 주택과 아파트 공급이 사실상 정체된 셈이다.
또한 몇몇 전문가들은 규제가 지나친 토지 이용 정책과 주거 밀도 제한, 관료적 승인 절차 등의 문제를 지적하기도 한다. 특히 일자리와 인프라가 밀집된 대도시일수록 다세대 주택이나 고층 아파트 건설에 대한 제한이 심해, 개발이 지연되거나 아예 무산되는 경우가 다반사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미네소타주 미니애폴리스시의 조치가 전문가들 사이에서 ‘효과적인 대책’이라는 긍정적 반응을 얻고 있다. 미니애폴리스시는 2019년 주거 밀도 제한을 완화하고 단독주택 지구에서도 다세대 주택 건설을 허용하였다. 더불어 새로운 건축물에 일정한 주차 공간을 확보해야 하는 기준을 폐지하고 승인 절차도 간소화했다.
그 결과 신규 주택 공급이 늘었으며 임대료도 안정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미니애폴리스는 미국 및 미네소타주 전체의 3배에 달하는 속도로 주택을 공급하고 있다. 덕분에 최근 수년 동안 임대료가 큰 변동 없이 유지되고 있다. 그러나 이같은 성공 사례는 아직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게다가 당분간은 주택 공급 문제가 실질적으로 해결될 가능성이 그리 커 보이지 않는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건축 자재에 대한 관세와 노동력 부족이 향후 주택시장에 장기적인 충격을 줄 수 있다”고 분석했다.
특히 중국 등에서 수입하던 자재에 평균 20~25% 수준의 높은 관세가 부과되면서 목재 철강 전기부품 등의 가격이 크게 상승했다. 이는 신규 주택 건설 비용을 끌어올리는 주요 요인이 되었다. 이렇게 자재 공급망이 불안정해진 가운데, 전체 공사 단가도 인플레이션 수준을 넘어서 상승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민 노동자의 감소는 공사에 필요한 인력의 부족과 직결된다. 특히 트럼프정부의 이민 제한 정책으로 합법적 이민자의 유입을 줄어들면서 문제는 더욱 악화되었다. 이는 건설업을 비롯한 주택 관련 산업의 노동력 공급에 장기적인 타격을 입혔다. 결국 이렇게 주택 공급에 필요한 인력이 복합적인 문제로 부족해지면서 공사 기간 지연과 인건비 상승 등이 이어지게 된다.
또다른 변수 ‘주택 보험시장의 위기’
한편 공급 부족과는 별개로 최근 미국 주택시장을 짓누르고 있는 또 다른 변수는 바로 ‘주택 보험시장의 위기’다. 미 언론에서는 기후 변화로 인한 자연재해가 빈번해지면서 민간 보험사들이 고위험 지역에서 철수하고 있다고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산불이 잦은 캘리포니아, 허리케인이 상시 위협이 된 플로리다, 홍수가 잦은 루이지애나 등이 대표적이다.
이러한 지역에서는 보험을 유지하기 위한 비용이 기하급수적으로 상승하고 있으며, 그마저도 선택지가 줄어들고 있다. 일례로 캘리포니아의 한 주민은 기존 보험료가 연간 1200달러 수준이었으나, 재가입 시 3800달러까지 치솟았다고 밝혔다.
일부는 아예 보험이 거절되거나 보장 범위가 축소되는 등 실질적인 주거 불안 상태에 놓였다. 캘리포니아 북부에 거주하고 있는 한 주민은 최근 자택 화재보험이 해지됐다는 통보를 받았다고 한다. 인근 지역에서 대형 산불이 발생한 이후, 그가 이용하던 보험사는 더는 해당 지역에 보험을 판매하지 않기로 했다. 다른 민간 보험사를 수소문해 봤지만, 비용은 2배가 넘었고 조건은 더욱 까다로워 결국 그는 캘리포니아주가 운영하는 ‘페어플랜(FAIR, Fair Access to Insurance Requirements Plan)’에 가입할 수밖에 없었다.
캘리포니아주의 FAIR플랜은 민간 보험사들이 기후 위험 지역에서 철수하면서 발생한 보험 공백을 메우기 위해 마련된 주 정부 주도의 응급조치다. 본래는 산불 등 재해 위험이 큰 지역 주민들이 기본적인 화재보험에 접근할 수 있도록 설계된 한시적 보완책이었으나, 최근 수년 사이 주택 보험시장의 불안정이 심화되면서 사실상 일반 주택 소유자들까지 의존하는 구조로 바뀌고 있다.
그러나 FAIR플랜은 보험료가 비쌀 뿐 아니라 보장 범위도 제한적이다. 예를 들어 화재로 인한 피해에만 지급액을 보장하기 때문에 태풍이나 지진 등 다른 형태의 자연재해, 절도 등 일반적으로 주택 보험에서 보장하는 항목들이 대거 빠져 있다.
결국 캘리포니아주의 주택 소유자들은 FAIR플랜과 함께 별도의 보험을 추가로 가입해야 하며, 이는 또 다른 경제적 부담으로 이어진다. 즉 FAIR플랜은 구조적 해결책이 아닌 응급조치에 불과하며, 장기적으로는 보험시장의 안정과 기후위험에 대응하는 체계적인 개편이 병행되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주택을 구매하려는 미국인들은 이제 단순히 ‘살 집’을 넘어서 ‘살 수 있는 집’을 찾아야 한다. 높은 가격을 감수하고 겨우 내집 마련에 성공하더라도 화재나 홍수 등의 재해로부터 그 집을 보호할 수 있는 수단이 점점 사라지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기후 변화가 심각하게 영향을 미치는 지역일수록 저소득층 가구가 집중된 경우가 많아 이들이 더욱 큰 손해를 입는다. 결국 이는 단순한 주거 문제를 넘어 사회 불평등을 가속하는 구조로 이어진다.
사회 전체가 풀어야 할 복합적 난제
이렇게 현재 미국의 주택시장은 집을 짓는 일, 집을 사는 일, 그리고 그 집을 유지하는 일 등 모든 과정에 복합적인 구조적 문제가 촘촘히 얽혀있다. 정책과 환경, 국제관계, 노동시장 등 거의 모든 사회구조적 요인이 미국 주택 문제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주거는 이제는 개인의 선택이나 노력만으로 확보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라 미국정부와 사회 전체가 풀어야 할 복합적 난제로 떠오르고 있다.

위스콘신대
정치학, 미국 선거·여론 전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