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시평
누구를 위한 주 4.5일제인가
대선이 다가오며 각종 공약이 봇물을 이룬다. 거대 양당은 모두 주 4.5일 근무제 공약을 제시한다. 외형상 주 4.5일제가 근로자 삶의 질을 향상시키고 일과 생활의 균형을 추구하는 바람직한 공약 같아서 유권자들이 큰 관심을 보이는 것 같다. 그런데 이 공약은 근로시간 단축 방법과 실행의 문제, 임금 감소 여부, 경제에 미치는 영향 등 여러 가지 문제를 초래할 수 있다.
재계에서는 현재 어려운 경제 상황에서 이런 공약 제시를 부담스러워하며 반대하고 있다. 그렇지만 유권자들은 근로시간 단축에만 귀 기울이며 이 공약을 반기는 것 같고, 유권자의 한 표가 다급한 정치권은 이를 밀어붙일 태세다.
거대 양당 주 4.5일제 공약 밀어붙일 태세
주 4.5일제 내용은 정당별로 차이가 있다. 국민의힘은 기존 주 5일제 근무를 유지하며 월~목에 1시간씩 더 일하며 금요일에 4시간만 일하고 퇴근하는 방식이다. 근무 실상을 살펴보면 근로시간 단축이 없어 ‘조삼모사’라고 할 수 있다. 민주당은 근로시간을 단축하여 법정 근로시간을 현행 주당 40시간에서 4시간 단축하는 방안인데, 근로시간 단축에 따라 임금 감소 등의 문제가 발생한다.
이 공약이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인지 생각해보자. 우선 기업을 비롯한 경제계가 반대하는 것을 생각하면 기업을 위한 것은 아닌 것 같다. 기업은 임금이 삭감되지 않으며 근로시간만 단축되면 인건비 부담이 늘어나 반대할 것이고, 조삼모사식 변경은 근로자들의 생산성 향상으로 연결되지 않으면 기존 근무제를 변경하려고 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주 4.5일제가 근로자를 포함한 유권자를 위한 것인지 살펴보자. 임금을 삭감하며 근로시간을 단축한다면 이를 찬성할 유권자는 많지 않을 것이다. 임금 삭감 없이 근로시간만 단축된다면 유권자는 반대할 이유가 없을 테지만 이런 경우는 여러 가지 변수가 있다.
근로시간 단축시 정치권에서 기업에게 조세 감경이나 지원정책을 제공하는 경우 이런 재원을 궁극적으로 부담하는 것은 유권자의 호주머니가 된다. 정치권이 아무런 지원을 하지 않는 경우 기업은 임금 부담을 이유로 국내 제품가격을 올리거나, 수출품의 원가가 올라 국제경쟁력이 떨어지게 된다.
결국 공짜 점심은 없다는 말처럼 근로시간 단축이 유권자들에게 유익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만약 근로시간 단축으로 근로자의 생산성이 증가한다면 기업이 기존 임금 수준을 유지하며 가격을 인상하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이런 가정이 현실에서 일어나기 어렵다.
정치권이 주 4.5일제를 도입하면 기업간 혹은 산업간 격차를 벌려 사회 통합을 저해할 우려도 있다. 현재 노동시장은 소규모 업체도 많고 다양한 산업과 직종으로 구성돼 있는데 이 가운데는 법정 근로시간도 제대로 지키지 못하는 경우가 흔하다. 이런 상황에서 근로시간이 더 단축되면 단축 기업과 그렇지 못한 기업과의 격차는 더욱 벌어져 사회적 갈등을 야기할 우려도 있다.
정치권의 대선 표 얻기 위한 근로시간 규제 사회적 갈등 키울 우려
결국 정치권이 근로시간에 대해 이런 저런 방식의 규제를 하려는 것은 유권자를 위해서나 기업을 위해서나 도움이 되지 않고 사회적 갈등만 키울 우려가 있다. 정치권은 근로시간에 대해 최소한의 규제만 하는 것이 바람직한데 이런 규제가 현행 주당 40시간 상한제이다. 이 기준을 원칙으로 하며 근로시간을 연장하고 임금을 더 주고 받거나 혹은 근로시간을 단축하고 임금을 덜 주고 받는 것은 근로자와 기업이 서로 협의해서 결정하면 된다.
현재도 주 4일제를 이미 도입한 기업이 있는데 이를 정부나 정치권이 도입하라고 해서 도입한 것은 아니다. 주 4.5일제는 정치권이 유권자나 기업을 위해 도입하려는 것이 아니고, 대선에서 표를 얻기 위해 만들려는 새로운 규제라고 하겠다.
전 공정위 부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