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혁신기업인 열전 ⑤ 이해신 폴리페놀팩토리 대표
논문인용 세계 상위 1% 과학자…탈모고민 해결사 등극
폴리페놀 접착력·코팅 기능 활용, 탈모방지샴푸 ‘그래비티’로 돌풍
출시 1년만에 188억원어치 판매 … 올해부터 해외시장 진출 본격
랭거 교수 영향으로 연쇄창업 … “이공계 창업 붐 일으키고 싶어”
세계경제가 요동치고 있다. 트럼프 미국대통령 취임과 동시에 세계는 강력한 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로 불확실성이 더 커졌다. 한국은 지속되는 저성장에 고환율, 수출경쟁력까지 떨어지고 있다. 위기 속에 기회가 있다고 했다. 한국경제의 성장은 기업인들의 혁신정신이 일궈 온 성과다. 내일신문은 기업가정신으로 위기를 극복하고 있는 혁신기업인을 연재한다. 그들의 고민과 행보가 한국경제와 중소기업이 나아갈 방향에 좋은 지침을 담고 있어서다.
신기했다. 올 1월 세계 최대 IT전시회 ‘CES 2025’에 샴푸가 주목 받았다. 행사 첫날부터 샴푸 매대 앞에 관람객들이 몰려들었다. 샘플 1만개가 동났다.
이미 조짐이 있었다. 2024년 4월 첫 출시 109시간만에 모두 팔렸다. 9월 첫 홈쇼핑방송에서 2만병이 순식간에 완판됐다. 올리브영 입점 39분 만에 품절사태가 벌어졌다. 이마트에서는 오픈런이 벌어졌다. 17차례 예약판매도 완판했다. 사재기 방지를 위해 1인당 판매수를 제한하기도 했다. 출시 1년 누적생산 100만병, 판매액은 188억원에 이른다. 1분에 2개씩, 1일 2740개사 팔린 셈이다.
지난 16일 공식 출시한 신제품 헤어 스프레이도 당일 품절됐다. 샴푸와 스프레이 모두 온라인에서 4배 이상 가격으로 거래되고 있다. 최근 탈모방지샴푸 ‘그래비티’(Grabity)의 열풍이 불고 있다.
◆품절 완판 이어가는 샴푸 = 그래비티삼푸는 폴리페놀팩토리가 개발했다. 2023년 한국과학기술원(KAIST) 교원 창업기업으로 설립됐다. 이해신 KAIST 화학과 석좌교수가 이끌고 있다. 18일 서울역 근처에 있는 서울사무소에서 만난 이 대표는 폴리페놀 분야 세계 석학이다. 그는 미국 유학 중 홍합의 접착력에 주목했다. 물속에서 강력한 접착력을 유지하는 비결이 폴리페놀에 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이 연구는 2007년 과학학술지 네이처 표지를 장식하며 크게 주목받았다. 2018년엔 국제학술정보 기관인 클래리베이트 애널리틱스에서 논문인용 기준 세계 상위 1% 과학자로 선정됐다.
“폴리페놀은 주변 식물에도 존재하는 흔한 물질이다. 단백질과 만나면 강한 접착력을 보이고 항산화 특성도 있어 이를 연구하고 응용하고 있다.”
폴리페놀의 특성을 활용한 첫 제품이 그래비티샴푸다. 머리카락이 단백질 성분이라는 점에서 착안했다. 폴리페놀이 머리카락에 힘을 줘 볼륨감을 높일 수 있다고 생각했다. 정작 시장반응은 달랐다.
사용자들은 탈모샴푸라고 불렀다. 제품사용 후기에 탈모방지 효과에 대한 의견이 많았다. 곧바로 임상시험을 진행했다. 샴푸를 사용한 지 2주 만에 탈모가 약 70% 감소한다는 결과가 확인됐다. 그래비티가 볼륨샴푸에서 탈모방지샴푸로 바뀌었다.
이 대표는 “폴리페놀 특허성분(리프프맥스308)이 모발 끊김을 방지하고 모근을 단단하게 하는 효과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 대표는 지난 16일 두번째 작품을 내놓았다. 탈모 고민과 스타일링을 동시에 해결할 수 있는 기능성 스프레이 ‘그래비티 헤어 리프팅샷‘이다. 특허성분이 모발 단백질과 결합해 단단한 보호막을 형성한다. 고데기나 드라이기 등 강한 열 자극에도 모발손상을 막아주기 때문이다. 실제 인체적용시험에서 1회 사용으로도 48시간 동안 뿌리볼륨이 유지됐다. 2주간 사용 시 탈모증상이 평균 60.95% 완화되는 임상결과도 확인했다. 비건인증, 독일 더마테스트 엑설런트 등급 획득, 안자극시험까지 모두 완료해 안전하다.

◆과학으로 일상의 혁신 추구 = 이 대표는 폴리페놀팩토리 설립이 세번째 창업이다. 2009년 카이스트 교수로 임용된 지 1년 후 이노테라피 창업했다. 이 대표는 최고과학책임자(CSO)로 의료용 접착성지혈제 ‘이노씰’을 개발했다. 홍합의 접착원리를 활용했다. 이노씰은 혈액응고 장애환자에게도 효과적인 지혈이 가능했다. 기존 지혈제의 한계를 보완한 혁신기술로 주목받았다. 간이식과 간 절제수술 환자대상 임상에서 우수한 효과를 입증해 국제학술지 사이언스 어드밴시스에 게재됐다. 무출혈 주사바늘 등 다양한 의료기기 응용기술도 함께 개발했다. 2019년 상장 후 매각했다.
두번째는 2014년 유전자치료제 개발 전문기업 글루진테라퓨틱스를 설립해 최고과학책임자(CSO)를 맡았다.
연쇄창업가로 나서게 된 배경에는 로버트 랭거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 교수 영향이 컸다. 랭거 교수는 코로나 메신저 리보핵산(mRNA) 백신 개발에 성공한 모더나 창업자다. 현재 2조원 이상 투자유치에 성공한 스타트업들을 다수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대표는 랭거 교수 밑에서 박사 후 연구과정을 밟으며 인연을 맺었다. 그는 “연구로 끝내지 말고 세상에 실질적인 변화를 가져와야 한다”는 랭거 교수의 말을 항상 기억하고 있다. 이는 연구를 병행하며 ‘과학으로 일상을 혁신하는 일’에 나서게 한 힘이다.
폴리페놀팩토리는 올해 해외시장에 본격 진출한다. 이미 일본에 10억원 가량의 물량을 공급했다. 미국 아마존에도 입점을 시작으로 아랍에미리트 인도네시아 프랑스 등의 협력사 선정과 인증작업을 마무리 중이다. 올해 해외시장에서만 300억원 이상의 매출을 기대하고 있다.
폴리페놀팩토리는 샴푸 외에도 인체에 무해한 미용접착제와 지혈제, 다이어트를 위한 장(腸) 코팅 등도 연구·개발하고 있다.
“진로를 고민하는 학생들이 이공계로 와 창업에 도전하는 문화를 만들고 싶다.” 이 대표가 과학기술로 성공하고 싶은 이유다. 폴리페놀 석학의 향후 행보가 기대된다.
김형수 기자 hskim@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