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권 칼럼
정치의 주체는 국민이다
대선이 달아오르고 있다. 각 당이 경선을 통해 후보를 압축하고 선정을 마쳤다. ‘1강2약’이라는 민주당은 27일 후보를 선출한다. ‘찬탄’과 ‘반탄’ 두 명씩 걸러낸 국민의힘은 내달 3일 최종 후보를 확정한다. 개혁신당은 이준석 의원을 이미 선정했다.
변수(?)는 있다.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이다. 해외매체와 인터뷰에서 “노 코멘트”라고 하거나 “결정하지 않았다”며 출마설을 흘린다. 윤석열정권 3년 동안 국무총리로 재임하지 않았나. 게다가 위헌적 12.3비상계엄에 일정 부분 책임이 있어 보이는 상황인데 그의 출마는 과연 어떤 의미일까.
여하튼 선거 때마다 되풀이되는 일이지만 또다시 국민 현혹이 시작됐다. 요란하게 북 치고 나팔 불며 장마당 서커스로 눈길을 사로잡는다. 이번 대통령 선거가 갖는 시대적 역사적 의미를 형형색색 깃발로 가리면서 말이다.
국민의힘 경선이 그렇다. 헌법재판소에서 헌법파괴 행위로 판결해 파면한 윤 전 대통령이 아직도 ‘1호 당원’이다. 당 차원의 진정한 대국민사과도 없이 얼렁뚱땅 넘기며 파면된 장본인을 감싸고 돈다. 당사자는 ‘윤 어게인’이라는 신당에 솔깃했다가 보류했다. 어찌 보면 비상계엄부터 신당까지 엄청난 해당행위인 데도 징계나 출당조치를 검토하지도 않는다. 키 높이 구두와 일자 눈썹 논란으로 주목도만 올린다.
한 대행도 마찬가지다. 그가 출마하면 헌법재판소의 위헌 판결과 파면 결정에 불복한다는 뜻으로 비칠 수도 있다. 나아가 윤의 아바타로서 ‘윤 어게인’을 실질적으로 구현하겠다는 의지로도 읽힐 수 있다. 그런 처신이 공직자로서 맞는지, 선거관리자로서 온당한지, 최소한 국민에 대한 예의인지 심각한 사안이다. 그런데도 단일화다, 트럼프와 관세협상을 주도한다, 출마시기를 저울질한다 울긋불긋 깃발을 흔들어댄다.
시대적 과제 중대한 대선, 차악뽑기 안돼
진짜 문제는 국민이 또 최선이 아닌 차선, 어쩌면 최악을 피한 차악 선택에 내몰릴 수 있는 상황이다. 그런데 차악이나마 제대로 가려낼까. 차악이라고 봤는데 최악인 경우도 많지 않나. 왜 그럴까.
뭐 묻은 개가 겨 묻은 개 나무란다는 속담이 있다. 나의 흉허물이 큰데도 상대적으로 흠이 덜한 남을 흉보는 상황을 비유한 거다. 이유는 이럴 것이다. 안방에 뭐 묻은 분구(糞狗)와 겨 묻은 강구(糠狗)가 있다고 하자. 이들은 상대가 더 더럽다고 짖는다. 안방의 주인은 어느 쪽을 내쫓을까.
처음에는 주인도 부정부패 악취에 코를 감싸 쥐고 타구봉을 휘두를 것이다. 헌데 분구는 억울하다며 요리조리 피한다. 혹여 제가 풍기는 악취에 후각이 마비돼 자신이 뭐 투성이인 줄 잊었을까. 사실은 알면서도 짐짓 모르는 체 시치미를 뗄 확률이 높다.
여하튼 분구는 연신 강구에 묻은 겨와 먼지까지 탈탈 털면서 주인의 시선을 돌린다. 이 때 아이러니가 생긴다. 악취에 노출된 주인의 후각도 마비되는 거다. 문득 여기저기 흩어진 겨가 눈에 띈다. 결국 강구가 쫓겨나고 분구가 안방을 차지하는 경우가 생기는 배경이겠다.
그동안 우리네 정치판이 왕왕 이런 상황이었지 않나. 불쌍한 쪽은 주인이다. 뭐 투성이를 껴안고 비싼 사료까지 먹이니까 말이다. 최근에는 이런 판에 전혀 예상하지 못한 한 마리가 합류했다. 뭐도 겨도 묻지 않고 깨끗하게 보였다. 헌데 자세히 보니 주둥이에 피가 묻어 있다. 혈구(血狗)였던 거다. 송곳니를 드러내며 마치 사냥하듯 경쟁자들을 제압한다.
진짜 문제는 다음이다. 안방을 차지한 혈구가 갑자기 주인을 향해 이빨을 드러낸 것이다. 주인이 신속히 타구봉을 휘둘러 간신히 쫓아낸다. 그러자 그간 혈구에 꼬리를 흔들던 분구들과 혈구를 향해 짖던 강구들이 다시 안방을 탐낸다.
딱 지금 대선을 앞둔 형국이 아닌가. 어찌 해야 하나. 지금 필요한 건 주인의 각성과 출마자들의 자성이겠다. 이번 대통령 선거는 시대적 의미가 크다. 안으로는 심화된 사회경제적 양극화, 밖으로는 거세진 통상 압력에 잘 대처해야 한다. 역사적 의미도 있다. 87년체제의 극복과 민주화를 역행한 비상계엄사태 정리다.
헌정 질서 바로잡는 주체는 국민
무엇보다 정치의 회복이 급선무이다. 대화와 타협이 없는 불통과 독주는 민주주의의 독(毒)이다. 정치의 요체는 희망을 주는 것이라고 하지 않나. 민주주의의 진정한 구현이든 양극화 해소이든 자국의 이익 최대화이든 확실한 믿음을 주는 것 말이다. 나아가 국민 신뢰를 배반하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 말이다. 허황된 구호나 선동에 휘둘리면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 몫이다.
계엄을 해제하고 윤 전 대통령을 파면해 헌정질서를 바로잡은 주체는 국회나 헌재가 아니라 국민이었다. 민주주의 확립도 양극화 해소도 결국 국민의 의지에 달려 있다. 대통령이나 국회나 관료가 이끄는 게 아니다. 이들은 심부름꾼이다. 이를 제대로 인식하도록 해야 ‘그들만의 리그’도 끝낼 수 있다. 정치의 주체는 그들이 아니라 국민이다. 역사의 집필자도 국민이다.

전 중앙일보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