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나무 등 단순림이 전세계 산불 키워

2025-04-28 13:00:10 게재

포르투갈 ‘굴참나무의 기적’ 배우자 … 주요도로와 마을 주변 소나무 단순림 제거해야

2017년 6월 17일 포르투갈 레이리아 현 페드로강그란드(Pedrogao Grande)(페드로강)에서 유럽 역사상 최악의 산불이 발생했다. 당시 포르투갈 중부는 건기였다. 섭씨 40도를 넘는 폭염이 계속되면서 공기는 점점 더 건조해졌다. 산불 원인은 마른번개, 벼락이었다. 바짝 마른 나무에 벼락이 떨어져 불이 붙었다.

‘굴참나무의 기적’이 일어난 포르투갈의 페라리아 데 상주앙 마을. 사진 희일이송 페이스북

산불은 메마르고 뜨거운 공기를 만나 순식간에 번졌다. 150건이 넘는 화재가 동시다발로 일어났다. 소방관 1700명, 소방차 160대가 동원됐지만 역부족이었다. 주택에 남아있던 가스통들이 터져 불이 더 번졌다. 불길이 너무 강해서 상승기류를 만들었고 토네이도까지 관측됐다. 이 산불로 50만㏊의 숲과 마을이 불탔다. 66명이 사망했고, 200명 넘는 사람이 부상을 입었다. 안토니오 코스타 총리는 산불 직후 3일 동안을 전국민 애도의 날로 선포했다. 유럽 역사상 가장 큰 산불 중 하나였다.

유칼립투스와 소나무 가연성 높아

2024년 9월 포르투갈에 또 대형 산불이 발생했다. 7명이 사망하고 8만㏊가 불탔다. 9월 22일 포르투갈 전역에서 거센 시위가 벌어졌다. “산불 사망자를 애도한다!” “유칼립투스가 문제다!” “바이오매스가 문제다!” 이런 구호들이 터져나왔다. 기후위기로 인해 지중해 지역이 극단적인 가뭄과 고온에 시달리고 있는데 펄프 회사들이 불에 잘 타는 유칼립투스나무를 심어 피해를 키웠다는 비판이었다.

포르투갈 그리스 등 지중해 지역에 산불이 증가한 것은 펄프 생산을 위해 가연성이 높은 유칼립투스와 소나무를 ‘밀식재배’한 이후다. 두 나무는 빨리 자라기 때문에 경제성이 높지만 산불에 취약하다. 유칼립투스는 잎에서 휘발성 기름을 내뿜고 이것이 안개처럼 퍼진다. 당연히 화재에 매우 취약하다.

소나무도 마찬가지다. 휘발성분으로 가득한 솔잎을 1년 내내 달고 있고 줄기에는 가연성 송진이 가득하다. 3년 전 울진산불 현장에서 불에 그을린 소나무 옹이(광솔) 하나를 주웠는데 마치 미사일 같은 모양이었다. 주민들은 “소나무가 타면 이 광솔에 불이 붙은 채로 줄기에서 발사돼 수십미터를 날아간다”고 했다. 산불이 발생했을 때 유칼립투스와 소나무 단순림은 성냥통에 휘발유를 부은 화약고나 다름없다.

포르투갈은 세계에서 유칼립투스를 가장 많이 심는 나라다. 펄프 산업 때문이다. 세계화와 자유무역의 압력에 농민들이 농촌을 떠나자 지주들은 생장 속도가 빠른 유칼립투스와 소나무를 빽빽하게 심었다. 2017년 포르투갈 산불은 유칼립투스와 소나무로 빽빽하게 들어찬 단순림이 배경이었다.

그런데 페라리아 데 상주앙(Ferraria de Sao Joao)이라는 작은 마을에서 기적이 일어났다. 산불이 유칼립투스 군락지를 따라 번졌고 거의 모든 지역이 새까맣게 불탔는데 이 마을만 고스란히 살아남았다. 마을 바로 뒤 유칼립투스 숲은 불에 탔지만 마을은 전혀 피해를 입지 않았다. 조상들이 마을 둘레에 빼곡히 심어놓은 유럽 굴참나무 숲 덕분이었다. ‘굴참나무의 기적’이었다.

굴참나무는 ‘숲의 전위대’

산불은 인간문명 이전에도 종종 발생했다. 산불이 나서 숲이 불타면 그 자리를 초원이 차지했다. 반대로 산불이 줄어들면 숲이 자기 영역을 넓혀나갔다. 초원의 무기가 ‘산불’이라면 숲의 무기는 ‘굴참나무’다. 굴참나무 껍질은 코르크마개를 만들 만큼 두껍다. 방화복으로 무장한 소방관과 같다. 굴참나무는 산불이 나도 타지 않고 숲을 지킨다. 그래서 초원과 숲의 전쟁에서 ‘숲의 전위대’로 비유된다.

스페인이나 포르투갈의 전통마을 주변에는 원래 굴참나무 숲이 많았다. 200년 이상 수령의 아름드리 굴참나무들이 마을의 수호신이었고 방화벽이었다. 참나무 숲 아래에는 이베리코 흑돼지를 방목했다. 이런 전통 축산 ‘데헤사(Dehesa)’ 시스템은 이베리아반도에서 4500년 넘게 이어져왔다.

굴참나무의 기적은 유칼립투스가 얼마나 위험한 나무인지, 예전의 농촌 풍경을 대표하던 참나무 숲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깨닫게 했다. 마을 주민들은 산불에서 마을을 지키기 위해 무엇을 할지 의논했다. 그리고 만장일치로 ‘마을보호구역(VPZ)’을 만들기로 했다. 마을 주변 100m 반경 안에 산불에 강한 토종 참나무를 심기로 한 것이다.

개인소유 토지에 관한 이야기들이 오간 끝에 마을 주민들은 마을보호구역을 ‘공유지’로 만들기로 했다. 이 소식을 들은 사람들이 전국에서 자원봉사자로 몰려왔다. 그 공유지에 함께 나무를 심기 위해서였다. 굴참나무의 기적, 굴참나무의 교훈이었다.

사상 최악의 경북산불 이후 기획재정부가 ‘재해ㆍ재난 대응 추가경정예산(안)’ 3.2조원을 편성했다. △산불 피해 복구를 위한 재해대책비 보강 △이재민 주거안정 지원 △재해ㆍ재난 예방 및 대응 관련 장비ㆍ기술 고도화 등이 주요 내용이다. 크게 보면 ‘산불 피해 복구 지원’에 1.4조원, ‘재해ㆍ재난 예방ㆍ대응력 강화’에 1.7조원의 추가경정예산이 투입된다.

정부가 말하는 ‘피해복구’는 주로 산불 피해지 복구 사업이다. 불에 탄 숲을 예산을 투입해 복구하겠다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보면 ‘산불 피해지 복구’에 1조원이 추가로 투입된다. 산불 피해지역의 회복을 지원하는 각 부처 재해·재난대책비를 5000억원에서 1.5조원으로 늘린다.

피해주민 지원금은 ‘일상회복’이라는 항목으로 따로 편성했다. 복구 지원금 1조원이 숲에 들어갔으니 남는 돈은 4000억원이다. △피해주민 주택복구 용도 저리대출(400호) △피해지역 인근 신축 매입 임대 1000호 공급(2000억원) △피해지역 지방채 인수(2000억원) 등이다.

현행 정부 재난지원금 지원기준은 주택 완파(전소)시 3000만원이다. 이마저도 전액 보조가 아니라 보조 900만원, 융자 1800만원, 자부담 300만원이다. 주택 피해를 입은 이재민이 주택을 복구할 때 특별재난지역의 경우 최대 1억2400만원을 1.5% 장기저리로 융자해준다. 산불 피해지 복구는 전액 정부 예산으로 하면서 산불로 집을 잃은 피해주민에게는 ‘집을 다시 짓고 싶으면 돈을 빌려주겠다’는 것이다.

피해복구비보다 더 많은 1.7조원의 추경예산은 △AI 감시카메라, 고성능 드론 등(68억원) △산림헬기 6대 신규 도입(2027년까지 2640억원) △중·대형 물버킷 확충(30개, 1077억원) △다목적 산불진화차 확충(48대) △산림인접마을 비상소화장치 설치(1199개소, 232억원) △임도 2배 수준 투자 확대(1008억원) 등에 들어간다.

피해지 복원예산을 피해주민에게

2000년 이후 거듭된 대형산불에도 불구하고 정부 산림정책은 요지부동이다. 큰 산불이 나면 많은 예산과 인력을 지원한다. 더 큰 산불이 나면 예산지원 규모를 더 늘린다. 그런데도 산불은 점점 더 커지고 인명피해도 늘어난다.

산림청은 지난 10년 동안 우리나라 숲에서 소나무 비중을 1.5배 가까이 늘렸다. 대형산불이 자주 일어나는 강원도와 경상북도는 다른 지역보다 소나무가 더 많다. 산림청은 자신들이 심은 소나무가 아니라고 하지만 소나무 숲은 대부분 ‘선택적 벌목’의 결과다. 식생천이에 따라 자연스럽게 활엽수림으로 변해가는 숲에서 숲가꾸기란 이름으로 활엽수만 잘라냈기 때문이다.

‘산불 피해지 복원사업’은 어떻게 진행되는가? '복원'이란 이름으로 피해지의 나무들을 벌채한다. 벌채한 나무들을 ‘미이용 바이오매스’란 이름으로 잘게 쪼개 우드칩을 만든다. 그 우드칩을 ‘탄소중립’이란 이름으로 석탄발전소에 혼합 소각용으로 공급한다. 산주들에게는 멀쩡한 나무보다 더 많은 돈을 준다. 이 모든 일은 지역 산림조합이 주관한다. 악순환의 반복이다.

포르투갈 굴참나무의 기적에서 배워야 한다. 마을 주변 일정 구역을 정해 참나무나 버드나무, 오동나무 등 내화수림대를 조성하자. 철도노선과 주요 도로, 마을 주변 1㎞ 안에 있는 어린 소나무 단순림은 제거하자. 우리나라처럼 도로망이 격자형으로 촘촘한 나라가 도로를 산불방어선으로 이용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산불피해지는 벌채와 중장비 투입으로 간섭하지 말고 자연에 맡기자. 스스로 활엽수림으로 자라도록 내버려두자. 산불 피해지는 자연복원이 훨씬 효과적이라는 연구결과는 차고도 넘친다. 1조원이 넘는 복원예산을 벌채와 조림에 쓰지 말고 피해지역 주민들 지원에 쓰자.

남준기

기후재난연구소 공동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