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D 기술사업화 현장을 가다 1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5년간 해외에서 벌어들인 특허기술료 1416억원

2025-04-28 13:00:22 게재

지난해 연구생산성 8.6% 세계최고 수준

전담조직 만들어 사업화 전주기 지원

대한민국 정부 과학기술 연구개발(R&D) 투자 규모는 2015년부터 세계 5위를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R&D 효율성 측면에선 낙제수준이다. 실제 R&D를 통해 얻어지는 논문 수는 세계 12위 정도에 머물러 있다. R&D 결과물을 상용화로 이어가는 기술사업화 비율은 더 낮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8개 회원국 중 바닥 수준이다. 연구를 위한 연구가 아닌 국민경제에 도움이 되는 R&D가 되기 위해선 기술사업화 비율을 높여야 한다. 내일신문은 정부 R&D 예산이 투입되는 대학과 정부출연연구기관 기술사업화 현장을 살펴본다.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은 정보통신기술(ICT)분야 대표적인 정부출연연구기관이다. 1976년 창립한 이래 전전자교환기(TDX) 4메가디램(4M-DRAM) 코드분할다중접속(CDMA)통신기술 휴대인터넷(WiBro) 등 정부 연구개발(R&D) 역사에 굵직한 연구성과를 냈다. 또한 이 기술을 국내기업으로 이전해 국가경제가 ICT 중심으로 방향전환을 하는데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글로벌 수준 지식재산 경영 전략 수립 = ETRI는 이 같은 역사를 바탕으로 기술사업화에 있어서도 정부 출연연 가운데 압도적인 성과를 내고 있다.

ETRI는 지난해 총 596억원의 기술료 수입을 기록했다. 이는 2023년 대비 27억원 증가한 것이다. 분야별로 보면 △특허기술료 473억원 △일반 기술이전 수입 121억원 △출자 지분 처분 수입 2억원 등이다. 이 가운데 약 80%는 특허를 기초로 수익을 냈다.

특히 해외 시장에서의 실적이 두드러진다. 최근 5년간 해외에서 벌어들인 특허기술료는 총 1416억원에 달한다. 이는 전체 특허기술료의 약 71%다.

이에 앞서 ETRI는 미국 퀄컴사에서 CDMA 로얄티로 총 3200억원 규모의 출연연 사상 단일건 최대 해외기술료를 확보한 바 있다. 이를 바탕으로 2023년 공공연구기관 중 최초로 누적 기술료 1조원을 달성했다.

ETRI는 연구예산 대비 기술료 수입 비율을 뜻하는 연구생산성도 세계 최고 수준이다. 2024년 기준 8.6%다. 최근 5년 평균 8% 이상을 유지하고 있다. 이는 대만 공업기술연구원(ITRI), 독일 프라운호퍼(Fraunhofer) 등 글로벌 공공연구기관과 비교해도 월등히 높은 수준이다.

이 같은 ETRI 성과는 지식재산(IP) 경영 전략이 바탕에 있다. ETRI는 2004년 우리나라 공공기관 가운데 최초로 조직차원 특허전략을 마련했다. 특히 2021년부터는 인공지능 분야에 특화된 AI 특허 전략도 수립했다.

그 결과 2021년에는 국제표준화단체인 ISO•IEC•ITU 기준 국제표준특허를 보유한 순위에서 세계 5위를 기록했다.

ETRI 연구진이 지원 필요·효과성이 높은 유망기업을 선별·집중지원하는 E-패밀리기업 지원 프로그램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 사진 ETRI 제공

◆IP기반 기술사업화 생태계 구축 = ETRI는 기술사업화 전담조직인 사업화본부(TLO)를 두고 연구성과를 산업으로 확산하고 있다. 특히 연구성과확산통합전략체계(e-STAMP)를 통해 연구기획 단계부터 시장성과 사업화 가능성을 고려한 전략을 수립해 R&D 단계부터 사업화까지 유기적으로 연계하고 있다. 아울러 기술사업화통합지원체계(1-TEAM)을 통해 성장유망기업을 집중 육성하는 전략도 펼치고 있다.

ETRI는 공공기관 최초로 기술사업화 전문 투자회사인 에트리홀딩스도 설립해 운영중이다. 에트리홀딩스를 통해 기업공개(IPO) 인수합병(M&A) 스타트업 투자금을 조달 등을 지원하고 있다. ETRI는 지난해 8개 창업•연구소기업을 신규 설립했다.

올해 CES에서 혁신상을 받은 일리아스AI도 ETRI가 기술과 사업자금을 출자한 연구소기업이다. ETRI와 ETRI홀딩스가 지분의 10%를 갖고 있다. 연구소기업이란 공공 연구기관이 개발한 기술을 사업화하기 위해 연구기관이 일부를 출자해 설립하는 기업이다.

일리아스AI는 후각 인식 인공지능(AI) 기술을 활용해 마약 소지 탐지 스캐너 ‘디지털 마약견’을 개발하고 있다. 고범석 일리아스AI 대표가 동료들과 후각 AI 기술을 전문적으로 개발하는 회사를 설립하자는 데 의기투합해 설립했다. 2022년 ERI로부터 후각 센서 기술을 출자 형태로 이전 받고, ETRI홀딩스로 부터는 현금을 출자받아 연구소기업으로 전환했다.

고 대표는 “오감 중에서 아직 정복되지 않은 분야인 후각을 연구해 후각산업을 활성화 시켜보자는 생각에서 회사를 설립했다”며 “냄새 데이터를 수집하는 후각센서 기술을 갖고 있는 ETRI를 찾아가 문을 두드린 끝에 기술이전과 출자를 받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연구원 창업하면 7년간 휴직 보장 = ETRI 기술사업화 성과는 연구자 창의성과 동기부여를 유도하는 보상체계에 기반한다. ETRI는 기술료 수입 50%를 발명자 보상금으로 지급해 왔다. 지난 5년간 누적 보상금 지급액은 총 1200억원에 달한다. 이는 민간 기업의 통상적인 보상 수준(기술료의 5~10%)과 비교해도 월등히 높은 수준이다. 특히 퇴직자에게도 동일하게 보상금을 지급해 발명자 권리를 끝까지 보장한다.

올해부터는 ‘국가연구개발혁신법’ 개정에 따라 기술료 60%를 보상금으로 확대 지급하며 보상 규모를 한층 강화하고 있다.

ETRI는 연구원들이 창업을 하는 경우 최장 7년간 휴직을 보장한다. 창업 후 사업이 궤도에 오르는 경우 퇴직을 신청할 수도 있다.

한편 올해 ETRI는 특허기술료 460억원 등 기술료 수입 600억원 달성이 목표다. 기술이전과 창업 활성화를 더욱 강화해 창업•연구소기업 9개사 이상을 추가 발굴할 계획이다.

방승찬 ETRI 원장은 “연구성과가 실제 산업 현장에서 쓰일 수 있도록 최선의 지원을 아끼지 않을 것”이라며 “앞으로도 정부출연연구원의 기술사업화 모델을 지속적으로 선도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고성수 기자 ssgo@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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