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기 정부 ‘회계기본법 제정 필요’ 회계투명성 강화 과제
비영리부문 회계제도 제각각 … 감사 사각지대도 존재
국가 전체 투명성 향상 필요 … 별도의 총괄기구 설치도
한국공인회계사회 연구용역 결과 나와, 이달 세미나 개최
회계개혁 이후 기업의 회계투명성은 점차 강화되고 있지만 비영리부문의 회계제도는 일률적인 기준이 없고 감사의 사각지대도 존재하는 등 영리부문과의 회계투명성 격차가 커지고 있다.
사회 전반에 대한 회계투명성은 국제 신인도에 영향을 미치고 국가 경쟁력 향상을 위한 밑바탕이 되기 때문에 영리부문과 비영리부문 회계기준을 전체적으로 통일하는 ‘회계기본법 제정’이 필요한 시점이다.
내달 3일 대통령 선거 이후 새로운 정부가 출범하면 회계기본법 제정을 통해 사회 전체를 아우르는 회계 규율이 뿌리내리도록 해서 ‘회계투명성 강화’라는 국가적 과제를 해결해야 한다.
8일 회계업계에 따르면 한국공인회계사회는 지난해 한국회계학회에 회계기본법 제정과 관련된 연구용역을 의뢰했으며 최근 연구결과가 받아 이달 중 세미나를 개최할 예정이다.
회계기본법은 조직의 유형과 무관하게 회계정보의 생산과 제공과정에 기본적이고 공통적으로 적용될 수 있는 사항을 규정한 회계에 관한 일반법을 말한다.

◆회계 관련 법률·제도, 조직형태에 따라 달리 적용 = 현재 기업 등 영리법인들은 자본시장법과 외부감사법 등에 따라 한국채택국제회계기준( K-IFRS)과 일반기업회계기준을 적용받고 있다.
반면 공익법인과 사립학교, 의료기관 등은 각각 상속세 및 증여세법, 사립학교법, 의료법에 따라 공익법인회계기준, 사학기관 재무·회계규칙, 의료기관 회계기준 규칙 등을 적용받는다. 공기업 등은 공공기관운영법에 따라 공기업·준정부기관 회계사무규칙을 따르고 있다.
이와 같이 비영리부문은 각 분야별 회계 규율 법률과 기준이 산재돼 있으며 관할 주무부처도 달라서 체계적인 회계시스템 구축이 어렵고 회계제도를 개선하는데도 한계가 있다.
김범준 가톨릭대 회계학과 교수는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경우 회계투명성이 정말 중요한 부분인데 마치 회계가 아닌 것처럼 보여지는 측면이 있다”며 “회계기본법은 회계라는 게 무엇이고 어떤 것을 목표로 하고 있는지 등 기본적인 것에 대한 이해를 공유하는 측면이 강하다”고 말했다.
회계기본법은 회계기준과 외부감사제도, 공시제도, 회계감독 및 제재 등에 관해 사회 전체적으로 기본적이고 공통된 원칙을 제시할 수 있다. 회계기본법에서 규정된 원칙에 따라 각 부처에서 회계정책을 수립해 운영하고 각 부처별 특수한 사항은 별도 규정으로 마련해 시행하는 구조를 만들 수 있다.

◆동일 기능 수행 금융기관도 회계감사·공시의무 달라 = 현재 제도를 보면 동일한 기능을 수행하는 기관들마저 회계 규제에 차이가 있다. 서민금융기관인 저축은행, 신용협동조합, 농협협동조합, 새마을금고 등이 대표적이다. 서민들에게 자금을 공급하는 지역 밀착형 금융기관이지만 회계감사, 공시여부, 회계감독 등은 각기 다르다. 저축은행은 매년 회계감사를 받고 전자공시시스템에 공시를 해야 한다. 당국의 감리도 받는다.
신협은 자산 300억원 이상이면 매년 회계감사를 받지만 공시를 하지 않고 회계감독도 받지 않는다. 농협은 자산 500억원 이상인 조합을 대상으로 4년에 한번 회계감사를 하고, 새마을금고는 자산 500억원 이상 금고에 대해 2년에 한번 회계감사를 하고 있다. 다만 새마을금고는 부실이 커지면서 자산 3000억원 이상 금고에 대해 매년 회계감사를 실시하고, 새마을금고 통합재무정보시스템을 구축해 금고별 실적을 비교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최근 지방자치단체 민간위탁사업 회계감사를 놓고 불거진 갈등도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가 다른 법령을 적용해 불필요한 논란과 소모적인 마찰이 발생한 대표적 사례다.
서울시의회는 약 1조원에 달하는 민간위탁 사업비에 대한 검증을 조례 개정을 통해 회계감사에서 ‘간이한 검사’로 바꿔 진행하려고 했다가 다시 회계감사로 변경했다. 정부가 국고보조금을 1억원 이상 받은 사업에 대해 의무적으로 외부 감사를 받도록 시행령을 개정하는 등 회계투명성을 강화하고 있는 것과 달리 지자체에서 민간위탁 사업에 대해 외부감사를 약화시키려 한 것이다. 일부 지자체에서는 여전히 외부감사를 ‘간이한 검사’로 바꾸려는 조례 개정을 추진하고 있어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상태다.
회계업계 관계자는 “사업투입 재원에 따라서도 주무부처별로 상이한 회계처리와 관리·감독체계를 요구하고 있어 현장에서 인력과 자원 운용에 많은 혼란이 발생하고 있다”고 말했다.
◆회계감독 컨트롤타워도 없어 = 회계감독을 전반적으로 총괄하는 정부 기구도 없는 실정이다. 금융감독원에 회계심사와 감리 등을 하는 조직이 있지만 영리법인을 대상으로 한 감독이며, 업무를 총괄하는 책임자는 임원이 아닌 선임 국장급이다. 금융위원회에는 회계제도팀만 있는 실정이다.
회계기본법을 제정하면 영리·비영리부문을 포함해 다양한 조직의 회계정보 생산과 외부감사, 공시와 감독 등 회계제도를 총괄하면서 협력체계 구축 역할을 담당할 총괄 기구 설치 등이 포함될 것으로 보인다. 총괄 기구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회계감독청 등 별도의 기구를 신설하거나 금융위 또는 기획재정부에 팀이 아닌 국 차원의 조직을 만들어야 한다.
스위스, 스웨덴, 벨기에, 중국, 대만 등은 별도의 재무회계법을 제정해 상업활동을 영위하는 모든 형태의 법인에 공통으로 적용하고 있다. 미국과 영국, 일본은 영리·비영리부문에 각각 상이한 회계기준을 적용하고 있지만 일정한 규모 이상 조직에 대한 외부감사·공시제도를 의무화하고 있다. 법적·제도적 근거를 토대로 감사기준이 운영되고 독립적인 기관을 통해 회계제도를 감독하고 있다. 미국은 별도의 회계감독기구인 미국상장기업회계감독위원회(PCAOB)를 두고 있으며 증권거래위원회(SEC)가 PCAOB를 감독하는 구조다.
차기 정부에서는 정부조직 개편과 함께 금융감독체계를 바꾸는 논의가 제기될 가능성이 높아 독립된 회계감독기구에 대한 검토 역시 필요한 상황이다.
김 교수는 “회계투명성 강화를 위해서는 결국 제3자에 의한 감시가 필요하다”며 “전문가의 검증을 받지 못한 상태에서 이뤄지는 비전문가에 의한 감시는 면죄부만 줄 가능성이 있다는 점에서 감시·감독체계와 관련된 부분도 회계기본법에 반드시 담겨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경기 기자 cellin@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