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사들, 조 대법원장에 ‘부글부글’

2025-05-08 13:00:33 게재

김주옥 판사 “중립 훼손 의혹 해소안되면 책임지고 물러나야”

법관대표회의 소집 관심 … 조영준 변호사, 헌법소원도 제기

‘이재명 재판’ 1·2심 잇단 연기 … 20일 위증교사 재판만 남아

법원이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의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 사건을 유죄 취지로 파기환송한 뒤, 법원 안팎에서 조희대 대법원장을 비롯한 대법관을 향한 비판 목소리가 거세다.

특히 전국 최대 법원인 서울중앙지방법원의 현직 부장판사가 조희대 대법원장의 사퇴를 공개적으로 요구해 법원 내부의 심각한 상황인식이 눈길을 끈다.

이런 분위기를 반영해서인지 이재명 후보의 1·2심 재판이 잇따라 연기되고 있다.

8일 법조계에 따르면 김주옥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사법연수원 32기)는 전날 법원 내부망인 코트넷에 글을 올려 “조 대법원장이 반이재명 정치투쟁의 선봉장이 됐다”며 사과와 사퇴를 요구했다.

김 부장판사는 대법원이 소부 배당 당일 전원합의체로 사건을 회부하고, 기일을 이례적으로 신속히 잡은 점을 지적하며 “사법부의 명운을 걸고 유력 대선 후보와 승부를 겨루는 거대한 모험에 나선 것”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그는 이어 “사법부가 대법원장의 정치적 신념에 휘둘려서는 안 된다”며 “대법원장이 개별 사건 절차와 결론에 이토록 적극적으로 개입한 전례가 있는가”라고 반문했다. 사법부의 정치적 중립성을 훼손했다는 의혹이 명확히 해소되지 않는다면 조 대법원장이 책임지고 물러나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대법원장의 개인적, 정치적 일탈이 사법부 전체의 정치적 중립성에 대한 국민적 불신을 초래하고 구성원 전체의 지위를 위협하게 된 현 상황을 타개하는 방법은 내부에서 잘못을 바로잡는 길 밖에 없다”며 “전국법관대표회의는 즉시 임시회의를 소집해 현 사태에 대해 진단하고, 대법원장에 대한 사퇴 권고를 포함해 국민적 신뢰를 회복할 방안에 대해 논의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현직 판사 ‘이러고도 당신이 대법관입니까’ = 노행남 부산지법 동부지원 부장판사도 같은 날 ‘이러고도 당신이 대법관입니까’라는 제목의 글을 올렸다. 노 부장판사는 “정녕 그 피고인(이재명)의 몇년 전 발언이, 평화로운 대한민국에 계엄령을 선포해 온 국민을 공포에 떨게 한 전직 대통령의 행위보다 악랄한 것이냐”고 말했다.

노 판사는 “전직 대통령이 계엄령을 선포할 당시에도 아무런 입장을 나타내지 않다가 그 대통령이 국회의 계엄 해제 요구를 받아들인다고 발표했을 때에야 비로소 ‘사법부가 인권의 최후 보루’라는 참으로 본인 입으로 하기 민망한 의견을 냈을 뿐”이라며 조 대법원장을 향해 날을 세웠다. 그러면서 “대한민국 시민들은 일상도 제대로 누리지 못하고 차가운 아스팔트 바닥에 앉아 내란 종식을 외쳐야 하느냐”며 “저는 이번 대법원 판결이 ‘너희들이 주권자 같지? 아니야, 너희는 내 밑이야’라고 들린다”고 밝혔다.

코트넷에는 이 밖에도 대법원 판결을 비판하는 법원 내부 구성원의 게시글이 연달아 올라오는 것으로 전해졌다.

앞서 청주지법 송경근 부장판사, 부산지법 김도균 부장판사도 코트넷에 대법원 판결을 비판하는 글을 게시한 바 있다.

지난 6일에는 조영준 변호사가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을 제기했다. 공직선거법에 따른 후보자 등록 및 당선 무효 규정이 대통령에게 적용된다고 해석하는 것은 위헌이라는 한정위헌 결정을 헌재가 선고해달라는 취지다.

이번에 판사들 사이에서 조 대법원장 사퇴 요구가 나오면서 전국법관대표회의가 소집돼 이 문제를 논의할지에도 관심이 집중된다. 전국법관대표회의 의장인 김예영 서울남부지법 부장판사는 이날 법원 내부 통신망에 “임시회 개최 여부 및 안건에 대해서는 전국법관대표회의 단톡방에서, 의장 소집권한을 행사할지에 대해서는 운영위원회에서 각각 논의 중”이라고 했다.

반면 조 대법원장과 대법관들을 응원하는 글도 코트넷에 올라왔다. 다만, 7일까지 단 한명의 판사만 글을 올렸다고 한다.

남준우 의정부지법 부장판사는 7일 “이번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에 대해 법원 내에서 비판적인 의견만 존재하는 것으로 오인할까 하여 결론의 당부(정당·부당)를 떠나 판결에 참여하신 대법원장님과 대법관님들의 고뇌에 찬 판결에 존중과 경의를 표한다”고 썼다. 그는 “법관의 재판 진행, 판결의 결론에 따른 유불리에 따라 법관에 대한 탄핵, 국정조사, 청문회 등을 언급하는 것 자체에 대해 단호히 반대하고 깊은 우려를 표한다”고 덧붙였다.

◆위증교사 사건 외 연기 … “공정성 논란 없애기 위해” = 이런 법원 안팎의 비판 목소리를 반영하듯 이재명 후보의 1·2심 재판부는 잇따라 재판을 연기하고 있다.

서울고법은 지난 2일 대법원이 사건을 돌려보낸 지 하루 만에 첫 재판을 15일로 잡고 이 후보측에 피고인 소환장을 발송했다. 이에 서울고법 역시 대법원처럼 이례적으로 빠르게 사건을 속전속결로 결론을 내리려한다는 분석이 나왔다.

하지만 서울고법 형사7부(이재권 부장판사)는 이 후보측이 오는 15일로 예정됐던 공직선거법(허위사실 유포 혐의) 위반 사건 파기환송심 첫 기일에 대해 7일 변경신청을 했고, 같은 날 이를 받아 들여 6월 3일 대선 이후인 6월 18일로 연기했다.

이에 대해 서울고법 형사7부는 “대통령 후보인 피고인에게 균등한 선거운동의 기회를 보장하고 재판의 공정성 논란을 없애기 위해 재판기일을 대통령 선거 이후로 변경한다”며 “재판부는 법원 내·외부의 어떠한 영향이나 간섭을 받지 않고 오로지 헌법과 법률에 따라 독립해 공정하게 재판한다는 자세를 견지해 왔고 앞으로도 그렇게 하겠다”고 연기입장을 밝혔다.

또 이날 이 후보측은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3부(이진관 부장판사)의 대장동 배임·성남FC 뇌물 의혹 사건(5월 13일과 27일)과 서울고법 형사3부(이승한 부장판사)의 위증교사 사건 재판(5월 20일)에 대해서도 기일 변경을 신청했다.

이에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3부는 대장동 배임·성남FC 뇌물 의혹 사건 기일을 대선 이후인 6월 24일로 미뤘다. 대선 전인 오는 20일 잡힌 위증교사 사건 재판만 남아 있다. 서울고법 형사3부도 선거 이후로 재판기일을 변경할지 주목된다.

김선일·서원호 기자 sikim@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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