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시평

‘다크 패턴’ 디지털 유혹의 기술

2025-05-09 13:00:05 게재

얼마 전 구독해 오던 해외 잡지를 해지하려다가 뜻밖의 번거로움을 겪었다. 사이트 안에서 해지 메뉴를 찾는 일부터가 쉽지 않았고 어렵게 버튼을 눌렀더니 오류 메시지가 반복되었다. 겨우 실시간 채팅을 통해 담당자와 연결됐지만 한국어 지원은커녕 영어로만 소통할 수 있었다.

해지를 요구하자 요금을 할인해 주겠다는 제안부터 반복적인 확인까지 마치 이용자의 의사를 흔들기 위한 여러 장치가 총동원되는 느낌이었다. 그 과정에서 느꼈던 감정은 하나였다. 의도적인 불편함. 그리고 뒤늦게 깨달았다. 이 모든 것이 ‘디지털 설계’라는 이름 아래 조심스럽게 준비된 소비자 경험이라는 것을. 바로 ‘다크 패턴(dark pattern)’이라 불리는 전략이다.

처음에는 단순한 사용자 경험(UI) 설계로 보이지만 실상은 소비자의 주의를 분산시키고 합리적 판단을 어렵게 만들어 결과적으로 기업에 유리한 결정을 이끌어내는 기법이다. 가입은 쉽고 해지는 어렵게 설계된 ‘바퀴벌레 모텔(roach motel)’ 방식은 그 대표적인 예다.

소비자의 인지적 한계 정확히 겨냥해 설계된 다크패턴의 위험성

다크 패턴이 위험한 이유는 단순히 해지 버튼을 숨겨놓아서가 아니다. 소비자의 인지적 한계와 감정, 피로를 정확히 겨냥해 설계된다는 점에서 본질적으로 기만적이다. 예컨대 구매 버튼은 진하게 강조하고 해지 버튼은 회색으로 흐리게 만들거나 특정 옵션을 선택하지 않으면 “혜택을 포기하겠습니까?”라는 심리적 압박 문구를 띄우는 식이다.

이러한 설계는 특히 금융 분야에서 치명적일 수 있다. 대출 보험 투자와 같이 정보가 복잡하고 결정이 중대한 영역에서는 소비자의 정보 해독 능력 자체가 한계에 부딪힌다. 게다가 고령층이나 디지털 접근성이 낮은 계층은 애초에 이와 같은 설계 구조를 인지조차 하기 어렵다. 즉 단순히 ‘몰라서’ 피해를 입는 것이 아니라 애초에 ‘보이지 않도록’ 설계되어 있는 것이다.

전통적인 경제학은 소비자를 ‘합리적 의사결정자’로 본다. 정보가 충분히 제공되고 시장이 경쟁적이라면 소비자는 스스로 최적의 선택을 할 수 있다는 믿음이다. 하지만 행동경제학은 이 전제를 흔들었다. 인간은 제한된 시간과 인지 능력, 편향된 감정을 지닌 존재이며 정보의 바다 속에서 ‘더 좋은 선택’이 아닌 ‘덜 불편한 선택‘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현실은 소비자 보호의 방향을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단순히 정보 제공이나 가격 비교 사이트를 운영하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소비자가 더 나은 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환경 자체를 바꾸는 접근이 필요하다.

이미 유럽연합은 디지털서비스법(DSA)을 통해 다크 패턴 사용을 법으로 금지하고 있고 미국 연방거래위원회(FTC)도 온라인 플랫폼에서의 기만적 설계 관행에 대해 규제에 나서고 있다.

한국 역시 디지털 기반 서비스가 늘어나고 해외 플랫폼 이용이 일상화되는 시점에서 관련한 제도적 정비가 필요하다. 특히 서비스 수지가 지속하여 악화되는 가운데 해외 기업들에 대한 소비자 보호 조치를 비관세적 방식으로 강화하는 것도 한 방법이 될 수 있다. 국내 소비자들이 ‘글로벌 서비스’라는 이름 아래 방치되지 않도록 적절한 규제와 협약이 마련되어야 한다.

‘글로벌 서비스’라는 이름 아래 방치되지 않도록 적절한 규제와 협약 필요

디지털 환경은 점점 더 정교해지고 있지만 소비자 보호는 여전히 느리게 따라가고 있다. 소비자의 클릭 한 번이 기업의 수익을 바꾸는 시대 그 클릭이 과연 충분한 이해와 자율에 기반한 선택이었는지 다시 묻게 된다.

더 나은 정보 더 많은 선택지만으로는 부족하다. 필요한 것은 더 정직한 설계 더 섬세한 배려다. 소비자는 생각보다 덜 합리적이고, 플랫폼은 생각보다 더 영리하기 때문이다.

유경원 상명대 교수 경제금융학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