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령자 계속고용의무
“정년연장 대신 65세까지 단계적 계속고용의무화”
경사노위 공익위원 제언 “보편적 적용, 적정임금·선택권 보장” … 노사 모두 반발, 노사정 합의안 아니기 때문에 강제력 없어
노사정 사회적 대화기구인 경제사회노동위원회(경사노위)는 정년연장을 위한 과도기적 조치로 법정 정년은 현행(60세)을 유지하되 2028년부터 퇴직후 일하기를 희망하는 근로자에 대해 단계적으로 국민연금 수급개시 연령까지 계속고용(정년퇴직 후 재고용)을 의무화하는 ‘공익위원 제언’을 8일 발표했다. 지난해 6월 노사정 합의로 경사노위 산하 ‘인구구조 변화 대응 계속고용위원회’(계속고용위)를 발족해 11개월간 총 40회 회의를 열어 얻어낸 공익위원 성과다. 하지만 공익위원 제언은 노사정 합의안이 아니기 때문에 강제력이 없다.
정년연장은 차기 정부에서 주요 논의 의제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통령선거 후보는 최근 “정년연장을 사회적 합의로 추진하겠다”고 밝혔고 민주당은 지난달 2일 ‘회복과 성장을 위한 정년연장 태스크포스(TF)’를 공식 출범시키면서 9월에 입법안을 마련해 11월 입법을 목표로 한다고 밝힌 바 있다. 김문수 국민의힘 대선 후보는 기업에 정년제도에 대한 자율권을 주겠다고 했다.
이영면 계속고용위 위원장(동국대 경영학과 교수)은 이날 발표에서 “제언이 노동계와 경영계 모두에게 만족스럽지 않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며 “지난해 12월 65세 이상이 전인구의 20%를 넘는 초고령사회로 진입하는 등 인구구조의 급속한 변화와 청년 일자리 등이 복잡하게 얽힌 현실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말했다. 이어 “국민연금 수급연령과 퇴직시점의 차이로 ‘소득 크레바스’(소득공백) 문제가 발생하고 노인빈곤율도 매우 높다”며 “고령인구의 경제활동 참여는 국가 차원의 노동력 부족 해소와 복지부담 완화 등 구조적 문제 해결을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계속고용위 전체회의는 지난해 12.3 비상계엄 선포로 한국노총이 사회적 대화를 중단하면서 노사가 참여하는 전체회의를 열지 못하면서 공익위원만의 제언이 됐다.
고령자 고용에 대한 노사의 견해 차이가 크다. 노동계는 국민연금 수급 개시연령(65세)에 맞춘 법정 정년의 단계적 상향을, 경영계는 임금체계 개편을 위한 실효적 조치(취업규칙 불이익 변경절차 완화) 마련 후 퇴직 후 선별적 재고용 활성화를 주장해왔다.
권기섭 경사노위 위원장은 “노사 간 입장이 좁혀지지 않았고 전체회의가 중단되기 직전 노사가 공익위원쪽에 중재안을 내 달라고 요청한 상황이었다”며 “권고안은 지난 1년간 공익위원들이 고심한 결과”라고 말했다.
계속고용위 공익위원들은 6월 말 임기 종료를 앞두고 노사의 주장을 토대로 법정 정년을 연장하는 대신 기업에 계속고용 의무를 부과하고 노사 협의로 노동시간·직무·임금 등을 조정하는 절충안을 내놓은 것이다.
공익위원 제언은 현행 법정 정년인 60세를 유지하면서 정년 이후에도 일하기를 원하는 근로자에 대해 65세까지 고용을 의무화하는 방안이 담겼다. 65세는 2033년부터 국민연금 수급이 개시되는 연령이다.
고령자 계속고용의무제도 설계 원칙으로 △노동시장 이중구조 완화 △청년일자리와의 조화 △노동시장의 활력 제고 △제도 운용의 노사참여 등 4가지 원칙을 제시했다.
●계속고용의무 대상, 정년연장 노사합의 없는 사업장 = 우선 법정 정년과 국민연금 수급개시 연령을 당장 일치시키기 어려운 점을 고려해 개별 사업장에서 노사가 자율적으로 임금조정 등 합의를 통해 정년을 연장하면 이를 존중하도록 했다. 이럴 경우 계속고용의무제를 적용받지 않는다.
정년연장에 대한 노사 합의가 없는 사업장의 사업주에게는 고령자 계속고용의무가 부여된다.
계속고용의무 기본 구성요소로 첫째, 60세 이후 계속 일하기를 희망하는 모든 근로자에게 계속고용 기회를 부여하는 ‘보편적 보장’이다. 다만 건강악화나 업무해태 등 근로자 귀책사유가 있거나 사업 축소나 폐지 등이 발생하면 고용기회를 예외적으로 제한할 수 있다.
둘째, 생산성에 상응하는 적정임금의 보장으로 계속고용의무제의 대상자에게 생산성에 상응하는 ‘적정임금’ 보장이다. 고령을 이유로 생산성에 밑도는 임금책정이나 과도한 연공임금은 기업부담을 가중시키고 청년근로자의 상대적 박탈감을 초래할 수 있어 자제해야 한다. 최종적으로 적정임금의 구체적 산정방식과 기준은 역할·직무·생산성·숙련·성과·기여 등 합리적인 요소들을 기반으로 개별 기업 노사의 공감 하에 결정돼야 한다.
셋째, 근로시간·직무 등에 대한 ‘선택권 보장’이다. 근로 형태나 유형은 노사 각자의 구체적인 상황과 의사를 반영해 합리적으로 설계돼야 하고 근로자의 건강이나 안전 등을 이유로 근로시간 양이나 직무 등의 희망을 최대한 반영해야 한다.
이 위원장은 “이분법적으로 구분하면 법정 정년연장이 아니라서 사용자측 안에 가까운 게 아니냐고 하지만, 경영계가 주장하는 ‘선별적 고용’이 아니라 기본적으로 계속 일하기를 희망하는 근로자들에게 기회를 부여해줘야 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고 설명했다.
적정임금에 대해서 공익위원인 권혁 고려대 노동대학원 교수는 “임금피크제는 임금을 적게 준다는 측면에서 불이익과 분쟁 소지가 있다”며 “계속고용의무제는 임금을 낮추고 높이는 식의 접근이 아니라 일하는 성과만큼 생산성에 비례해 적정임금과 일할 기회를 부여한다”고 말했다.
임금피크제는 일정 연령이 지난 근로자가 재직자 신분을 유지하는 대신 임금을 깎아 고용을 연장하는 제도다. 2022년 5월 대법원은 “합리적 이유 없이 나이만을 이유로 임금을 삭감하는 임금피크제는 ‘고용상 연령차별금지 및 고령자고용촉진에 관한 법률’(고령자고용법) 위반에 해당돼 무효”라고 판결한 바 있다. 반면 계속고용의무제는 고령자가 퇴직 후 재계약을 맺는 방식으로 자연적인 임금감소분(호봉 반납 등)이 발생한다.

계속고용의무제의 세부유형을 △직무유지형 △자율선택형 △대기업·공공기관 계속고용특례 등 3단계로 제시했다.
1단계 직무유지형 계속고용은 근로자가 계속고용을 희망하는 경우 원칙적으로 기존 직무와 근로시간을 유지하며 계속 일하되 임금은 생산성 등을 고려한 적정임금을 책정해야 한다.
2단계 자율선택형 계속고용은 고령 근로자의 건강이나 안전, 사용자의 경영상 어려움, 신규채용에 대한 부정적 영향 등 합리적 사유가 있는 경우에는 직무와 근로시간을 조정해 계속고용하는 방식이다.
3단계 대기업·공공기관에 대한 계속고용특례는 청년층이 선호하는 대기업·공공기관 일자리 등에서 고령근로자를 해당기업의 관계사로 전적시키는 경우에도 계속고용의무를 이행한 것으로 보는데 인력수급 등을 고려해 임시적·한시적으로 허용해야 한다.
●계속고용의무제 적용 시기는 2028년 = 공익위원이 제시한 계속고용의무제 적용 시기는 2028년이다. 올해 관련 입법을 전제로 2027년까지 2년간 유예기간을 두고 2028년부터 2031년까지 매 2년마다 1년씩, 2032년부터는 매해 1년씩 계속고용 의무기간을 연장하는 식이다. 2033년 65세로 늘어나는 국민연금 수급개시연령과 같아지도록 했다.

공익위원은 계속고용의무제의 실효성 확보를 위한 국가의 책무도 강조했다. 청년 등 근로자의 의견 개진 시스템의 제도화, 고령친화 사업장으로서 혁신 지원, 노동시장 고령화 대응체계 마련, 계속고용을 위한 적극적 인센티브 제공 등을 제시했다.
공익위원 제언에 대해 오학수 일본 노동정책연수기구 특임연구위원은 “저출생·고령화 심화, 높은 노인빈곤율, 연금재정 고갈 위험 등 고령화 진전에 따른 심각한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절박한 상황에서 새 정부 출범 이후 신속한 입법여건 조성이라는 측면에서 매우 시의적절하다”고 평가했다.
이어 “제언의 내용은 완성형이라기보다는 단초를 제시한 것으로 노사가 고령자 고용에 대해 현실적인 검토를 시작하고 정부는 그것을 지원하는 측면에서 공론화 및 제도화를 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노사는 모두 공익위원 제언을 두고 반발했다. 한국노총은 이날 성명을 내고 “경사노위는 공익위원 제언에 대한 노사 의견청취 등 최소한의 절차조차 생략했다”며 “사회적대화 기구의 절차조차 무시한 공익위원 제언 발표를 강력히 규탄한다”고 밝혔다.
내용에 대해서도 “계속고용이란 용어는 기업에 재고용을 선택할 수 있도록 제도적으로 허용하는 것”이라며 “특히 대기업·공공기관 특례는 법에서 연령을 이유로 한 차별을 금지하고 있는데 이를 피하기 위해 관계사로 재고용을 계속고용조치로 허용하는 편법을 제시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국노총은 “소득공백 문제를 해소하고 고령자의 고용안정을 위해 국민연금 수급개시 연령과 법정 정년연령을 일치시키는 65세 정년연장안 도입을 위한 법 개정에 더욱 박차를 가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국경영자총협회도 입장문을 통해 “기업에 재고용 대상자 선택권을 부여하지 않고 원칙적으로 일하기 희망하는 고령 근로자 모두를 재고용하라는 의무를 강제하면서 임금체계 개편 방안은 빠져 있다”며 유감을 표했다.
경총은 “논의과정에서 임금체계 개편을 위한 최소한의 실효적 조치인 취업규칙 변경절차 완화가 필요함을 거듭 강조했으나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며 “기업이 필요로 하는 인력을 필요한 곳에 활용할 수 있어야 개인과 경제 전체의 효용이 높아질 수 있는 만큼 재고용 대상자를 노사가 합의한 기준으로 기업이 정할 수 있도록 해줘야 했다”고 지적했다.
권기섭 위원장은 “제언을 공식적으로 정부에 전달할 예정이고 정치권에서도 이를 토대로 입법 논의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한남진 기자 njhan@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