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압도적 승리’보다 중요한 1400만 노동자의 ‘인생 이야기’
대통령선거 후보자들의 공약 발표가 지난 12일에 있었다. 그런데 프리랜서 위장으로 인한 노동자 오분류, 5인 미만 위장 사업장, 초단시간 쪼개기 노동 등 노동법 밖 노동자들의 문제를 정면으로 다루는 공약이 잘 보이지 않는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의 비전형 노동자(특수고용직, 프리랜서, 플랫폼노동자, 자영업자 등)의 권리 보호를 위한 법제도 개선을 추진한다는 공약과, 권영국 민주노동당 후보의 노동자와 사용자의 개념을 바꾸고, 법률 적용 대상을 확대하며, 4인 이하 사업장 노동자, 공무원 등 모든 노동자에게 노동기준법을 적용하겠다고 한 공약이 유이(唯二)하다.
근로기준법은 제1조(목적)에서 ‘이 법은 헌법에 따라 근로조건의 기준을 정함으로써(…).’라고 법의 제정 이유를 밝히고 있다. 여기서 언급하는 헌법은 제32조 제3항의 ‘근로조건의 기준은 인간의 존엄성을 보장하도록 법률로 정한다’이다. 즉 국가가 인간의 존엄성을 보장하기 위해 만든 법이 근로기준법이기에 근로기준법의 온전한 적용을 받지 못하는 노동자가 있다는 것은 매우 심각한 문제이다.
근로기준법 제정 이유 다시 새겨야
근로기준법 밖 노동자들이 계속해서 증가하고 있다. 비임금노동자 862만명, 15시간 미만 초단시간노동자 180만명, 5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 350만명 등 최소 1400만명이 넘는 것으로 추산된다. 주 15시간 미만 초단시간 노동자와 5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는 근로기준법의 핵심 조항의 적용을 받지 못하고 비임금노동자는 근로기준법의 어떤 조항도 적용받지 못한다.
통계청에서 발표한 경제활동인구조사에 따르면 전체 취업자 규모가 2800만명에 달한다(2025년 3월 기준). 노동 인구의 절반 이상이 근로기준법 밖에 있는 것이다. 더 심각한 문제는 이들 중 상당수가 사업주가 법적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제도 밖으로 밀려난 노동자로 의심된다는 것과, 이를 규제하기 위한 제도도 부재하고, 위장돼 권리를 빼앗긴 노동자들에 대한 실태도 제대로 파악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이번 대선을 잠식한 키워드는 ‘내란 종식’과 ‘압도적 승리’다. 그러나 ‘압도적 승리’의 주체는 대체 누구인가? 당선된 후보인가? 당선된 후보를 배출한 정당인가? 이번 대선이 조기대선이라는 사실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광장을 수호하고 내란을 막은 사람이 누구인가?
광장을 채운 것은 그동안의 집회에서 보지 못했던 깃발과 새로운 노래, 가지각색의 응원봉이었다. 광장의 목소리를 이어받은 대선은 이 다양성에 공약으로 화답할 책임이 있다. 10년 넘게 쉴새 없이 일해도 실업급여 한번 받지 못한 프리랜서, 정해진 시간에 출퇴근하며 출근일도 자유롭게 정하지 못하는 위장된 프리랜서, 10명이 넘게 일하지만 사업장이 쪼개져 있거나, 프리랜서가 대부분이라는 이유로 말 한마디로 쫓겨난 5인 미만 위장 사업장 노동자, 노동력을 제공하며 받는 급여로 생계를 유지하는 것은 맞지만 병역의무라는 이유로 노동자로 인정받지 못하는 사회복무요원 노동자, 대선은 이 목소리들을 담아야 한다.
광장의 목소리와 멀어진 대선은 공허
새로운 법을 만드는 것이 우선이 될 수는 없다. 기존 법과 제도가 제대로 작동하는지 만약 그렇지 않다면 그 원인이 무엇인지를 파악하는 것이 먼저다. 제도를 개선하고 법을 제정하는 것은 그다음이다. 투표일까지 20일이 남은 지금 광장의 목소리가 조금이라도 더 반영되기를 바라며 글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