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시론

흔들리는 달러패권 “문제는 내부야”

2025-05-15 13:00:01 게재

미국 달러는 오랜 시간 세계 기축통화로서의 위상을 유지해왔다. 그러나 최근 그 기반이 근본적으로 흔들리고 있다.

하버드대 경제학과 교수이자 전 IMF 수석 이코노미스트인 케네스 로고프는 최근 출간한 저서 '우리의 달러, 당신들의 문제(Our Dollar, Your Problem)'에서 “달러패권은 닉슨 쇼크 이후 가장 심각한 도전에 직면해 있다”면서 “향후 5~7년 내에 구조적 전환이 이뤄질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다. 그는 책에서 달러가 글로벌 금융 시스템에서 누려온 과도한 특권의 이면과 그 기반이 서서히 약화되는 과정을 심층적으로 분석했다.

달러패권 닉슨 쇼크 이후 가장 심각한 도전에 직면

달러는 단순한 결제수단이 아니다. 미국의 외교력과 제재수단, 금융시장 지배력의 핵심축이다. 이같은 달러패권이 50년 만에 최대의 도전에 직면했다고 경고한 이유는 이렇다. 미국의 만성적인 재정적자, 정치적 불확실성, 연준의 독립성 약화, 일방적 제재 남용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그 국제적 위상이 흔들리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변화가 단기적이거나 일시적 현상이 아니라 구조적 전환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이 미국의 입장에선 심각하다. 실제로 2015년을 기점으로 신흥국들의 외환보유 다변화, 디지털 통화 시스템 개발, 유로화와 위안화의 비중 확대 등은 다극화된 글로벌 통화 질서로의 이행을 예고하고 있다.

여기에 더해 2022년 미국이 러시아의 외환 자산을 동결한 조치는 중국을 비롯한 여러 국가들로 하여금 달러 의존도를 낮추려는 움직임에 박차를 가하게 했다. 국제금융시장에서 미국의 자산은 더 이상 절대적 안전자산이 아니며 미국정부의 일방적 결정이 통화 패권의 신뢰 기반을 허무는 계기가 되고 있다.

미국이 과거처럼 “달러 외에는 대안이 없다”는 믿음에 안주할 수 없는 상황이 펼쳐지고 있다. 실제로 유로화 위안화 디지털통화, 심지어 암호화폐까지 각기 다른 형태의 경쟁자가 시장점유율을 확대하고 있다. 다극화 체제로 이동하고 있다는 신호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경제정책은 오히려 달러위기를 부채질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트럼프는 규제완화 고율관세 감세정책 등을 통해 미국 경제의 단기적 성과를 부각시키려 했지만 결과적으로는 금융시장의 신뢰를 무너뜨리고 있다. 특히 스탠퍼드 경영대학원의 연구에 따르면 최근 관세 부과 발표 이후 달러 가치는 오히려 급락했고, 미국 국채 수익률은 급등했다. 이는 투자자들이 달러 자산을 더 이상 안전하게 보지 않는다는 강력한 신호다.

뿐만 아니라, 트럼프는 연방준비제도(Fed)의 독립성마저 위협해왔다. 통화정책에 정치가 개입할 경우, 기축통화의 안정성과 예측 가능성은 무너진다. 실제로 로고프 교수는 트럼프가 연준 의장을 압박하고 통화정책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려 했던 점을 지적하며 “연준은 이미 바람에 따라 흔들리는 배”가 되었다고 비판했다.

미국 자산에 붙는 ‘무능 프리미엄’이란 개념도, 미국이 자초한 정책적 신뢰상실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문제는 트럼프 개인을 넘어 미국 정치 시스템 전반이 예측불가능한 방향으로 흐르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달러뿐만 아니라 미국 자체에 대한 평가 하락으로 이어질 수 있다.

트럼프의 경제정책에 국제사회 신뢰까지 무너진 미국

이러한 흐름은 국제사회의 여론에서도 감지된다. 덴마크 민주주의동맹(AoD)이 전 세계 100개국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에 따르면 미국에 대한 민주주의 평판지수는 -5%로 하락했다. 이는 같은 조사에서 중국(+14%)보다 낮은 수치이며, 러시아(-9%)와 비슷한 수준이다. 1년 전만 해도 +22%였던 점을 고려하면 미국의 평판은 단기간에 크게 떨어진 것이다. 이는 무역전쟁, 동맹경시, 권위주의적 행태 등 트럼프식 외교가 초래한 결과다. 더 이상 미국은 과거처럼 국제사회의 도덕적 리더로 인식되지 않는다. 트럼프의 일방주의는 미국이 누리던 신뢰자본을 빠르게 소진시켰고, 그 결과 달러의 패권적 지위도 동반 하락하고 있다. 이는 단순히 정권의 문제가 아니라 미국 시스템 전반의 위기를 반영한다.

지금 미국에 필요한 것은 감각적 정치가 아닌 원칙 기반의 리더십, 단기 성과가 아닌 장기전략이다. 세계는 더 이상 미국의 특권을 당연하게 여기지 않는다. 미국 스스로 신뢰를 회복하지 않는다면 달러패권의 시대는 종언을 맞을 수도 있다.

김상범 국제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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