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장 폐쇄, 위기의 닛산…일본 완성차 업체 ‘휘청’
닛산, 글로벌 생산거점 7곳 없애고 2만명 인력 감축
도요타·혼다, 트럼프 관세로 20조원 이상 타격 예상
일본 자동차 업체들이 트럼프 행정부의 고율 관세로 휘청이고 있다. 일본 대미 수출의 40%에 육박하는 자동차 및 자동차 부품 수출이 막대한 타격을 받을 것이라는 전망 때문이다. 특히 혼다와 합병이 무산되면서 독자 생존의 길을 택한 닛산자동차는 대규모 생산거점 폐쇄와 인력 감축에 나서 는 등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다.
◆닛산, 지난해 6조원 넘는 적자로 경영위기 = 닛산자동차는 이달 13일 2025년3월기(2024년4월~2025년3월) 실적 발표를 통해 6708억엔(약 6조4400억원)의 순손실을 봤다고 밝혔다. 전년도 4266억엔 흑자에서 큰폭의 적자로 돌아섰다. 닛산이 이날 발표한 연간 적자규모는 2000년3월기(6843억엔)와 2020년3월기(6712억엔)에 이어 역대 세번째 규모다.
매출은 전년 대비 0.4% 줄어든 12조6332억엔(약 121조원)을 기록했다. 글로벌 판매대수는 전년 대비 2.8% 감소한 334만대로 2년 만에 감소했다. 닛산의 글로벌 판매대수는 2017년 577만대에서 42.1% 줄었다.
북미와 중국시장 모두 부진했다. 미국시장에서는 하이브리드 차량의 투입이 늦어지는 등 차종 라인업에 문제를 드러냈다는 평가다. 중국에서는 전기자동차(EV) 등에서 성장을 계속하고 있는 현지업체와 경쟁에서 밀렸다.
판매 부진이 커지면서 500만대 이상 생산능력을 가진 닛산은 과잉 생산체제에 따른 비용부담을 줄일 필요성이 커졌다는 평가다. 실제로 중국 공장을 빼고도 글로벌 생산라인 가동률은 70% 정도 수준이다. 개별 공장에 따라서는 가동률이 더 낮다는 분석이다.
이에 따라 닛산은 실적 발표와 함께 대규모 구조조정 계획도 내놨다. 핵심은 전세계 주요 생산거점 17곳 가운데 7곳을 폐쇄하고, 2만명의 인력을 감축하겠다는 내용이다. 인력 감축 규모는 기존에 밝힌 9000명에서 두배 이상 늘었다. 전세계 13만명에 이르는 종업원의 15.4% 수준이다. 닛산은 인력 감축과 관련 2028년까지 단계적으로 시행한다는 계획이다.
이반 에스피노사 닛산 사장은 기자회견에서 “지난해 2000억엔의 영업적자를 보인 자동차사업 부문에서 내년까지 흑자를 이루겠다”며 “고정비용 등을 포함해 5000억엔의 비용을 줄이겠다”고 밝혔다. 이반 사장은 “아픔이 따르지만 지금 결단하지 않으면 더 악화된다”고 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18일 “닛산이 멕시코에 있는 3개 생산거점 가운데 2개 공장을 폐쇄하는 것을 검토하고 있다”며 “일본 국내에서는 5개 생산라인 중 창업의 본거지인 가나가와현 2개 공장의 폐쇄 또는 휴업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고 전했다. 이 신문은 또 닛산이 아르헨티나와 남아프리카공화국 생산라인도 접을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닛산의 구조조정 계획이 성공할지는 미지수다. 당장 북미와 중국시장에서 새로운 차종을 얼마나 제때에 투입하는지 여부다. 미국시장에서는 미쓰비시자동차와 연계해 하이브리드 차량을 올해 안에 투입하고, 독자적으로 개발한 ‘E-파워’를 탑재한 차량도 내년중 시판할 계획이다. 중국시장에서는 전기차 세단 ‘N7’을 올해부터 시판한다.
아사히신문은 “지난해 말 합병 논의가 시작됐지만 혼다가 제안한 자회사 편입을 닛산이 거부하면서 무산됐다”며 “닛산은 미국시장에서 혼다, 미쓰비시 등과 계속 협력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지만 성과는 미지수”라고 분석했다. 이와 관련 대만 홍하이정밀이 닛산과 협력을 적극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홍하이는 자회사가 미쓰비시자동차와 연계를 발표하는 등 일본 자동차시장에서 공세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다.
시장에서는 닛산의 미래에 부정적이다. 신용평가회사 무디스재팬은 올해 닛산의 회사채 신용등급을 투기적 등급에 해당하는 ‘Ba1’로 격하했다. 닛산 주가는 급락해 지난달 역대 최저수준으로 떨어지기도 했다.
◆도요타, 국내 300만대 생산체제 위협 =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최근 “도요타의 일본 300만대 생산체제가 시련에 직면했다”고 분석했다. 지난해 도요타의 일본 내 생산은 총 312만대로 이 가운데 약 53만대는 미국으로 수출했다. 지난해 도요타가 미국에서 판매한 233만대 가운데 현지생산(127만대)의 절반에 미치지 못하지만, 고급 브랜드 ‘렉서스’가 차지하는 비중이 높다.
도요타는 자국에서 생산해 미국 등 해외에 수출하면서 고용과 세금 등을 통해 일본 경제에 기여하고 있다. 신문은 “수출을 통해 실제 자동차가 소비되는 장소는 해외라고 해도 국산 부품과 재료, 설비 업체에 일본의 소비세가 부과된다”며 “도요타의 손익계산서에는 나오지 않지만 세금으로 일본 경제에 기여하는 구조”라고 했다. SBI증권은 이런식으로 국내에 환급되는 금액이 도요타만 연간 7000억엔(약 6조7000억원)에 이르고, 혼다도 3000억엔(약 2조9000억원) 수준으로 추산했다.
도요타가 국내에서 300만대 생산체제를 고집하는 이유는 고용문제도 있다. 도요타는 지난해 기준 7만명 이상의 종업원을 고용하고 있다. 마츠다와 스바루 등 자회사와 부품 계열사까지 포함하면 40만명에 육박한다. 일본자동차공업협회에 따르면, 일본내 자동차 관련 전후방 고용인구는 약 560만명으로 전체 취업인구의 8.3%에 달할 것으로 추산했다.
도요타가 지역사회에 미치는 영향도 막대하다. 예컨대 도요타가 현재의 도요타시에 있는 공장에서 ‘크라운’ 모델을 생산하기 시작한 때는 1959년이다. 도요타시로 명칭을 바꾼 것도 같은 해이다. 도요타시의 인구는 이후 지금까지 41만명으로 3배 가까이 증가했다.
한편으로 이번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폭탄이 일본 산업구조의 한계를 드러냈다는 지적도 있다. 자동차 산업에 대한 지나친 의존으로 경제 전체에 큰 타격을 줄 수 있다는 의미다. 실제로 일본은 지난해 자동차 및 관련 부품의 수출 금액(20조엔)으로 연간 25조엔에 이르는 에너지 수입액을 충당했다고 해도 과장이 아니다. 사토 고지 도요타 사장이 지난 8일 실적발표에서 “앞으로도 수출을 통해 외화를 획득해서 일본의 에너지 수입을 지탱해 나갈 것”이라고 말한 것도 이러한 사정을 반영한다.
한편 일본 완성차 업체는 지난주 잇따라 지난해 연간 실적발표와 올해 전망을 내놨다. 모든 업체가 올해 실적 전망을 부정적으로 내다봤다. 도요타는 지난해 대비 순익이 34.9% 감소한 3조1000억엔(약 30조원) 수준으로 내다봤다. 사토 사장은 “관세의 구체적인 영향은 점치기 어렵다”면서 “4월과 5월 두달치만 분석하면 1800억엔의 마이너스 효과가 발생했다”고 말했다.
혼다도 연간 6500억엔(약 6조2000억원) 순이익이 감소해 2500억엔 흑자에 그칠 것으로 예상했다. 닛산은 아예 올해 실적 전망치를 내놓지 않았다. 다만 트럼프 관세에 따라 연간 4500억엔 이상 추가적인 손실이 발생할 것으로 내다봤다.
NHK는 “트럼프 정권의 자동차 관세 25% 시행이 1개월 가량 지나면서 자동차산업에 강렬한 역풍을 불러올 우려가 커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NHK가 개별 완성차업체의 발표 등을 토대로 집계한 트럼프 관세에 따른 올해 연간 마이너스 효과는 최소 2조5000억엔(약 24조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했다.
백만호 기자 hopebaik@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