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관세폭주에 법원 급제동
“IEEPA로는 과세 불가”
대통령 비상조치 한계
미국 연방국제통상법원이 28일(현지시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상호관세’ 정책이 위법이라고 판결해 파장이 예상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4월 2일 국제비상경제권한법(IEEPA)을 근거로 중국, 캐나다, 멕시코 등 주요국에서 들어오는 수입품에 고율의 관세를 부과한다고 발표했다.
그는 무역적자, 산업 붕괴, 마약 밀수를 ‘국가적 위협’으로 규정하며 비상사태 조치를 주장했지만, 법원은 이를 권한 남용이라고 판단했다.
IEEPA는 1977년 제정된 연방법으로 대통령이 외교적 또는 군사적 위협에 대응해 외환 거래 제한, 자산 동결 등 일부 경제 제재를 시행할 수 있도록 허용한다.
연방 판사단은 “IEEPA는 어디에도 대통령이 직접 관세를 설정하거나 수정할 수 있다는 권한을 포함하지 않는다”며 “과세는 헌법상 오직 의회가 갖는 권한”이라고 명시했다.
이번 판결은 와인 수입업체 VOS 셀렉션 등 중소기업 5곳이 제기한 소송을 계기로 내려졌으며, 여기에 오리건, 캘리포니아, 뉴욕 등 12개 주정부가 동참했다. 이들은 트럼프 행정부가 의회의 승인 없이 일방적으로 고율 관세를 부과해 공급망이 무너지고 소비자 물가가 상승했으며, 헌법상 권력 분립 원칙을 침해했다고 주장했다.
판결은 만장일치로 이뤄졌으며, 재판부는 트럼프가 임명한 티머시 라이프, 레이건 대통령이 임명한 제인 레스타니, 오바마 대통령이 임명한 게리 카츠먼 등 서로 다른 성향의 판사 3인으로 구성됐다. 레스타니 판사는 “아무리 정치적으로 매력적인 계획이라 해도, 헌법과 법률의 틀 안에서만 정당성을 가질 수 있다”며 행정부의 주장을 일축했다.
백악관은 즉각 반발했다. 대변인 쿠시 데사이는 성명을 통해 “불공정한 무역 구조는 미국 사회를 해치고 근로자를 소외시키며 산업 기반을 약화시켰다”며 “이 같은 위협에 대통령이 대응할 수 없는 체계는 국가적 기능을 마비시킨다”고 주장했다.
법무부는 IEEPA가 대통령에게 수입품 규제를 포함한 폭넓은 조치를 허용한다고 해석하며 항소 의지를 밝혔다.
그러나 법원은 대통령이 아무리 비상사태를 선언하더라도 의회의 고유 권한인 과세 권한을 대신할 수는 없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판결문은 “입법 절차 없이 국가 무역 정책을 전면 개편하려는 시도는 헌법상 삼권분립 원칙에 정면으로 위배된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이번 사건이 미국 대법원으로 넘어갈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헌법상 권한 분배와 입법 절차에 관한 판단이 걸려 있는 만큼, 대법원이 대통령과 의회의 권한 경계를 명확히 재정의할 필요성이 있다는 목소리가 높다.
정재철 기자 jcjung@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