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말·삿대질 상임위장, 최악의 대선토론 만들어”
고성·반말 일상화된 국회 모습 반영
28년 된 TV대선토론 중 ‘최악’ 평가
사회자 재량권 확대 등 운영도 손봐야
TV토론이 처음 시작한 1997년 15대 대선 이후 28년 역사 중 이번 21대 대선 TV토론이 ‘최악’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는 유권자의 정치적 양극화와 함께 이를 기반으로 대화와 타협이 부재한 여의도 정치문화가 낳은 결과물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지지층에 기댄 국회의원들이 상임위와 본회의장에서 보여준 고성과 삿대질, 막말들이 TV토론장으로 이어졌다는 얘기다. 그러면서 21대 대통령 후보자들의 ‘자질’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평가가 나오고 있다. 사회자의 재량권을 확대하는 등 토론방식 변화를 주문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29일 선거TV토론을 오랫동안 기획하고 주도해온 이종희 인천시 선거방송토론위원회 위원장(전 선거연수원 교수)은 내일신문과의 통화에서 “3번의 대선 TV토론을 보면 정책 토론보다는 네거티브로 흠집을 내려는 게 유달리 더 심해지는 경향이 나타났다”며 “이런 추세는 우리나라 문제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민주주의가 후퇴하는 모습과 맞닿아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준석 후보의 경우에는 논란이 될 만한 발언을 하기도 했다”며 “권영국 후보는 정책토론을 해보려고 애를 쓰며 이게 무슨 토론이냐고 답답해하는 상황이 벌어졌다”고 했다.
토론 운영방식 등 제도를 바꿔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사회자가 재량권을 활용해 토론과정에 개입하거나 송곳 질문으로 검증력을 높여야 한다는 얘기다. 과도한 네거티브나 인권침해 발언, 명백한 ‘허위 사실’에 대해서는 과감하게 차단하고 유권자가 묻고 싶은 후보의 약점을 제대로 짚어주면 유권자들의 선택을 도울 수 있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TV토론은 중앙선관위 선거방송토론위원회가 주도하고 3개 공중파 방송사가 진행하는 방식을 택하고 있다. 모두발언, 공약 설명, 공약검증토론, 주제가 있는 주도권 토론이나 자유의 주도권토론, 시간 총량제 등의 TV토론 운영 방안은 효율성과 형평성 등을 고려해 수차례의 수정과 보완을 거쳐 만들어졌다.
TV토론은 ‘검증’이 핵심이지만 중앙선관위는 ‘공정성’과 ‘형평성’에 더 무게중심을 두고 있다. 모든 후보들에게 가능한 비슷한 발언 기회를 주는 등 치우치지 않게 진행하는 게 중요하다는 얘기다. 따라서 사회자에게 재량권을 줄 경우엔 당장 공정성 논란에 휩싸이고 현재와 같은 분위기라면 고소 고발이 난무할 수 있다.
한국정치학회 하상응 서강대 교수 등은 중앙선관위에 제출한 ‘선거제도 개편 대비 토론회 운영방안 및 선거방송토론 효용성 향상 연구’ 용역보고서에 따르면 “현재 사회자의 토론에 대한 개입은 거의 이뤄지지 않고 특히 후보자가 상대 후보를 비방하는 발언을 하거나 주제에 이탈한 발언을 하더라도 이미 발언이 다 이루어진 상황에서야 개입하는 실정”이라며 “사회자가 토론의 흐름을 제어하기 위해서는 후보자가 주제에 벗어난 발언을 하거나 상대 후보를 비방하는 발언을 하는 중에 즉시 개입할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사회자의 역할 확대는 필연적으로 공정성 시비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며 “중앙선거방송토론위원회가 자체적으로 사회자의 역할을 강화하는 것이 부담이 된다면 주요 정당 관계자들과 후보자토론회에 대한 토론회, 공청회, 세미나 등을 개최해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합의를 만들어가려는 노력을 할 필요도 있을 것”이라고 했다.
사회자 재량권 확대를 포함한 토론 진행방식 개선보다는 ‘정치문화’에서 ‘막말 토론회’의 원인을 찾는 목소리도 크다.
중앙선관위의 ‘제20대 대통령선거 후보자토론회 효과 분석’ 보고서는 “후보자토론회의 공정성과 흥미성은 점증하는 정치적, 정서적 양극화 추세 때문에 점차 달성하기 어려운 목표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면서 “양극화 이슈를 해결하기 위해서 우선 정치권의 영합게임(zero-sum game)식의 대결 문화가 청산돼야 한다”고 했다.
20대와 21대 국회를 거치면서 상임위와 본회의에서는 극단적 대결구도가 만들어졌다. 여야 의원간 막말, 반말, 삿대질, 고성 등이 일상화됐다. 거대양당 의원들이 제출한 상대당 의원에 대한 징계요구안도 적지 않다. 서로 다른 정당의 지도부뿐만 아니라 의원들간 공적, 사적 교류가 크게 줄었다. 사실상 대화와 타협이 부재한 상태다.
이종희 위원장은 “사회자 재량권을 굳이 안 주더라도 후보자들이 제대로 정책 토론을 할 준비가 돼서 나오면 토론의 색깔이 완전히 달라질 수 있다”면서 “하지만 이번 최악의 토론회는 토론과 타협이 안 되고 있는 전반적인 정치 상황이나 양극화된 여론 지형을 그대로 보여줬다”고 했다.
그러면서 “승자독식 선거제도를 바꿔 다당제로 연정을 해야만 한다면 타협을 할 수 밖에 없고 상대방을 무시하거나 막말을 할 수 없게 될 것”이라며 “독일의 경우는 절충책을 찾거나 다른 정당의 공약을 수용하는 등 늘 대화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 했다. 국회를 다당제 구조로 바꿔야 한다는 조언이다. 그러면서 이 위원장은 “후보들의 자질도 중요하다”며 “토론회 규칙을 제대로 인지하고 토론회에 참여하거나 정책 중심으로 검증하려는 의지가 필요하다”고 했다.
박준규 기자 jkpark@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