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자동차 3사 미국과 ‘수출입 상계’ 협상

2025-05-30 13:00:03 게재

BMW·벤츠·폭스바겐

관세 완화 위한 전략

독일 자동차업계가 미국 정부와 새로운 형태의 관세 협상을 추진 중이다. 핵심은 미국 현지 생산 차량의 수출액과 유럽에서 미국으로 들어오는 차량의 수입액을 상계 처리하는 방식이다. 협상이 성사되면 미국은 국내 생산 확대와 고용 증가라는 정치적 성과를, 독일 업체들은 수출 비용 절감이라는 실리를 챙길 수 있다.

독일 경제지 한델스블라트(Handelsblatt)는 28일(현지시간) BMW, 메르세데스-벤츠, 폭스바겐 등 독일 자동차 3사가 지난 4월 말 미국 백악관을 방문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직접 협상에 나섰다고 보도했다. 이들은 미국 내 조립 차량의 해외 수출액과 유럽산 차량의 미국 수출액을 상계 처리해 관세율을 현재 25%에서 10%로 내리는 안을 제안했다. 이는 영국과 미국이 최근 체결한 자동차 관세 협정과 유사한 구조다.

미국은 2024년 4월부터 유럽 및 멕시코산 자동차에 대해 25%의 고율 관세를 부과 중이다. 이 조치는 독일 자동차업계에 큰 타격을 줬다. BMW는 올해에만 약 40억유로의 수익 손실이 예상된다고 추산된다. 그러나 미국 내 생산량을 수출과 연결짓는 방식의 상계 제도는 독일 업체들에게 새로운 돌파구가 될 수 있다.

BMW는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주 스파턴버그 공장에서 연간 약 40만 대를 생산하며, 그 절반 이상을 해외로 수출하고 있다. 미국 최대 자동차 수출 실적이다. 벤츠는 앨라배마주에서, 폭스바겐은 테네시주에서 각각 SUV(스포츠유틸리티차량) 중심의 생산을 이어가고 있다.

20일(현지시간) 독일 북서부 엠덴에 위치한 폭스바겐 공장 인근에서 전기차 ID. 버즈 차량이 선적을 위해 대기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공화당 주지사들이 이끄는 이들 주는 독일 제조업체들의 고용 및 투자를 중시하며 이번 협상 과정에서도 중재자 역할을 맡고 있다. 특히 사우스캐롤라이나주의 헨리 맥매스터 주지사와 앨라배마주의 케이 아이비 주지사가 협상 창구로 알려졌다.

한델스블라트는 독일과 미국 모두가 이 협상을 통해 실질적인 이익을 얻을 수 있다고 분석했다. SUV 생산을 미국에 집중시키고, 리무진 등 승용차 생산을 유럽에 유지하는 생산 분업 체계는 비용 절감과 공급망 효율화를 동시에 달성할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 남부 공장은 노동조합이 없고 에너지·노동 비용이 독일보다 훨씬 낮다는 점도 독일 제조사들이 선호하는 배경이다.

이번 협상은 아직 공식 타결된 상태는 아니지만, 정치적 무대에서 발표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은 현재 유럽연합(EU)과도 액화천연가스, 주사기, 샴페인 등을 포함한 포괄적 무역 협상을 병행 중이다. 하지만 자동차 업계에 한정된 별도의 협정이 트럼프의 재선 캠페인과 맞물려 대대적으로 홍보될 가능성도 있다. 한델스블라트는 이 거래가 “사상 최대의 자동차 무역 협정이 될 수 있다”고 평가했다.

독일 내에서는 이미 미국 공장 확장을 위한 내부 전략이 준비돼 있었으며, 중국 내 점유율 하락과 독일 내 높은 생산비용에 대응하는 방향으로 미국 투자는 예고된 수순이었다. 트럼프의 고율 관세 조치는 독일 기업들이 이를 실행에 옮기는 계기를 마련했다. 트럼프는 대선 기간 “독일차를 미국차로 만들겠다”고 강조하며 독일 자동차를 무역 불균형의 상징으로 지목한 바 있다.

결과적으로 이번 수출입 상계 협상은 독일 자동차업계에겐 위기 속 기회, 트럼프에게는 정치적 성과로 작용할 수 있다. 협상 타결 여부는 여전히 불확실하지만, 양측 모두에게 현실적 이익이 뚜렷한 만큼, 가까운 시일 내 공식 발표가 이뤄질 가능성이 높다는 전망이다.

정재철 기자 jcju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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