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현도의 중동 톺아보기
트럼프 2기정부와 미-이란 핵협상
2015년 유엔 안전보장 상임이사 5개국과 독일(이하 P5+1)은 ‘포괄적 공동 행동계획(JCPOA)’이라는 이름으로 이란과 핵 협정을 체결했다. 그러나 2018년 미국이 일방적으로 JCPOA에서 탈퇴하면서 이란 핵 위기가 다시 불거졌다. 당시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의 서명이 들어간 새로운 협상을 맺자고 했으나 이는 이미 P5+1과 협정을 체결한 이란이 들어줄 이유가 없는 요청이었다. 트럼프 1기 정부는 경제제재 복원으로 계속 이란을 압박하며 핵농축이나 프로그램 유지가 가능하지 않은 새로운 협정을 추구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다.
2기 정부 들어 트럼프는 취임하자마자 소셜네트워크 트루스(Truth)에 “미국이 이스라엘과 협력해 이란을 산산조각 낼 것이라는 언론보도는 매우 과장되었다”고 지적한 뒤 자신은 “검증가능한 핵 평화협정을 훨씬 선호한다”며 “이란과 핵 협정을 체결해 중동에서 성대한 축하행사를 열어야 한다”는 희망을 피력했다. 핵 없이 번영하는 나라가 되길 바란다면서 이란과 협상할 의지를 보인 것이다. 이어 3월 7일에는 이란 최고지도자 알리 하메네이에게 새로운 핵 협상을 제안하는 친서를 아랍에미리트(UAE)를 통해 전달했다.
전언에 따르면 편지에는 이란의 핵 프로그램 해체, 우라늄 농축 중단, 대리세력(예멘의 후티반군, 레바논의 헤즈볼라) 지원 중단, 이라크 시아파 민병대(민중동원군) 해산 등의 요구사항이 담겨 있다. 만일 이러한 요구사항을 2개월 안에 이행하면 미국은 경제제재를 해제하고 이란 고립을 끝낼 것이지만 이행하지 않으면 미국이 군사 공격을 감행하겠다는 엄포까지 놓았다.
미-이란 핵협상의 핵심은 우라늄 농축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4월 12일 이래 오만을 중재자로 두고 미국과 이란이 간접 핵 협상을 벌이고 있다. 사실 이란의 최고지도자는 미국과 핵 협상에 부정적이었으나 주변의 의견을 경청한 후 협상을 승인했다고 언론은 전한다. 오만이 중재자 역할을 하는 이유는 이란이 미국을 믿지 못하기 때문이다. 양자가 직접 협상하는 것이 속도를 내기에는 좋으나 이란은 미국이 협상 내용을 왜곡해 이른바 ‘뒤통수’를 칠 수 있기에 오만을 통한 간접협상을 선호한다.
협상의 핵심은 우라늄 농축이다. 이란은 우라늄 농축을 주권국가의 권리로 여긴다. 따라서 이란 땅에서 우라늄 농축을 계속하겠다는 의지를 굽히지 않는다. 반면 트럼프 대통령은 이란의 우라늄 농축은 허용할 수 없다고 강조한다.
국제원자력기구(IAEA)에 따르면 이란은 현재 60% 우라늄 농축분 400㎏을 보유하고 있다. 핵무기 6개를 만들 수 있는 분량이라고 주장한다. 이에 이란은 과장이라고 하면서 이란은 핵무기를 만들 의향이 없다고 반박한다.
사실 양측의 협상은 처음에는 상당히 긍정적이고 희망적인 분위기였다. 이란측 언론보도에 따르면 미국과 협상이 잘되는 이유로 미국이 이란의 우라늄 농축을 완전히 금지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보았다. 농축 금지 조건이었으면 이란이 협상에 응하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세부사항을 논의하면서 언론을 통해 불협화음이 나오기 시작했다. 이를 두고 전 이란 외교관 출신 정세분석가 세예드 호세인 무사비안은 “양측이 밀실에서 협상하고 교섭하는 것이 아니라 언론을 통해 협상하는 상황에 이르렀다”며 “이런 상황이 계속된다면 협상도 성공할 수 없을 것”이라고 지적한다. 처음부터 직접협상이 이루어졌다면 이런 상황이 발생할 가능성이 적은데 간접협상이기에 양국 간 협상이 교착상태에 이르렀다고 보았다.
외신보도에 따르면 5월 31일 미국이 이란에 미국의 핵 협상 최종안을 보냈다. 핵농축 건에 관해 혼란스러운 보도가 이어지고 있는데, 미국 최종안의 핵심 내용은 이란의 자국 내 핵농축 금지인 듯하다. 이에 이란의 최고지도자는 “미국의 핵심 요구사항은 이란이 핵 산업을 포기하고 (타국에) 의존하라는 것”이라고 하면서, 이란이 결코 그러한 요구에 따르지 않을 것임을 분명히 했다.
미국 최종안, 중동국가 간 농축 컨소시엄
그런데 미국 최종안에는 중동국가 간 농축 컨소시엄안이 있다. 트럼프는 이란이 우라늄 농축을 자국 내에서 할 수 없다고 강조하나 이란은 자국 내에서 계속하겠다고 주장하기에 이를 절충하는 안이다.
미국 언론매체 액시오스(Axios)에 따르면 스티브 위트코프 백악관 특사가 제시한 우라늄 농축 컨소시엄은 민간 핵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국가에 핵연료를 공급하고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감시를 받는다. 이론적으로 미국 이란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 카타르 튀르키예 등이 컨소시엄을 구성할 수 있는데 이러한 시설을 어디에 둘 것인지는 명확하지 않다. 이란은 자국 영토 내에 농축 컨소시엄을 운영한다면 고려할 가능성이 있으나 만일 이란 밖에서 운영하고 여기에서 핵연료를 받는다면 거부할 것으로 보인다.
이란이 자국 내 우라늄 농축을 고집하는 것은 궁극적으로 미국을 믿지 못하기 때문이다. 미국과 핵 협상을 타결한다고 해도 언제라도 미국이 다시 핵 협상을 깨고 나갈지 모른다고 우려한다. 북한과 마찬가지로 이란은 2003년 미국 영국과 협상 끝에 리비아의 가다피가 원심분리기 부품과 설계 문서를 포함한 핵 프로그램의 핵심 구성 요소를 IAEA에 넘기고 핵 프로그램을 해체했다가 결국 몰락한 역사를 보면서 리비아의 과오를 반복하지 않겠다고 다짐한다.
그렇다면 이란은 무엇을 원하나. 궁극적으로 이란은 핵무기를 만들지 않겠다는 기본원칙에는 변함이 없다. 다만 만일에 대비해 일본처럼 언제든지 핵을 만들 수 있는 핵 문턱 국가 지위를 유지하려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농축을 포기할 수 없다는 것이다. 농축기술을 보유할 수 없어 경수로용 핵연료에 필요한 농축 우라늄조차 전량 수입해야 하는 우리나라처럼 되지 않겠다는 말이다. 미국이 제시한 우라늄 농축 컨소시엄이 이란 밖에 있다면 결국 우리나라와 같은 처지가 되기에 이란 내에 두어야만 미국 안을 고려할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이다.
미국의 이란 핵시설 타격 쉽지 않을 전망
트럼프 대통령이 제시한 5월 말 핵 협상 타결 시한이 넘었다. 타결되지 않으면 군사적 행동도 불사하겠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엄포가 현실화할지는 현재 불분명하고 오히려 임시 타결안에 관한 의견이 양측에서 나오고 있다. 이스라엘은 “이란 내 농축은 절대 허용해서는 안된다”면서 “이란의 핵시설을 타격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이미 사우디아라비아는 국방장관을 이란에 보내 미국과 핵협상을 타결하지 않으면 이스라엘이 공격할지 모른다고 충고하면서 이스라엘이 이란을 공격하지 못하도록 사우디 영공 통과를 허용하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협상이 먼저라면서 이스라엘의 과격한 반응을 자제시키고 있는 형국이다.
핵 협상이 실패로 돌아가면 ‘트럼프는 항상 끝이 무르다(TACO, Trump Always Chickens Out)’는 비판에 발끈해 미국이 이란의 핵시설 타격을 시도할까. 이에 이란의 정세분석가 레자 나시리는 그러지 못할 것이라고 조심스레 진단한다. 지난 5월 13일부터 16일까지 중동 산유부국 3국(사우디아라비아 카타르 아랍에미리트)를 방문해 이들 왕국으로부터 무려 3조2000억달러에 달하는 투자 약속을 받은 트럼프가 이러한 투자가 물거품이 될지 모르는 전쟁을 쉽게 감행하지 못하리라는 말이다.
사실 이란은 공격을 받으면 절대 가만히 당하고만 있지 않겠다는 의지가 강하다. 가만히 참으면 더 때릴 것이기에 약한 모습을 보여주지 않아야 한다고 믿는다.
따라서 미국이든 이스라엘이든 이란에 공격을 퍼부으면 이란의 반격을 각오해야 하고 전쟁이 벌어지면 세계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역대급이 될 것이다. 이란은 NPT를 탈퇴하고 핵무기 개발 명분을 얻을 것이다. 양국의 현명한 선택을 기대한다.

서강대 유로메나연구소 연구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