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는? 위기 맞선 애플의 AI 전략

2025-06-10 13:00:02 게재

AI 생태계 개방했지만 핵심 음성비서는 미출시 ··· AI 경쟁력 뒤처져

애플이 9일(현지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쿠퍼티노의 애플 캠퍼스에서 개최한 연례 세계개발자회의(WWDC) 참석자들이 프리젠테이션을 지켜보고 있다. AP=연합뉴스
애플이 9일(현지시간) 세계개발자회의(WWDC) 첫날 행사에서 자사 인공지능(AI) 모델을 처음으로 외부 앱 개발자들에게 개방한다고 발표했다. 팀 쿡 CEO는 이를 통해 “애플 인텔리전스의 힘을 활용하겠다”고 밝혔으며, AI 기능은 이날부터 테스트가 가능하고, 오는 가을부터 정식 출시 예정이다. 다만 이날 행사에서도 핵심 음성비서 시리의 업그레이드에 대한 구체적인 언급은 빠졌고, 주가는 1.2% 하락 마감했다. 시장에서는 여전히 애플의 AI 전략 핵심이 비어 있다고 보고 있다.

애플은 9일부터 13일까지 개최하는 WWDC에서 위기를 직면하고 있다. 지난해 야심 차게 발표한 인공지능(AI) 전략 ‘Apple Intelligence’는 주요 기능 대부분이 아직 출시되지 못했고, 핵심인 음성비서 시리(Siri)의 업그레이드도 계속 지연되며 투자자들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

시리는 수억 대의 애플 기기에 탑재된 대표적인 AI 기능이지만, 오픈AI의 챗GPT나 구글의 제미나이(Gemini)처럼 자연스럽고 문맥을 이해하는 대화형 비서로 발전하지 못했다. 애플은 자체 개발한 대형언어모델(LLM)을 시리에 통합하는 과정에서 버그와 기술적 한계에 부딪혔다. 전직 임원들은 “기존 시리를 단계적으로 개선하는 방식으로는 근본적인 변화가 불가능하다는 점이 명백했다”고 평가했다.

이 같은 기술적 좌초는 제품 출시에도 차질을 빚었다. 애플은 지난해 발표한 AI 기반 기능을 올해 초부터 순차적으로 내놓기로 했지만, 시리의 주요 개선사항은 일정에 맞춰 출시되지 못했다. 팀 쿡 CEO도 최근 “우리의 높은 품질 기준을 아직 충족하지 못했다”며 기술적 어려움을 인정했다. 이로 인해 애플은 관련 TV 광고까지 철회했고, 일부 소비자들로부터 허위 광고 소송까지 당했다.

주가도 타격을 입었다. 애플 주가는 올해 들어 약 18% 하락하며, 이른바 ‘매그니피센트 7’ 중 가장 부진한 성적을 기록 중이다. 이는 경쟁사들이 AI 시장에서 선도적 위치를 점하며 새로운 제품군과 서비스로 영역을 확장한 것과는 대조적이다. 메타와 구글은 AI 기반 스마트안경을 출시했고, 오픈AI는 애플의 전 수석 디자이너 조니 아이브가 설립한 하드웨어 스타트업을 인수해 자체 AI 디바이스 개발에 착수했다.

애플의 AI 전략은 개인정보 보호를 최우선으로 하며 기기 내 AI 처리를 고집하는 방식이지만, 이는 클라우드 기반 LLM에 비해 성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이에 따라 애플은 일부 사용자에게 챗GPT 통합 기능을 제공하는 등 외부 기술에 의존하는 모습도 보이고 있다. 그러나 이는 애플이 AI 주도권을 스스로 포기하고 있다는 비판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여기에 애플의 고수익 사업인 서비스 부문도 흔들리고 있다. 미국 법원이 구글의 검색 독점 구조를 문제 삼는 탓에 아이폰에 기본 검색 엔진으로 설정하기 위한 구글의 연간 200억달러 상당의 지급을 중단시킬 가능성이 있다. 또 유럽연합의 디지털시장법(DMA)과 에픽게임즈와의 소송은 앱스토어 수익에도 타격을 줄 수 있다. 뱅크오브아메리카는 앱스토어 수수료로만 연간 310억달러에 달하는 고마진 수익을 창출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애플의 전성기를 이끈 팀 쿡 CEO는 그간 혁신보다 꾸준한 재무성과로 평가받아 왔지만, 이번 AI 경쟁과 규제 환경 변화는 더 이상 제품의 점진적 개선만으로는 버틸 수 없음을 보여주고 있다. 구글이나 오픈AI처럼 자체 클라우드 기반 AI 역량 확보를 위한 과감한 투자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WWDC 2025는 이러한 우려 속에서 애플이 AI 전환의 반등 계기를 마련할 수 있을지, 혹은 새로운 하드웨어 전략으로 방향을 틀 수 있을지를 가늠할 중요한 시험대가 될 전망이다.

양현승 기자 hsya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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