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시론

노동행정 지방시대 제대로 열자

2026-06-16 13:00:01 게재

대한민국은 지금 지방소멸이라는 가혹한 현실 앞에 서 있다. 인구감소와 청년층 유출은 지방의 생존 자체를 위협하는 국가적 과제가 됐다. 이런 상황에서 고용노동부의 권한 일부를 16개 시·도 광역지방자치단체에 넘기는 ‘노동행정 분권화’ 논의가 제도화 단계에 들어선 것은 의미가 크다.

과거 중앙정부 중심의 획일적 노동행정으로는 지역마다 다른 고용문제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어렵다. 지역마다 주력산업도 다르고 고용불안의 양상도 제각각이기 때문이다. 중앙정부가 독점해 온 노동감독과 고용지원 기능을 지자체에 이양해 지역 실정에 맞는 정책을 펼쳐야 한다는 요구는 이제 피하기 어려운 흐름이 됐다.

실제 변화도 시작됐다. 지난 3월 노동부와 행정안전부가 발표한 중앙지방정책협의회 결과에 따라 정부는 중앙과 지방이 함께하는 ‘노동감독 원팀’ 체계 가동에 착수했다. 지방고용노동청이 전담하던 임금체불 예방, 근로계약서 미작성 단속, 최저임금 위반 점검 등 현장 밀착형 근로감독 기능과 일부 사법경찰권을 지방정부에 위임하는 방안도 논의되고 있다. 지역 사정을 잘 아는 지방정부가 감독과 시정조치를 연계하면 행정의 신속성과 효율성을 높일 수 있다.

지역맞춤 노동행정 가능하지만 노동격차 심화될 수도

지난 4월 노동부가 발표한 ‘지역고용활성화법’ 추진과 ‘지역일자리사업 통합지원시스템’ 구축 계획은 일자리 정책의 무게중심을 지방으로 옮기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지자체가 지역 특성에 맞는 고용정책을 수립하면 중앙정부가 재정을 지원하는 제도적 기반도 마련됐다.

노동부는 14일 경기도 전라남도 등 11개 지방정부와 함께 올해 처음 도입한 ‘지역 중대재해 예방 사각지대 해소 사업’을 본격적으로 가동했다고 발표했다. 올해 143억원 규모로 신설된 이 사업을 통해 각 지자체는 지역별 산업구조와 재해 유형에 맞춘 특화사업을 추진한다.

경기도는 추락사고가 잦은 지붕작업 기술지도와 외국인 노동자 가상현실(VR) 안전교육에 집중하고 전남은 안전관리자가 없는 농공단지 영세사업장을 지원하는 식이다. 안전역량이 부족한 작은 사업장과 외국인 노동자 등 안전 취약계층을 지역이 직접 살필 수 있다는 점에서 지방행정의 장점이 드러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러나 권한 이양의 그늘도 함께 봐야 한다. 노동계가 우려하는 대목은 지자체장의 정치적 성향이나 지역 기업들과의 밀착관계에 따라 노동행정의 독립성과 공정성이 훼손될 수 있다는 점이다. 중대재해 예방사업처럼 지원 중심의 행정은 마찰이 적을 수 있다. 하지만 노동법 위반을 제재하는 근로감독과 강제력을 수반한 법 집행 권한까지 지자체에 귀속될 경우 다른 문제가 발생할 여지가 적지 않다.

임기 내 기업 유치와 일자리 창출 성과에 민감할 수밖에 없는 지자체장들이 표심을 의식해 기업 대상의 노동규제를 임의로 완화하거나 근로감독을 형해화할 가능성이 있다. 이는 노동권 보호 수준의 지역별 격차가 나타날 수도 있음을 의미한다. 가뜩이나 열악한 지방의 중소기업 노동자들이 단체장의 정치적 판단에 따라 안전과 임금보장이라는 기본권에서 차별받는 구조적 모순이 발생할 수도 있는 것이다. 노동권이 지역별로 차등 적용된다면 헌법이 보장한 기본권의 가치도 뒤흔드는 일이다.

성공적 분권화, 이중 안전장치 마련해야

노동행정 분권화가 성공하려면 권한의 맹목적 이양이 아닌 철저한 이중 안전장치이 우선해야 한다. 노동감독관 직무집행법 개정 등 법제화 과정에서 근로기준법 및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을 단속하는 법 집행 가이드라인과 최소한의 노동가치 원칙은 중앙정부가 책임지고 관리해야 한다. 중앙정부가 ‘최저기준 보장 원칙’을 분명히 세우고 지속적으로 점검해야 한다는 뜻이다. 이번 중대재해 예방사업처럼 지자체에는 고용지원과 예산 집행, 지역맞춤 예방사업 추진 권한을 맡기되 법 집행 기준과 감독체계는 중앙정부가 유지하는 역할분담이 필요하다.

아울러 늘어난 노동행정을 지자체가 전문적이고 공정하게 수행할 수 있도록 중앙정부 차원의 인력과 재정 지원도 뒷받침돼야 한다. 지방분권이라는 명분에 가려 노동행정의 공공성과 노동권 보장이라는 본질적 책무가 훼손돼서는 안된다. 중앙정부는 흔들리지 않는 기준을 세우고 지방정부는 현장에 맞는 실행을 맡는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그것이 노동행정의 지방시대를 안착시키고 성공적으로 여는 길이다.

한남진 정책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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