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수 칼럼

데이터와 온톨로지, K-바이오헬스 미래를 여는 열쇠

2026-06-16 13:00:01 게재

조선 말기 이제마가 창시한 사상의학은 개인별 건강 특성과 질병 양상의 차이에 주목한 독창적인 의학체계였다. 사람의 체질을 4가지 유형으로 분류하고 그에 맞춰 질병을 예방·치료하려 한 선조들의 통찰은 인간을 고유한 개체로 바라본다는 점에서 오늘날 정밀의료 및 예방의학이 지향하는 철학적 본질과 궤를 같이하고 있다.

현대 정밀의료가 유전체와 환경, 생활습관 등 검증가능한 생물학적 근거를 바탕으로 한다면, 사상의학은 오랜 경험적 직관의 산물이다. 이제 우리는 경험 영역에 머물렀던 사상의학의 통찰을 첨단 과학기술을 통해 디지털 데이터 기반으로 재해석할 수 있는 전환점에 서 있다. 한국인 고유의 유전체 정보와 세계적 수준의 건강검진 데이터와 임상기록을 스마트 기기의 라이프로그와 융합하는 지식체계를 통해서다.

한국은 전세계가 부러워하는 강력한 바이오헬스 데이터 자산을 보유하고 있다. 바이오뱅크의 유전체 등 정보는 생명과학 연구의 출발점이 되고, 높은 수검률을 자랑하는 국민건강보험공단의 주기적 검진 데이터는 신체 변화를 추적하는 훌륭한 나침반이 된다. 여기에 심평원과 각급 병원에 누적된 방대한 임상 의료기록은 실제 질병의 발병과 치료 과정을 생생하게 담아낸다.

최근에는 스마트워치 등 웨어러블 디바이스를 통해 실시간 수집되는 수면 심박수 활동량 같은 라이프로그 데이터가 병원 밖 일상 영역의 공백을 긴밀히 메워주고 있다. 북유럽 등 일부 선진국도 바이오뱅크를 운영하지만 전 국민을 아우르는 단일 건강보험 체계 속에서 이토록 방대한 데이터를 축적한 사례는 드물다.

빅데이터 통합해 사상의학 통찰 뒷받침

문제는 이 4대 빅데이터가 각 영역에 고립된 섬처럼 단절되어 있다는 점이다. 하지만 정보들을 안전하게 통합해 분석할 수만 있다면 사상의학의 맞춤형 통찰을 수억개의 디지털 데이터로 재구성해 현대의학의 무대에서 새롭게 재조명할 수 있다. 통합된 데이터가 개인의 유전적 특성과 일상습관, 환경요인의 상호작용을 시각화해 질병이 발생하는 복잡한 연계 메커니즘을 규명하는 핵심 단초가 되기 때문이다.

이질적인 데이터들을 유기적으로 결합해 정밀의료와 예방의학의 가능성을 우리 시스템 안에서 구현해 낼 핵심 열쇠 중 하나가 바로 온톨로지(Ontology) 기술이다. 바이오헬스 온톨로지란 유전자 라이프로그 검진수치 임상증상 치료효과 등 서로 다른 개념들의 상관관계를 컴퓨터가 이해할 수 있도록 표준화한 지식체계를 뜻한다.

단순히 데이터를 모아두는 낡은 방식만으로는 AI가 의료 데이터 특유의 복잡한 연결고리를 해석하기 어렵다. 예컨대 당뇨병의 경우 타고난 유전적 변이가 일상 속 식습관이나 운동량 같은 라이프로그와 결합하고, 이것이 검진 데이터상 혈당수치 변화를 거쳐 실제 임상 결과인 당뇨합병증으로 발현되기까지의 복잡한 관계를 AI에게 학습시켜야 한다.

즉, 개별 데이터의 단순 나열이 아닌 데이터 간의 복잡한 맥락을 유기적인 지도 형태로 연결해 주어야 비로소 정밀의료 구현이 가능해진다. 특히 온톨로지는 파편화된 데이터에 고도의 맥락을 부여함으로써 AI가 단순 통계를 넘어 데이터 간의 숨겨진 상관관계를 정밀하게 추론하도록 돕는 중요한 지식 인프라다.

이러한 온톨로지 체계 구축과 AI 활용은 K-바이오헬스 경쟁력을 획기적으로 도약시킬 것이다. 한국인 특성을 정밀하게 반영한 타깃 바이오마커 발굴을 통해 신약개발 성공률과 예측모델의 고도화를 통한 예방의학의 효율성 향상이 기대된다. 결과적으로 이는 초고령사회로 진입한 한국의 국가 의료 재정부담을 완화하고 의료시스템의 지속가능성 제고에 기여할 수 있다.

좀더 나아가 데이터를 제공하는 국민에게 합당한 편익을 공유하는 참여형 모델도 검토 가능하다. 자동차 보험의 운전정보 연계 할인제도(UBI)가 참고할 사례다. 공공 의료보험의 연대성 원칙 내에서 건강검진 시 일부 비민감 정보나 라이프로그 활용에 동의할 경우 민간 실손보험료를 감해 주는 건강증진형 보험 리워드를 고민해 보는 것이다.

아울러 공공영역에서는 의료 바우처나 맞춤형 건강검진 기회를 보상으로 제공할 수도 있다. 데이터 활용의 주체를 국민 개인으로 환원하고 인센티브 형태로 돌려준다면 신뢰 기반의 거대한 데이터 활용 생태계가 의미 있게 조성될 것이다.

K-바이오가 차별화된 경쟁력 가지려면

전세계적으로 바이오헬스와 인공지능을 둘러싼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다. 그러나 전국민 단일 건강보험 체계와 축적된 의료 데이터의 질, 높은 디지털 역량을 동시에 보유한 국가는 많지 않다.

이제 우리는 이러한 강점을 기반으로 한국형 정밀의료와 예방의학의 새로운 모델을 만들어야 한다. 사상의학이 제기했던 개인 맞춤형 건강관리란 오래된 문제의식을 현대 생명과학과 온톨로지 기반 AI 기술로 재해석할 수 있다면 K-바이오헬스는 세계 시장에서 차별화된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

연세대 특임교수

전 과학기술인공제회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