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시평

에너지전환 성공의 조건

2026-06-16 13:00:34 게재

에너지전환은 더 이상 에너지나 환경정책만의 과제가 아니다. 탄소중립 실현을 위해 재생에너지를 얼마나 늘릴지, 원전을 얼마나 유지할지, 수소를 얼마나 도입할지도 중요하다. 그러나 더 근본적인 질문은 따로 있다. 그 전환을 가능하게 할 기술과 산업기반을 우리가 갖고 있는가 하는 문제다.

과거 에너지안보의 핵심은 석유·가스·석탄을 얼마나 안정적으로 확보하느냐였다. 그러나 지금은 에너지전환을 가능하게 하는 기술과 공급망 자체가 보호 대상이 되고 있다. 배터리 소재와 제조공정, 전력망 기자재, 수소 생산·저장·활용 기술, 원전연료와 차세대 발전설비는 모두 미래 에너지안보를 좌우하는 전략자산이 됐다.

산업경쟁력과 기술안보의 핵심축이 된 에너지

현재 79개의 국가핵심기술이 지정·관리되고 있다. 이 가운데 에너지와 직접 관련된 기술은 좁게 잡아도 15개 안팎이다. 고에너지밀도 리튬이차전지, 연료전지시스템, 액화가스 화물창, 고온 히트펌프, 발전용 수소터빈 등이 대표적이다. 원자력 안전과 차세대 핵연료, 친환경 선박, 전기차, 수소·연료전지 기술까지 포함하면 범위는 더 넓어진다. 이는 에너지가 산업경쟁력과 기술안보의 핵심축으로 편입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올해 3월 국제에너지기구(IEA)가 발표한 2026 에너지기술 전망도 같은 방향을 가리킨다. IEA는 글로벌 청정에너지기술 시장규모가 2025년 1조2000억 달러에서 2035년에는 2조달러 규모로 확대될 수 있다고 전망한다. 이는 2025년 세계 원유시장 규모에 맞먹는 수준이다. 에너지전환은 비용 부담만이 아니라 거대한 산업시장의 재편이기도 한 것이다. 그러나 청정에너지 기술은 빠르게 성장하는 시장인 동시에 공급망 취약성을 안고 있다. 공급망은 여전히 특정 국가와 지역에 집중돼 있으며 어느 한 고리가 취약해도 에너지전환의 속도 자체가 늦춰질 수 있다. 시장의 성장 가능성은 투자 규모에서도 확인된다.

맥킨지는 2050년 탄소중립을 위해 2021년부터 2050년까지 약 275조달러, 연평균 9조2000억달러의 물리적 자산 투자가 필요하다고 추산한다. 이는 화석연료 중심의 기존 투자 흐름이 청정에너지 기술과 전력망, 전기화 수소 저탄소 산업공정으로 재편되는 거대한 자본 이동을 의미한다.

우리나라는 에너지 자원 빈국이지만 배터리 조선 원전 수소연료전지 등에서 강점을 가진 에너지기술 제조국으로 도약할 기반을 갖고 있다. 그러나 핵심광물, 일부 소재, 원천기술, 해외시장 접근, 글로벌 공급망 안정성 측면에서는 취약성도 안고 있다. 에너지전환이 빨라질수록 이러한 강점과 취약성은 더욱 뚜렷해질 것이다. 주요국은 이미 청정에너지 산업을 국가 전략산업으로 보고 있다. 배터리 태양광 전기차 수소 전력망 핵심광물 원전은 보조금, 세액공제, 공공조달, 무역규제, 투자심사, 기술보호 제도와 결합되고 있다.

에너지전환은 산업·통상·안보정책이 만나는 지점

에너지전환 기술은 산업정책과 통상정책 안보정책이 만나는 지점에 놓여 있다. 따라서 앞으로의 에너지안보는 원유 중동 의존도, LNG 장기계약 비중, 비축일수만으로 설명할 수 없다. 핵심소재 자립도, 기자재 공급능력, 핵심 제조공정의 해외 의존도, 기술인력 유출 위험까지 함께 봐야 한다.

문제는 이러한 기술과 산업기반을 개별 산업정책으로 흩어놓지 않고, 에너지전환과 기술안보를 연결하는 종합 전략으로 묶어내는 일이다. 배터리 전력망 수소 원전연료, 그리고 액화가스 저장·운송, 고효율 열·발전설비를 보호하고 키우는 일은 곧 미래 에너지안보를 확보하는 일이다.

에너지전환을 부담으로만 볼 것인가, 아니면 새로운 산업경쟁력과 기술안보의 원천으로 만들 것인가. 승부는 발전원 비중표가 아니라 그 전환을 떠받칠 기술과 공급망을 누가 갖고 있느냐에서 갈릴 것이다.

김용래 경희대 학술연구교수 전 특허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