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산책
유전체 중복과 척추동물의 진화
생물의 진화과정은 저마다 다채롭고 복합적이다. 척추동물만 해도 그렇다. 척추동물은 몸통을 따라 단단한 등뼈인 척추를 지니고 있을 뿐만 아니라 뇌를 포함한 복잡한 신경계를 지니고 있다. 이는 척추동물이 다른 동물과 구별되는 중요한 특징이다.
이러한 특징이 척추가 없던 조상 동물과 어떤 점이 달라지면서 차이가 생겨난 것인지, 어느 시점에 등장한 것인지, 수많은 연구가 진행되어 많은 정보가 밝혀졌지만 여전히 모르는 정보도 너무나 많다.
시간을 돌려 수억년 전 척추동물이 처음 탄생한 시점의 생물을 구할 수만 있다면야 그 진화 과정을 일일이 들여다보는 게 가능할지 모른다. 하지만 그럴 수 없으니 연구자들은 지금 살아있는 생물을 서로 비교해 수억년 전 사건을 재구성하는 수밖에 없다. 척추동물 및 척추동물과 가장 가까운 무척추동물을 연구하는 것이 최선인 셈이다.
창고기는 이러한 척추동물 진화 과정을 밝히는 데 있어 가장 널리 활용되는 핵심생물 중 하나다. 창고기는 마치 창날처럼 양끝이 뾰족한 몸통을 지니고 있는데, 이는 척추동물과 유전적으로 아주 가깝고 몸 구조도 제법 비슷해서 사진만 얼핏 보면 작은 멸치나 물고기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척추동물은 아니다. 생김새가 비슷할지언정 창고기는 척추가 없기 때문이다. 신경이 뻗어나간 모양은 비슷해 보일 수 있으나 훨씬 단순하며 머리 뼈도 뇌도 따로 없다. 척추동물과 가깝지만 척추동물은 아닌 생물이다. 그리고 이 둘 사이에 척추동물 진화의 비밀이 담겨있다. 창고기와 척추동물을 비교해 대체 무슨 차이로 인해 척추동물이 복잡해진 것인지 연구할 수 있는 것이다.
창고기 연구 통해 척추동물 진화 비밀 찾기
가장 대표적인 차이는 유전체 중복이다. 척추동물은 창고기 대비 같은 유전자를 4배쯤 지니고 있다. 수억년 전 척추동물의 조상과 창고기의 조상이 갈라진 뒤, 유전체라 불리는 DNA가 2배가 되는 유전체 중복현상이 척추동물 조상에서만 2번 정도 발생했기 때문이다.
중복된 유전자는 여러 용도로 활용된 것으로 보인다. 2018년 네이처(Nature)에 발표된 연구처럼 4배로 불어난 유전자가 척추동물에서 어떻게 쓰이는지 연구한 결과가 대표적이다. 당시 연구진은 창고기와 척추동물의 장기 9개를 선정해 유전자 작동 방식을 조사했다.
창고기의 모든 장기에서 작동하는 유전자를 선정한 뒤 척추동물에서 확인해보니, 중복 유전자 4개 중 1개는 모든 장기에서 작동하는 기능을 그대로 지니고 있었지만, 나머지 3개 중복 유전자는 이중 일부 장기에서만 작동한다는 것이 확인됐다. 즉 유전자를 원래 쓰던 대로 쓰면서 기능을 유지하더라도 똑같은 유전자가 3개나 남으니 이걸 다른 용도로 활용한 셈이다. 이러한 특화를 통해 척추동물의 유전자 다양성이 높아지고 이것이 기능 특화, 기능 다양성에 기여한 것으로 추정된다.
지난 10일에는 이러한 유전체 중복과 유전자 다양성 증대라는 현상이 척추동물의 뇌 발달과 어떻게 연관되는지 확인한 결과가 네이처에 발표됐다. 요컨대 유전체 중복으로 인해 생긴 여분의 유전자가 척추동물의 뇌가 복잡해지는 과정에 기여했는지 살펴본 것이다.
연구진은 먼저 창고기에서 뇌처럼 신경세포가 몰려있는 부분과 척추동물의 뇌를 비교했다. 신기한 점은 마치 창고기의 유전자 1개가 척추동물의 유전자 4개와 서로 짝지어지듯이, 창고기의 신경세포 유형 1종류도 척추동물의 신경세포 여러 종류와 짝지어진다는 것이 확인됐다. 이것이 우연인지, 아니면 실제로 중복된 유전자가 신경세포 유형의 다양성 증가에 기여한 것인지 확인하기 위해 연구진은 이 다양해진 신경세포의 유전자 작동 방식에 집중했다.
그 결과 중복된 유전자 중 80%는 기존 신경세포의 기능이 특화되는 데 기여하고, 20%는 새로운 기능을 만들어내는 데 기여했다는 것이 확인됐다. 창고기와 척추동물에서 비슷한 기능을 담당하는 신경세포라고 할지라도, 척추동물에서는 중복된 유전자가 신경세포 기능 또한 세부적으로 특화시킨 것으로 보인다. 유전자가 남으니 이를 활용할 여지도 늘어나면서 척추동물의 복잡성이 높아졌을지도 모른다.
진화과정 이해 통한 생물 유전자원 활용 기대
현재 전세계적으로 인공지능을 위한 대규모 데이터를 생산하고 모으는 사업이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이처럼 진화를 들여다볼 수 있는 다양한 생물에 대한 데이터를 모으는 일은 이러한 사업에 적용하기 가장 적합한 연구일지도 모른다.
생물이 진화한 과정을 이해하고 나아가 이를 바탕으로 다양한 생물을 실제 유전자원으로 활용할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한다.
김 준
충남대 교수
생명시스템과학대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