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북중 ‘전략적 협조’의 그늘에 가려진 한반도
7년 만에 이뤄진 시진핑의 방북과 북중 정상회담은 양측이 서로의 전략적 필요를 확인하고 이를 대외적으로 과시한 무대였다. 두 정상은 관계를 ‘전략적 협조’로 격상했고, 의제를 한반도에서 ‘지역과 세계의 평화·안정·발전·번영’으로 끌어올렸다. 한반도 문제와 양국 우호의 유지에 머물렀던 2019년 회담과 견주면 이번에는 한반도를 비워낸 자리에 지역·글로벌 의제를 얹은 셈이다. 표면의 밀착 뒤에는 각자의 셈법이 정교하게 맞물려 있다.
중국의 구상은 최근 미중 정상회담에서 부상한 ‘건설적 전략 안정 관계’라는 큰 우산 아래 놓여 있다. 강대국이 각자의 지역에 대한 전략적 관리를 상호 인정하는 구도 속에서 중국은 동북아 질서의 적극적 관리자를 자임한다. 그 시야에서 북한은 역내 불안정성의 진원이자 동시에 적극적 관리 대상이다.
북한의 대미 접근, 급속한 북러 밀착, 핵·재래식 현대화가 중국의 이익을 흔들지 않도록 묶어두는 한편, 미국과 한미일의 압박을 견제하는 전선에 북한을 전략적으로 활용하려는 이중의 의도가 읽힌다. 경제적 인센티브로 대중 의존도를 다시 끌어올리고, 외교·군사 교류로 북한 내부의 변화를 들여다보려는 관리 욕구도 그 연장선에 있다.
양측이 합의한 ‘주권·안전·발전이익 수호’라는 문구도 가볍지 않다. 주권은 비핵화를 거부하는 핵보유국 지위를, 안전은 대미 억제력 차원의 핵·재래식 고도화를, 발전이익은 대북 제재에 대한 거부를 함축한다. 중국이 이를 함께 내건 것은 사실상 북핵을 필요하다면 묵인하고 대미 전선에서 보조를 맞추겠다는 신호로 읽힌다.
북중 정상회담 ‘한반도 소거’의 함의는
북한의 계산은 더 분명하다. 비핵화는 불가하다는 전제 위에서 핵보유국 위상을 사실상 재확립하고, 대미·한미일 견제의 동반자로 중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려는 것이다. 시진핑이 비핵화를 한 차례도 거론하지 않은 채 ‘김정은이 이끄는 사회주의 위업에 대한 확고한 지지’를 밝힌 대목은 북한에 핵보유 상태의 현상유지 묵인이자 전략적 지위 제고라는 성과로 받아들여진다. 이렇듯 양측의 의도가 맞물리면서 이번 회담은 성사됐다.
가장 무거운 함의는 ‘소거된 한반도’다. 북중 양측 발표 어디에도 비핵화도, 한반도 문제도, 북미도 등장하지 않았다. 중국이 비핵화 중재자에서 대미 견제의 관리자이자 전략적 동반자로 이동했음을 보여주는 신호다.
미중이 ‘건설적 전략 안정’의 틀로 충돌을 관리할수록 한반도 문제는 그 거래의 하위 변수로 밀려나고 중국의 동북아 관리 셈법에 더욱 깊이 종속될 수 있다. 앞으로 북핵을 중심에 둔 한반도 접근은 상당한 어려움과 한계에 부딪힐 수밖에 없으며, 이 의제에 대한 동의 여부에 따라 진영의 경계는 한층 또렷해질 수 있다.
다만 밀착의 이면에는 균열의 지점도 드러났다. 북한은 노동신문 보도에서 중국 주도의 설계도, 경제적 시혜, 혈맹 서사, ‘운명공동체’ 같은 중국식 담론을 걷어내고 관계를 철저히 대등한 동지 관계로 재서술했다. ‘변색될 수 없는’과 ‘진실한’ 등의 표현에는 1992년 한중 수교와 대북 제재 동참이라는 ‘배신’의 기억과 ‘비핵화’를 미중 간 거래로 보는 중국의 모호하고 이중적인 태도에 대한 경계가 담겨 있다.
시진핑 중심의 지도와 리더십에 끌려가는 인상을 지우려는 노력, 북러와 북중 사이의 균형을 관리하려는 신호도 곳곳에 배어 있다. 연대의 신호는 키우되 종속의 흔적은 지운, 철저히 ‘자주성’에 방점을 둔 편집이다.
중국의 전략적 안정 방정식 직시해야
북한은 앞으로 중국이 합의를 얼마나 이행하는지, 비핵화와 한반도 문제에 어떤 태도를 취하는지를 주시하며 전략적 협조의 수위를 가늠할 것이다. 그 과정에서 북러와 북중 양쪽으로부터 최대한 많은 것을 얻어내려 할 것이다. 요컨대 이번 정상회담과 현재의 정세는 북한에 가장 유리한 국면이며 이번 회담의 최대 수혜국은 다름 아닌 북한이다.
같은 시기 북한이 중국의 전략적 안정 방정식에 ‘편입대상’으로 또렷이 자리 잡은 반면, 한국은 한중 정상회담에서 ‘한반도’라는 단어조차 호명하지 못했다. 한국이 이 전략환경을 직시하고 스스로의 렌즈와 서사로 전략적 안정을 정의하지 못한다면 한반도의 운명은 강대국들이 각자의 사전으로 규정한 ‘안정’ 속에서 결정될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