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당국 ‘헐값 외부감사 기업’ 심사·감리 나선다
회계업계 출혈경쟁으로 감사보수 큰폭 하락
금융당국, 부실감사 우려에 감시 강도 높여
최운열 한공회장 “지나친 덤핑, 정부가 나서야”
올해 외부감사 비용이 지나치게 줄어든 기업들을 상대로 금융당국이 회계심사·감리에 나서기로 했다. 회계업계의 출혈경쟁으로 기업 감사보수가 큰 폭으로 낮아지면서 부실 감사에 대한 우려가 커졌기 때문이다.
한국공인회계사회도 외부감사 덤핑 수주와 관련한 대응 방안을 강구하고 있으며 금융당국과 제도적 개선책을 마련할 예정이다.
12일 금융당국에 따르면 증권선물위원회는 올해 감리대상 기업을 선정하는 과정에서 감사 보수 감소 폭이 큰 곳들을 대상으로 심사·감리를 강화하는 회계감독방향을 정했다. 감사 보수가 급감한 기업에서 회계부정이 일어날 위험성이 높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감사보수가 급감하면 감사투입 시간이 크게 줄어들 가능성이 높고 외부 감시망이 약화될 수 있다는 우려가 반영된 결과다.
올해는 다수의 대형 상장회사들이 금융당국의 지정감사(주기적 지정제 3년간) 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외부감사인을 선임하는 게 가능해졌고, 회계업계에서는 치열한 수주 경쟁이 벌어졌다. 이 때문에 감사계약을 체결하기 위해 저가 수주를 감수한 ‘덤핑’ 문제가 발생했다. 이들 기업들의 감사보수는 전년 대비 평균 30% 가량 하락한 것으로 알려졌다.

◆“덤핑 수주 근절, 제일 큰 과제” = 최운열 한국공인회계사회 회장은 11일 서울 여의도에서 취임 1주년 기자 간담회를 열고 “ 감사 비용의 지나친 덤핑은 결국 감사 품질의 저하로 떨어질 것”이라며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이냐, 이게 앞으로 제일 큰 과제”라고 말했다.
회계업계 내부에서는 대형 회계법인(빅4)에서 촉발된 출혈 경쟁이 시장을 회계개혁 이전으로 되돌렸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대우조선해양 분식회계 사건을 계기로 기업의 회계투명성을 높이기 위한 제도개혁이 단행됐지만, 이러한 노력이 한순간에 물거품이 됐기 때문이다. 최 회장이 회계업계의 덤핑 수주 근절을 제일 큰 과제라고 말한 이유다.
그는 “여러 가지 방안을 고려 중”이라며 “예를 들어 지나치게 감사 비용이 떨어진 경우에는 금융감독원이 해당 회계법인에 대해 특별감리를 하도록 제도를 만든다든지, 정부가 주도해서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감사보수는 가격의 문제여서 회계업계 자체적으로 일정 기준을 정할 경우 담합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2018년 공정거래위원회가 아파트 회계감사 보수를 담합 인상한 한국공인회계사회에 과징금 5억원을 부과하고 형사고발한 사례가 있다. 결과적으로 검찰은 무혐의 결정을 내렸고, 법원은 과징금을 취소하는 판결을 내리는 등 공정위의 완패로 끝났지만 한국공인회계사회는 이 문제로 몇 년간 법적 다툼을 벌여야 했다.
최 회장은 “공정거래 이슈에 걸리지 않으면서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아주 굉장히 정교한 기술이 필요하다”며 “정부 정책으로 시행을 하면 문제가 되지 않기 때문에 금융위와 금감원도 이 이슈를 굉장히 심각하게 고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금융위와 금감원은 일단 외부감사 비용을 크게 낮춘 기업들을 상대로 감리를 강화하는 회계감독방향을 정했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감사 보수 체결을 직접적으로 규제하는 것은 사실상 쉬운 일이 아니다”라며 “그렇지만 출혈 경쟁이 회계투명성을 저해하는 요인이 될 수 있어서 감리 과정에서 반영해 운영하고 있다”고 말했다.
◆“회계투명성 떨어지면 밸류업 안돼” = 이와함께 최 회장은 회계기본법 추진에 대한 강력한 의지를 밝혔다. 그는 “이재명 대통령의 대선 공약에 회계기본법이 들어갔기 때문에 법 제정이 탄력을 받지 않을까 싶다”며 “법 개정이 아닌 제정이라 2~3년의 시간을 두고 추진할 것”이라고 말했다.
최 회장은 “국가 전반에 걸쳐 체계적이고 일관된 회계정책을 수립·집행할 수 있도록, 다양한 조직에 공통으로 적용할 수 있는 기본 원칙과 기준을 제시하고자 하는 게 회계기본법의 취지”라고 말했다.
그는 “공인회계사는 이윤을 추구하는 기업, 정보이용자인 투자자와 삼각관계를 이루는 만큼 신뢰받는 자본시장을 위한 역할이 중요하다”며 “회계투명성이 떨어지면 지배구조가 개선돼도 밸류업(기업가치 상승)이 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이재명 대통령이 ‘주가지수 5000 시대’를 열겠다고 말했지만 그 바탕에는 회계투명성이 전제돼야 한다는 의미다.
한편 최 회장은 지난해 취임 직후 서울시의회가 민간위탁사업 결산을 ‘회계감사’가 아니라 ‘간이 검사’로 변경해 실시하려는 것을 최우선 당면 과제로 삼아 막아냈다. 하지만 일부 지방자치단체들이 회계감사를 무력화시키는 조례변경을 추진하고 있어,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인 ‘감사 의무화’를 명시한 지방자치법 개정안의 통과를 적극 지원하고 있다.
이밖에도 최 회장은 취임 후 1년간 기업 소통 전담창구인 신문고를 설치하고 회계기본법 제정 추진, 회계사 회원들이 직접 의견을 제안할 수 있는 ‘회장에게 바랍니다’ 코너 등 실질적인 소통의 장을 마련했다.
최 회장은 “앞으로 1년간 공인회계사의 자정노력을 강화하고 회계제도 개혁 완성과 상생 생태계 구축, 청년과 여성 공인회계사 위상 강화, 세무사와의 공정 경쟁을 지원하기 위한 지방 및 감사반 지원 등을 중점적으로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이경기 기자 cellin@naeil.com